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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란 무엇인가 “엘리: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것” / 삼상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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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12) “엘리: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것”   
삼상3:1-14

지난 주일 무질서하고 혼란한 사사 시대의 죄악상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사사 시대란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왕이 즉위하기까지 이스라엘의 혼란한 시대를 말하는데 사사 시대의 죄악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자기 소견만을 너무 강하게 나타내고 주장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거추장스러운 사람이고 불필요한 사람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웃을 무시하고 자기의 소견과 자기의 이익만을 내 세우는 이기적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사 시대는 종교 질서도 가정 질서도 나라 질서도 무너진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사사 시대 말기의 죄악상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엘리는 15명 사사들 중 14번째 사사인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사사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종교 지도자요 정치 지도자요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오늘 아침 엘리의 죄악상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엘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엘리는 그 당시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종교의 지도자였고 정치와 군사의 지도자였는데 엘리는 그 당시 가정과 종교와 정치의 현주소를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엘리뿐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엘리의 죄에 동참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의 죄는 한 마디로 눈이 어두운 것이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삼상3:2). 육체적인 눈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어두웠습니다. 엘리가 처음에 사사와 제사장이 되었을 때는 눈이 밝아서 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눈이 어두워졌고 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의 죄는 한 마디로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첫째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3:1).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이상이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엘리의 시대는 종교적으로 캄캄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입니다. 사무엘 3장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이 사무엘게는 들렸지만 노인 엘리에게는 들리지 않은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음성을 네 번이나 들었지만 노인 엘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엘리의 죄는 한 마디로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안일에 빠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종교적 형식과 의식에 빠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세상 염려에 빠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세상 일에 바쁠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죄와 타협할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고, 자기의 소견과 고집이 강할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불행한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의 찬송이 “구속한 주는 간 곳 없고 세상과 나만 보이도다” 란 유행가로 바뀌어질 수가 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도 주님을 만난 후 처음에는 눈이 밝아서 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눈이 어두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24:16). 눈이 어두워서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부자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자들도 눈이 멀어서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강변교회에 와서 주님을 보고 듣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강변 소식지에 주님을 만나고 보고 듣게 된 감사의 간증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다음은 어느 새신자 출신의 간증입니다. “포도주와 떡이 주님의 진정한 피와 살이 되어 내 속에 들어와 뜨거운 어떤 것이 가슴을 꽉 채우며, 벅찬 은혜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나의 죄로 인해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구나 나의 죄가 너무나 커서 하나님이 하나뿐인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신 거 였어… 하나님! 저의 죄를 회개하나이다.” “오늘은 내가 거듭난 날, 십자가의 주님을 만난 날, 내 못된 자아가 깨어진 날, 주님 감사합니다. 진실로 감사합니다.” 눈이 열려서 주님이 보이고 십자가가 보이고 나의 죄가 보이게 된 것을 고백한 감사의 간증입니다. 다음은 어느 청년의 간증입니다. “기적은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악인이었던 나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이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듯 합니다. 더 이상은 지난 날의 내가 아닙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할 것이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할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이 보이고 나의 죄가 보이고 불쌍한 사람들이 보이게 된 것을 고백한 간증입니다. 마음이 열려서 사랑까지 하게 된 것을 고백했습니다. 다음은 어느 성가대원의 간증입니다.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며 믿음의 친구들과 자라게 하셨고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강대상과 가까이 있던 성가대 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가까이 들으며 믿음도 자라게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을 눈물로 알게 하시고 저에게 음악과 믿음의 모델이신 박치원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의 그릇으로 쓰임 받으려면 많은 기도와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고 청년부 안에서 성숙한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해서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된 것을 고백하는 감사의 간증입니다. 다음은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꿈은 여기까지입니다. 꿈에서 마음껏 찬양하고 깬 저의 몸은 새 털같이 가볍고 구름 위를 나는 듯한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여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기도 응답임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눈과 귀와 영혼이 열려서 주님을 보고 듣고 찬양하는 감사의 간증입니다.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고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인데 엘리는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둘째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자신도 자녀들도 보지 못했습니다.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의 죄도 자녀들의 죄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2:29). 이 말씀을 보면 엘리는 성소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고 아들들을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했습니다. 종교를 하나의 의식으로 직업으로 하나의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불량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제사를 멸시하며 제물을 갈고리로 낚아채어 훔쳐가곤 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성소에서 간음행위까지 자행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를 멸시하고 주일 성수를 멸시하고 하나님께 드린 또는 드려야 할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착복하고 그리고 간음행위까지 자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런 악행을 금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저 이렇게 부드럽게 타이를 뿐이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삼상2:23,24). 그런 부드러운 책망에 불량배 아들들이 아비의 말을 들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상상2:25). 이와 같은 부드러운 책망을 한 엘리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아이 사무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했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3:13). 엘리는 자기의 죄와 아들들의 죄를 심각하게 느끼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자기의 죄가 보이지도 않고 자녀들의 죄가 보이지도 않는 불행하고 위태로운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예배할 예배의 직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면서도 그 죄의 심각성을 느끼지도 보지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집사의 직분 권사의 직분 장로의 직분 교역자의 직분을 망각하고 예배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면서도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물질과 시간과 몸을 내 사욕을 채우는데 사용하면서도 그 죄의 심각성을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는 불행하고 위태로운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예배와 주일 성수를 멸시하고 다른 짓들을 자행해도 “너 왜 그러냐 너 왜 그러냐”라고 부드럽게 책망을 하면서도 실상은 그것을 묵인하고 눈 감아주는 무서운 죄, 저주 받을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가리켜 “저주를 자청하는” 죄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목사님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갈 때 엄하게 매를 때리기도 했고 집에서 내 좇아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도 제가 어렸을 때 가끔 잘못된 짓을 하면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고 방에서 내어 쫓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런 적이 별로 많지는 않았지만 매를 맞으면서 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저의 어머니는 저를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을 아기 때부터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기 때부터 성소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했습니다. 한나에게 있어는 신앙교육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자식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들들이 제사를 멸시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엘리는 제사를 멸시하는 자기의 죄와 아들들의 죄를 심각하게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정치 사회 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엘리가 나이 많아 눈이 점점 더 어두워졌을 때 이스라엘에 국가적 위기가 닥쳐왔습니다.불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나가서 싸웠지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사 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엘리는 국가적 위기가 닥친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영적 지각이 없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자를 엘리에게 보내어 엘리와 그 아들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이스라엘에 환난이 임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삼상2:30-32).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싸인인 것을 깨닫고 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의 제사를 드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두 번째 나아가서 불레셋 군대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실로에 가서 법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아갔습니다. 실로에는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는 대신 법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아갔습니다. 종교의 외부적 시설과 의식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엘리는 그저 보고만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또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형식주의를 미워하십니다. 그들의 종교적 형식주의와 의식주의는 하나님의 진노를 더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보병 삼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법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장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패전의 소식을 들은 98세의 노인 엘리는 의자에서 자빠져서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가 크게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가 처했던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위기의 때를 돌이켜 봅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부산으로 피난 갔던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은 각각 부산 중앙교회와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자들 수백 명들과 함께 민족의 죄와 교회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누구를 증오하며 대적하기 전에 누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민족의 죄와 교회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유엔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제2의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1의 부흥은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서 일어났고 제2의 부흥은 6.25전쟁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도 보지 못했고 자신과 자녀들의 죄도 보지 못했고 민족의 운명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교회와 사회와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제멋대로 자라도록 방치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멸망에서 구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였습니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삼상1:7). “여호와께 통곡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삼상1:10). 가정에 괴롭고 슬픈 일이 있었던 것이 오히려 한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을 열고 심정을 통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은 한나는 다음과 같은 영혼의 노래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다”(삼상2:1,2).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좋은 학교나 유학을 보내는 대신 하나님의 집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평생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봉사하게 했습니다.

아이 사무엘도 아이 때부터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사무엘은 나라와 민족이 처한 패망을 바로 불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을 모두 미스바 광장에 모이게 했습니다. 누구를 대적하고 타도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레셋을 대적하고 타도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인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겠다고 서약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삼상7:6).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였더라”(삼상7:9). 그 이전에도 엘리때 이스라엘이 광장에 모여서 큰 소리로 외친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불레셋 원수를 갚자고 크게 소리를 지른 일이 있습니다. 법궤를 의지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소리를 지른 일이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삼상4:5). 그러나 그 소리는 분노의 소리였지 회개의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엘리 시대의 소리는 분노와 타도의 소리였고 사무엘 시대의 소리는 회개와 헌신의 소리였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가득한 소리도 회개와 헌신의 소리보다는 분노와 타도의 소리인 것 같습니다.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고 자신을 보고 자녀들을 보고 민족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들 하나하나가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과 자녀들의 허물을 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족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바로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민족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겠다고 서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들의 귀를 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들의 무릎을 꿇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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