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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롭게 주시는 사명 / 행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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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새롭게 주시는 사명
본문 : 사도행전 8:1~13

최근 제주도 국립 제주박물관장 김영원씨는 하멜의 제주도 표착 350주년을 맞이하여
『하멜 표류기』와 같은 책을 한 권 펴냈는데 책 이름은 『항해와 표류의 역사』입니다.
그는 이 『항해와 표류의 역사』라는 책에 『하멜 표류기』 육필원본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멜 표류기』라는 말은 아마 많이 들어 보셨을 줄로 압니다.
이 『하멜 표류기』라는 것은 조선시대 때 네델란드 사람들이 약 13년동안 억류생활한 것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350년전인 1653년 1월, 네덜란드 무역선인 스페르웨르호(號)가 선원 60명을 태우고
본국인 네델란드를 출발하여 6월에는 인도네시아에 이르고 7월에는 중국에 이른 후
거기서 다시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가던 중 풍랑에 밀려 제주도 부근에서 표류하다가
제주도 차귀진에 표착(漂着)하게 되어 풍랑에 사망한 24명을 제외한 36명이 땅을 밟지만
13년이라는 세월 속에 또 21명이 사망하고 16명만 생존하다가 8명이 일본으로 탈출한 후 
다시 네델란드로 돌아가서 지난 13년 동안의 조선에서의 생활한 이야기를 서술한 것인데
당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던 22살의 젊은 청년인 하멜(Hendric Hamel)이
이렇게 조선에 억류되어 있던 13년 동안 받지 못한 월급을 받기 위하여 자세히 작성했던
자신의 보고서(report)를 보완하여 출판한 책이 바로 『하멜 표류기』라는 것입니다.

이 『하멜 표류기』에 의하면 네델란드의 무역선 스페르웨르호가 풍랑으로 제주도 차귀진에
처음 표착하게 되었을 때 제주도 관리들은 이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말이 안통하자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하게 됩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통역 요원들을 제주도로 급파하게 되는데
이 하멜 일행이 정부에서 보낸 통역요원을 만나 보니 옷 입은 겉모양만 조선 사람이지
얼굴 모양이며 말하는 것은 틀림없이 자기들과 같은 네델란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도 자신들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22년전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에 귀화하여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박연이란 이름도 얻고 또 군사 훈련기관인 훈련도감에서 군사훈련을 담당하는 직책도 얻고
또 필요시 통역도 담당하고 있던 중 이들 하멜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멜 일행은 이 통역요원들을 통하여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하지만
당시 왕이었던 효종은 병자호란 이후 북벌정책을 내내 꿈꿔왔던 터라 이들을 보내기는커녕
도리어 굳게 붙잡고는 그들의 무기 제조기술을 이용 청나라에 대적해 보려고 이들에게
요즘식으로 말하면 국방부의 요직 벼슬을 주고 일하게 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자 전라도로 유배(流配)를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때로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기도 했지만
더많은 경우 그렇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면서 기회만 오면 탈출하려고 마음먹고 있다가
1666년 배 한척을 구하여 조선을 탈출, 일본에 도착하게 되는데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항구에서 받은 첫 질문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너희는 기독교인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태웠느냐?
  안태웠습니다. 우리 선원들 밖에 없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저는 이 맨 처음 질문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나라는 세계를 향하여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
일본은 일찍 세계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교류하고 있던 터라
맨 먼저 물었던 질문이 바로 이런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기독교인이냐?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질문이 어떤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는 이 질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 이 한국 땅에 표착(漂着)하여 생활한 네델란드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전혀 없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이 질문한 그 한 질문에 모든 것이 다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사마리아 선교라는 것이 요즘처럼 선교위원회가 조직되고 선교의 대상지역을 답사하고
그래서 선교사를 파송하여 이루어진 선교가 아니라!

마치 하멜 표류기에 나타난 것 처럼
어쩌다 보니 그까지 피난 가서 정착하여 살다가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런 것이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이 계획 세우고 사람이 시도하여 선교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선교라는 것입니다.

보십시다. 본문 1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절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의도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흩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핍박 때문에 이리저리 흩어진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정착하게 된 바로 그 곳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기독교의 선교라는 것은 정말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선교라는 것입니다.

물론 선교를 계획하고 기도하며 파송하여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선교이지만
때로는 본문처럼 핍박이 나서 피난 가 살다가 이웃에게 전도하여 선교가 되기도 하고
배를 타고 가다가 파선하여 표류 끝에 외딴 섬에 정착하여 살다가 선교가 되기도 하며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들어가 있다가 감옥에서 전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스데반 처럼 순교하면서 죽어가도 복음은 더욱 강력하게 전해지기에
선교라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 저희 교회 선교위원회에서 내년도 해외선교 국가로 정하고 답사하였던 몽골은
한때 세계역사를 통틀어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였던 나라입니다(AD 1206년 세워짐).

세계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여러 나라들을 쳐부수고 통폐합하여 거대한 제국을 이룬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애굽, 로마 제국 등 여러 제국들이 있었지만
이 여러 제국들의 영토들보다 더 큰 영토를 가졌던 제국으로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중국과 한국의 고려
서쪽으로는 남부 러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이란, 헝가리, 오스트리아, 폴란드
남쪽으로는 인도와 베트남, 과거에 버마라고 불렀던 미얀마까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가 
바로 과거의 몽고제국이었습니다.

이 몽고제국은 징기스칸이라는 사람이 세운 나라인데
징기스칸은 본명이 테무친이라는 사람으로서 울란바타르 동쪽 오논 강 중류 유역에 위치한
몇 개의 적은 몽골부족을 통일한 후 그들의 부족 회의에서
이름은 "절대적인 힘"이란 "징기스"로 칭호는 왕이라고 하는 "칸"으로 칭호를 얻어
징기스칸이 되었는데 그후 쿠빌라이칸에 이르는 동안 나라는 그 명성을 세계에 떨쳤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때 세계를 흔들며 호령했던 몽고제국도 AD 1368년 명(明)나라에 망하여
그들이 처음 시작했던 몽고 고원쪽으로 완전히 쫓겨가고 말았고
그후 약 600여년간의 긴 세월을 힘을 잃고 지내다가 20세기 초인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날 때 바로 이때가 나라를 세울 때라고 생각하고
몽골의 지도자 우르가 러시아의 도움을 얻어 혁명을 일으키고는 독립을 선포하게 되나

그 독립이 온전한 독립이 되지 못하고 약 10년 후인 1924년 11월
혁명과 독립에 도움을 준 러시아를 따라 두 번째로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되고
사회주의의 창시자 레닌의 동상을 울란바타르 도시 한복판에 세우고는
약 70년 동안을 그렇게 살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도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이 잘 살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점점 나라 살림도 어려워지고 개인의 살림도 점점 어려워지니
극기야는 1988년 12월 제5차 몽골 공산당 회의에서는 민주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그 이후 1990년 7월 29일에는 최초로 민주 총선도 실시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해부터 우리나라와도 대사급 수교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나라가
몽골이라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몽골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서방세계에 문을 연지 이제 13년 정도밖에 안된 그런 나라라는 것입니다.

면적은 우리 나라의 7배나 되지만 인구는 우리 대구시 정도인 250만명 정도이고
또 그 인구의 1/3은 수도(首都)인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나라로서
복음 전파는 수도 위주로 밖에 할 수 없는 그러한 나라입니다.

바로 이러한 나라에 복음이 본격적으로 들어간 때는 최초로 민주 총선이 실시하게 된
바로 그 해 1990년이었습니다.

징기스칸 이래로 몽골에서는 라마 불교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징기스칸이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에는
주로 라마 불교계의 지도자들과 모임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쿠빌라이칸이 정권을 잡으면서 라마 불교는 몽골의 국교로 공식적으로 선언되고
라마 불교의 지도자가 나라의 영적 스승으로 앉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몽골에서 라마 불교가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은
이 라마 불교가 귀족들만의 종교였지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종교가 되지 못하였기에
제국의 몰락과 함께 몽골에서의 라마 불교도 힘을 잃고 점점 무속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러다가 70년간의 사회주의 국가 시대에는 강제적으로 라마 불교 사원들이 폐쇄되고
라마 불교 승려들은 속세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고 수많은 승려들이 속세로 복귀하다가
1988년 12월 제5차 몽골 공산당 회의에서의 민주화를 선언으로 자유를 얻어
최근에는 다시 옛날의 전성기를 회복하려고 온 힘을 쏟고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복음이 들어가기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정말 한국의 초기 선교 상황처럼 너무나 비슷한 가운데 있습니다.

현재 몽골 울란바타르 대학 총장으로 있는 윤순재 목사는 몽골의 선교적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의 몽골은 6가지의 선교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몽골은 미전도 종족 지역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말하자면 1990년까지 단 한명의 신자도 보고되지 않은 나라이며,
  국민의 대다수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 국가가 몽골이다.
  그래서 몽골은 지금보다도 더 많은 선교사가 필요하며, 더 많은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둘째, 몽골은 기독교사로 볼 때 기독교 초기상황의 나라이다.
  기독교가 몽골에 소개된지 이제 몇 년 안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제 약 10년 정도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복음의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용어의 문제, 교회의 직제, 지도자 발굴과 훈련, 각종 기독교 자료의 번역과 출판,
  할 일이 너무나 많은 나라가 몽골이다.

  셋째, 몽골은 복음에 대한 수용적 자세가 높아서 많은 추수가 예상될 뿐만 아니라
  향후 기독교의 성장속도가 아주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이다.
  왜냐하면 몽골은 지난 70년 동안 사회주의 아래 지내오다가 갑자기 민주화로 선회하여
  가치관의 혼란과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복음에 대하여 수용적인 태도를 갖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많은 추수가 예상된다.

  이것은 마치 한국 동란 후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복음이 잘 전파되었고
  다양한 동기에서 교회를 찾았던 과거 한국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넷째, 몽골은 선교 연합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그렇게 된 이면에는 영하 20도에서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추위와 건조한 기후
  그리고 1990년대 초기의 물자의 부족과 정부의 선교활동 탄압 등으로 인하여
  선교사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도 연합하여 하나만 세웠고
  성경과 찬송가를 연합하여 번역 출판하였는데
  이러한 것은 선교 연합 활동이 잘 되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다섯째, 몽골은 선교 활동에 대하여 정부의 제약이 있는 곳이므로 창의적 접근을 요하는
  나라이다.
  현재 몽골 정부로부터 선교사 비자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이기에
  몽골에서 선교를 하려면 다른 비자를 가지고 들어와서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선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의 비자를 가지고 들어와서 선교활동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기에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다가 만일 선교 활동 하던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입국 목적 이외의 활동을 했다고
  그에게 경고하거나 추방하는 경우도 있기에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여섯째, 몽골은 한인 선교사가 활동하기에 아주 유리한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몽골에 의해 침략을 당한 적은 있지만
  반대로 몽골에 대해 피해를 입히거나 몽골과 안좋았던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몽골에 접근할 때 정치적 역사적 장애가 별로 없는 나라이다.
  뿐만 아니라 몽골 사람들은 한국 국민에 대하여 매우 친밀한 감정을 지니고 있기에
  이것 또한 선교에 아주 좋은 바탕이며
  또한 외모나 언어도 우랄 알타이어권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한인 선교사들은 몽골 언어를 어떤 나라 선교사 보다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저는 이 6가지의 몽골의 선교적 특징을 이 시대에 우리 한국 교회을 향하여 새롭게 주시는
선교적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이 몽골 이외에도 선교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가 가장 잘 할 수 있으며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며
또 추수라는 측면에서도 가장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최근 10년 전에 그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금 전에도 설명드렸지만 현재 몽골 상황이 무제한으로 선교 가능한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 제약이 있고 때로 어려움이 있으며 때로 핍박이 있어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고
전도와 회개와 세례와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몽골 선교상황을 오늘 본문과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본문 5절 이하에 기술된 것처럼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마술과 귀신과 온갖 잘못된 것에 의하여 영향 받으며 살다가 복음이 들어가니
사마리아 온 성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고
진심으로 복음 전도자를 따라 다니며
복음의 역사로 인하여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보고 놀라는 모습과 같이

오늘날 몽골은 약 700년이라는 오랜 세월 속에 영향 받은 라마 불교에서 깨어나
복음을 듣고 보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함께 보시겠습니다. 본문 5-13절입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은 예루살렘이나 유대에는 복음을 전했지만
사마리아에는 그동안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데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나 할 수 없이 일단 피신한 곳이 사마리아였고
그래서 일단 들어간 자들이 복음을 1차로 전한 후에
나중에 빌립이 들어가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이번에 몽골 방문했을 때 이성근 선교사님을 만나 잠시 그동안의 선교 사역을 들었습니다.
그때 지난 2월 한국에 나와 저희교회 청년들의 모금으로
동산병원에서 눈 수술하고 돌아가려고 했던 에르헴바이르 자매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자매는 비록 한국에서 눈 수술은 하지 못하고 약만 받아 가지고 돌아갔지만
그 무엇보다도 복음을 안고 돌아가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던 중
어느 부흥 집회 시간에 성령의 역사로 한 눈이 떠졌다는 것입니다.

그 후 이 자매는 더욱 굳센 믿음과 용기, 기쁨을 가지고 다른 집회 장소에 가서
자신이 믿음과 기도로 눈이 떠졌기 때문에 이렇게 외쳤다는 것입니다.

  여기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보지 못하는 소경, 일어나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있으면
  믿음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그 자리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작금(昨今)의 몽골 상황은 여러 선교사님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처럼 성령님께서 정말 강권적으로 역사하는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마치 본문에 나타난 사마리아 지역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마리아 지역이 깊은 흑암에서 깨어나고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며
주님의 권능과 권세가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말하자면 이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사마리아 성령의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마리아 지역 선교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매주 중요한 질문인데
이 사마리아는 지정학적으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요충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대인이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전파하려고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이 사마리아라는 지역인데
이와같은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려고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는 몽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습도 비슷하고 언어도 비슷하며 문화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 한때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로서
세계를 향하여 지금도 복음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몽골에 복음을 잘 전하기만 하면 그들이 그 복음을 말에 실어서
동서남북 세계로 복음을 잘 전하게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으면서 한가지 중요한 점을 짚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요충지인 이 사마리아에 빌립이 내려가서 복음을 어떻게 전했는가
무엇이라고 전했는가 하는 점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선교하는 열정도 좋고 그래서 달려가고 시도하는 것도 좋으나
정말 중요한 것은 정작 전하는 그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이렇게 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단 두 가지만 전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냐?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무엇이며 어떻게 누리는 것이냐?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귀한 이름이며 놀라운 이름이며 영광스런 이름이냐?

이 두 가지만 전했다는 것인데 그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완전히 뒤집어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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