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일어나서 함께 가자 / 아 2:8~13

  • 잡초 잡초
  • 384
  • 0

첨부 1


제목 : 일어나서 함께 가자 
본문 : 아가 2:8~13 (구960) 

요즈음에 신문을 보기가 겁난다. 요즈음에 뉴스를 듣기가 꺼려진다. 사회 각층에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볼 때에 안타깝다. 서로 자기의 밥 그릇을 챙기느라 분쟁이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자살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 주변의 상황을 보면 계속해서 넘어지는 사건만 나온다. 그러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속에 소망이 있다. 넘어지나 일어서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 오늘 이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일어나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일어설 수 있겠는가?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일어서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진 상태로 멸망받기를 원치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2-2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넘어진 자를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고 있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여 먹고 사는 앉은 뱅이가 있었는데 베드로와 요한을 향하여 계속하여 구걸한다. 아마도 이 거지는 동전 몇닢이면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드로가 앉은 뱅이에게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다.
앉은 뱅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인줄 알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에게 줄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한다. 물질이 없으면 넘어짐이요, 물질이 있으면 일어섬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산다. 그러나 우리를 일어서게 하는 궁극적인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이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일어서게 하시는 분이다. 지난 여름에 소록도에 가서 너무나도 심한 고통 속에서 사는 분들을 봤다. 코가 없고, 눈이 멀고, 손 발이 없는 분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예수가 있었다. 얼마든지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이 예수를 믿고 그러한 상황에서 소망 중에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가 좋다. 예수가 좋다. 예수님은 우리를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하갈이라는 몸종을 두었다.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그러다가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의 사이에서 이삭이 태어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몸종에서 태어난 이스마엘과 부인에게서 태어난 이삭이 서로 싸우면서 가정에 어려움이 닥치게 된다. 결국 몸종 하갈은 귀한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떡과 물을 가죽 부대에 넣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시던 물도 떨어지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갈이 소리 내어 운다. 버림 받은 하갈을 생각해 보라. 엄마의 눈 앞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목놓아 우는 하갈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 때에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물을 보셨다. 하갈에게 말씀하기를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하는 세밀한 음성이 들렸다. 그러자 하갈의 눈이 밝아져 샘물을 보고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죽어가는 하갈에게 마시게 하셨다.

버림받은 하갈, 넘어지고 일어설 소망이 없는 하갈을 하나님은 일으켜 세우셨다. 넘어진 하갈을 하나님은 붙잡아 주셨다.
하갈은 죽었지만 하갈을 일으켜 세우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성전 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와 예수의 이름을 전하던 베드로는 죽었지만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지금도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신다.

**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

둘째로, 가야할 길이 있는 사람은 넘어지나 다시 일어선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 “백범일지”에 보면 그의 활동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 나라가 일본에 억압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백범 김구 선생이 친구와 함께 중국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먼 길로 여행을 떠난다. 참빛 장사로 가장해서 이북을 거쳐서 중국 땅으로 간다. 가는 도중에 불한당을 만나서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김구선생은 그곳에서 자기의 인생을 그 사람과 끝장내지 않는다. 그래 우리가 이곳에서 맞고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내가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서 넘어지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서 가야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피를 닦는다. 옷을 다시 정리해서 입는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은 아무 곳에서 넘어지지 않는다. 다시 일어난다. 다시 시작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한다. 그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야할 곳이 있다. 배고픔도 경험한다. 목마름도 경험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계속하여 전진한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은 넘어지는 것 같지만 다시 일어선다.

아가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때에 읽었던 말씀이다. 애굽의 고통 중에서 그들이 일어나 가나안을 향하여 일어나는 시기이었다. 가야할 곳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일어났다.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내려오니 제자들이 졸고 있었다. 바로 그 때가 유월절기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곳에 앉아서 졸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일어나서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자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은 넘어지나 다시 일어선다.

바울을 보라.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는 로마로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죄인의 몸이 되어 배를 타고 로마에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배가 풍랑을 만나 깨어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질려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이 말씀을 들은 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말하고 먹을 것을 나눠주며 음식을 먹었다.
바울에게는 분명히 가야할 곳이 있었다. 가이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가야할 길이 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상급받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 앞에 면류관을 받는 것은 바울 만이 갈 길이 아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다.

나의 인생에 가야할 곳이 없는 사람은 살다가 힘들면 자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 가야할 길이 분명히 있는 사람은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줄로 믿는다.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셋째로, 함께 일으켜주는 영적인 친구가 있기에 넘어지나 일어선다. 그러기에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일어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나 홀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일으켜 세워주며 함께 가는 길이다.

신명기 말씀에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을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려주라.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라.” 함께 길을 가다가 옆에 넘어진 나귀나 소가 있어도 그것을 일으켜 세워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넘어진 자를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할 일이다. 나의 손을 통해서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전도서의 말씀에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주변에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교회는 대형 교회이기 때문에 반드시 작은 그룹에 소속해서 일을 해야 믿음이 균형있게 잘 성장할 수 있다. 어느 남선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같은 남선교회에 속한 분의 가정에 어려움을 당했다. 거처할 수 있는 장소까지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남선교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서 그 가정에 피할 길이 열리게 되었다.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어 좀더 편안하게 살 길이 열렸다. 넘어지는 자를 붙잡아 주며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음성을 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적인 친구가 되자. 서로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 되자. 넘어진 자들에게 다가가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외치자.

지난 주에 장례가 다섯 건이 났다. 장례사역팀에서 얼마나 수고 많이 하는지 모른다. 가브리엘 성가대에서 나와서 조가도 부르고, 장례사역팀에서 운구도 한다. 토요일 아침에 집사님이 나오셨다. 그 집사님은 오후에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다. 그런데 집사님은 그날 아침에 성도의 관을 들어주는 자리에 나와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않 믿는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집사님이 관을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볼 때에 눈물이 핑돌았다. 코 끝이 시큰해 졌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슬픔을 당한 가정에 찾아가서 위로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 다운가?

세상이 이렇고 저렇고 해도 우리에게는 함께 일으켜 주는 영적인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서로에게 일으켜 세워주는 영적인 좋은 친구가 되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