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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 롬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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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본 문 롬 13:1~7

독일의 한국 대사관 문화홍보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www.Koreaheute.de)에 쉬테판 뮐러라는 독일 사람이 기고한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이 글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사진 한 장 때문에 한국, 아니 한민족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두 명의 일본인이 1등과 3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두 일본인의 표정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이다. 왜 두 사람은 슬픈 표정으로 시상대에 서있는 것일까?

  그들은 바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코리아의 ‘손’과 ‘남’이라는 젊은이었다. 시상대에 오른 그들의 가슴에는 일장기의 붉은 원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일본 국기가 게양되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슬픈 얼굴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왜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와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가 저렇게 고개를 숙여야 하며,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까? 이 사진 한 장은 우리에게 나라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나라는 마치 울타리와 같습니다. 양이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보호를 받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나라 안에 있을 때 보호를 받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중국에만도 57개나 되는 민족들이 나라를 잃어버린 채 중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대표적으로 티벳족, 만주족, 회족, 위글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마음 놓고 자기들의 뜻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비전을 잃어버린 채 남의 눈치만 살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종교마저도 자기들 뜻대로 지켜갈 수가 없습니다. 울타리를 잃어버린 양들처럼 불안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인의 성공과 출세도 나라가 있고 나서입니다. 가정과 가문의 번창도 나라가 있고 나서입니다. 기업의 부흥과 발전 역시 나라가 있고 나서입니다. 나라가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기 때문입니다.

  슈테판 뮐러는 이어서 또 다른 사진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이어갑니다.

  52년 후 88서울 올림픽. 개회식 세레모니에서 백발이 성성한 손기정씨가 세 살배기 아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손에 성화를 들고 달린다. 그 당시 모든 한국인들은 이 노인에게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손기정 옹이 올림픽 성화를 들고 달리면서 그렇게 춤을 추었을까요? 이 사진은 우리가 나라를 지켜야 할 이유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저는 중국선교 여행을 하면서 우리 국력 신장을 실감합니다. 지난 5000년 동안 우리는 계속 중국의 지배를 받거나 중국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복음도 저 중국 땅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중국을 통해 들어왔고, 번역 성경도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고, 최초의 교회인 소래 교회도 중국을 통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중국에 가서 선교를 합니다. 신학교를 세웁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국력이 과거와 달리 신장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중국에 선교를 하려면 우리 국력이 중국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방글라데시나 저 아프리카 콩고 같은 나라에서 선교한다고 선교사가 왔다면 우리가 그 선교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 세계에 선교하려면 우리 국력이 선진국으로 더욱 발돋움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국가는 선교나 개인의 삶을 위한 후견인입니다. 후견인이 든든하면 정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국가가 힘이 있어야 우리가 정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의 한 앙케이트 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선우’라는 결혼정보회사에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 조사를 했습니다. 결혼 조건으로 이민 가능여부를 내 건 사람이 무려 56%나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 이민 의향을 내 비친 사람이 무려 71%나 됐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할 수만 있으면 이민을 가 보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일제 하에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잃어버려 어쩔 수 없이 이 땅을 떠나 저 만주로 하와이로 이민 길을 떠났습니다. 외국으로 나가 나라를 되찾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이민 길을 떠났습니다. 나라를 되찾고 나면 반드시 돌아오리라 굳게 마음  먹고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젊은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민 길에 오릅니다. 나라가 자기들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이 땅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자기 삶에 거추장스럽고 걸림돌이 된다고 나라를 버리고 이 땅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바로 나라사랑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 나라 대한민국을 누가 사랑할 것입니까? 자신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나라를 버린다면 이 나라 대한민국을 누가 지킬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나라 사랑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나라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위정자들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어서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다해서 따를 수 없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경하며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선하게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대외적으로 북한의 핵문제로 안보상황이 여간 위태로운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상황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10년 째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때 대내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망국적인 지역 갈등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세대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386세대라는 새로운 세대가 참여의 정부에 들어와 힘을 얻으면서 이런 세대간의 갈등은 점점 권력 다툼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 노와 사의 갈등 온통 나라 안이 대립과 갈등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대내외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국가 리더십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10%대로 추락하고 있고,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안정적인 리더십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있고, 여기저기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우나 고우나 하나님께서 대통령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를 믿고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문제를 누구 탓으로 돌리고, 그를 비방하고 그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면 일단 속은 후련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만 더욱 키우게 됩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듭니다.

  청와대가 언론에 대해, 코드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적대감을 버려야 합니다. 언론도 국민도 청와대에 대한 원망과 적대감을 버려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대감을 버려야 합니다.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를 이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보다 차분하게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애국자여야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애국자들이었습니다.

  구약을 보면 모세는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나라 없이 애굽에 종살이하던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목숨을 던졌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보장된 희망찬 미래를 나라를 위해 포기했습니다. 출 32:32을 보면 심지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려면 차라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신약을 보면 바울도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사명은 목숨을 다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롬 9장을 보면 이방인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이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9:3에 보면 자기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느 1:4를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고국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저가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가슴에 총탄이 박혀서 그것을 빼내는 수술을 받는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좀 더 깊이 째 보십시오. 내 가슴 속 깊이 조국이 들어있습니다”

  시인 브라우닝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마음을 열어보면 마음 깊이 새겨진 한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바로 조국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슴 속에 조국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아! 대한민국” 이 소중한 이름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시 79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시입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이 나라와이 민족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짐은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독재자 로이 14세 장례식 때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황금으로 만든 관에 누워 대성당 중앙 앞에 안치되었습니다. 대성당 내부의 등불은 다 꺼진 채 오직 한 자루의 큰 초만이 황금관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루이 14세야 말로 가장 위대한 왕이었음을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드디어 유럽의 각국에서 왕들과 귀족들이 모여들었고 장례 의식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돌연 집례 하던 사제가 그 초를 끄고는 이렇게 외쳤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에 빛나는 위대한 왕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섬길 때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점을 철저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 열강들이 우리 민족의 장래를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위정자들 지도자들 저들이 이 나라를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 잠시 쓰일 뿐입니다. 이 나라의 오늘과 내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철저한 신앙고백 위에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시 79:9을 보면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시지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이런 기도가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1980년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셨던 일가 김용기 장로님이 책 한권을 출판하여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어려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 책의 제목입니다.“조국이여 안심하라!”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실제로 김용기 장로님께서 자기 기도실에 친필로 써 붙였던 휘호였습니다. 이 분은 매일 나라를 위해 4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분은 자기가 나라의 파숫군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외면하시지 않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애국인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한다고 대통령을 욕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욕하고, 우리 현실을 원망하는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나라를 위해 한 평생 헌신하셨던 김구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일을 찾는 백성은 흥하고, 원망할 것을 찾는 백성은 망한다”

  우리가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말보다 묵묵히 나라를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위해 앞장 서야하겠습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벌어진 제 3차 중동전쟁을 ‘7일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300만이었고, 이집트는 1억이 넘는 대국입니다. 놀랍게도 300만의 이스라엘이 1억의 이집트를 불과 7일 만에 항복을 시키고 만 세계 전쟁사에 유래가 없는 전과였습니다.

  한번은 이집트의 대공포가 이스라엘의 전투기 한 대를 격추시켰습니다. 추락한 비행기에 가보니 놀랍게도 조종사가 만삭된 임산부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인과 어린 아이만을 제외하고는 만삭된 임산부까지도 전투에 참가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도 이런 임산부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기에 진심으로 나라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나라 없이 진정한 나 개인의 성공도 행복도 없습니다. 나라 없이 가문의 번창도 영광도 없습니다. 특별히 나라 없이 교회도 없습니다. 일제시대 나라를 잃어버리자 교회도 문을 닫았던 기억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 속에 나라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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