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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에서 하나님을 성공적으로 예배하라 / 사 5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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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하나님을 성공적으로 예배하라

젊은이 설교 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이사야 58 :1-12

  시골에서 살다가 모처럼 서울 방문을 한 시골 노인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바쁘게 살기에 이 노인을 모시고 나들이 나갈 친척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아들이 하루는, '심심하실텐데 극장 구경이나 하고 오시라'며 돈을 드려 보내 드렸습니다. 극장 구경이 처음이어서 그러겠다고 집을 나선 노인은 30분이 채 안되어 돌아오셨습니다. "아니, 왜 벌써 돌아오십니까?" 그러자 시골 노인은 좋아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똑똑한 서울 사람들도 어리숙한 데가 있더구먼. 아니, 글쎄, 내가 30분씩이나 여기 저기 극장 구경을 했는데 그 바보 같은 사람들이 돈도 안 받지 뭐야. 극장 구경 공짜로 잘 했어" 극장 구경하고 오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극장 건물을 구경하고 온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예배도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열심히 다닌다고 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저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마당만 밟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배에 성공자입니까? 주일날 나와서 설교 듣고 찬송가 몇 곡 부르고 헌금하고 기도 한 마디 하는 것으로 예배를 마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예배에 실패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배의 참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감격을 누리고 있습니까? 예배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러지 않다면 예배에 실패자입니다.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공적인 예배자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새롭게 세웁니다. 예배를 통해서 삶에 능력을 얻습니다. 예배가 감격적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늘 주님을 만납니다. 예배가 그립습니다. 예배가 없으면 삶에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가 나의 인생입니다. 이런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예배에 참으로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예배해야할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배에 참으로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예배에 참으로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은 예배가 삶이요 삶이 곧 예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의 공적인 예배는 예배의 출발입니다. 교회에서의 예배는 삶으로 향하는 예배의 출발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삶의 예배를 새롭게 만드는 예배의 출발입니다. 교회의 예배만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삶이 곧 예배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예배에 있어서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삶이요, 삶이 곧 예배이어야 하는데, 예배시간만 예배이고 예배시간이 끝나면 예배가 종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예배이고, 예배이어야 합니다. 참 된 예배자의 삶은 곧 예배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삶은 곧 예배이어야 합니다. 생활은 곧 예배이어야 합니다. 삶 전체를 예배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4절에서 5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선적인 예배에 대해서 지적합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된 것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예배와 삶이 분리될 때 금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우리의 신앙은 위선이 나옵니다. 삶과 예배가 분리될 때 종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필요한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곤고할 때 한 번쯤 불러서 위로를 받는 정도 밖에는 안 됩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되면 이득에 따라 신앙생활이 나타납니다. 필요할 때면 하나님을 찾고 필요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된 회사원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회사에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자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된 가정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만 직분자이지 집에서는 직분이 사라졌습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된 사업가가 있습니다. 모든 운영방법은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오면 직분자입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 있으면 삶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삶이 곧 예배인 것은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젠 예배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삶을 예배의 삶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삶에서 주님을 예배하며, 삶에서 주님을 만나며, 삶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삶에서 주님을 높이며 살기를 바랍니다. 내 예배가 교회를 벗어나 삶에서도 드려질 때 참으로 성공적인 예배자가 됩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둘째, 예배에 참으로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예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예배자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참 된 예배의 본질은 뭐냐? 하나님이 예배에서 원하는 것은 번제나 제물이 아니라 바로 나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원하는 것보다 예배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원하지 않고 헌금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원하지 않고 찬송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봉사를 원하지 않고 봉사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예배에서 나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원하십니다. 믿습니까? <아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지적하시면서 금식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금식을 왜하느냐? 하면서 동기가 잘못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왜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은 금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나를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굶는다는 것은 나를 깎는 행위이니다. 금식은 바로 나를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예배의 제물이 되어 드려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 제물을 원치 않고 우리가 희생 제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곧 하나님은 나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시편 40편 6절에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하나님은 나를 원하십니다. 인정하십니까? <아멘>

  <캐롤 메이홀>이란 분이 이런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했습니다. 어느 학교 선생님에게 열 두 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딸에게 어머니 역할까지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일 때문에 딸에게 시간을 충분히 내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고,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서 크리스마스 휴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시작된 첫 날 딸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지내면서 식사시간 이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랬고, 또 다음 날도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하루 하루를 외롭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뜨개질로 짠 한 켤레의 양말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이걸 다 짜야 한다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제가 방문을 잠그고 지금까지 했던 건 바로 이 뜨개질이었어요. 이젠 다 짰어요. 아빠 양말이에요! 좋으세요?" "암, 좋고말고, 얘야, 정말 예쁘게도 짰구나, 고맙다." 아빠는 딸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딸을 덥석 껴안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철없는 아이야. 양말은 시장에 가서 사면되지 않니? 난 양말 같은 건 원하지 않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단 말이야! 난 너와 함께 지내며 너의 사랑을 받고 너의 관심을 사고 싶었던 거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에 목말라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애타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서 애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삶에서 나를 원하고 계십니다.

  나를 원하고 있는 주님에게 청년 여러분의 마음을 드려보십시오. 시편 51편 16절에서 17에 보면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청년 여러분, 주님은 예배를 통해서 이 시간 나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를 드리십시오. 내 마음을 드리십시오. 이것이 참 예배입니다. 나를 찾으시는 주님 앞에 이 시간 마음을 드리십시오. 주님 앞에 자신을 드리십시오.
 
  셋째, 예배에 참으로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제사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이 곧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서 바로 나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제사보다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제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은 더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의 삶을 본문은 지적하면서 참으로 예배하는 것은 삶에서 주님 뜻대로 사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8장 6절에서 7절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 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이 바로 참 예배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예배에서 제사를 원하는 것보다 순종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입니다. 이 예배가 성공하는 예배입니다. 이것이 삶으로 드리는 산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삶에서 헌신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미가서 6장 6절에서 8절에 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을 간구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 내 삶에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살고 있습니까?

  대학에 들어간 육군신병이, 내가 이 3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면서 일생 추억에 남을 만큼 군인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선배되는 병장에게 물었습니다. "군인생활을 좀 깨끗하게 명예롭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좀 자세하게 가르쳐주십시오." 선배되는 병장은 껄껄 웃으면서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군인생활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만 하면 되느니라. 명령 떨어지는 대로만 시간 시간 복종하면 돼. 앞에 할 것까지 미리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어," "아 간단하군요." 가만히 있다가 이 머리 좋은 청년이 다시 질문합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 사람은 이렇게 하라. 저 사람은 저렇게 하라, 하고 여러 상관이 명령을 각자 다르게 내리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 사람아, 별걸 다 걱정하는군. 그런 때에는 말이야, 최고 계급자가 누구입니까? 어는 때에든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세 위에 권세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이 명령에 복종하면 모든 것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눈치는 볼 것이 없습니다. 인생의 최고의 계급자, 가장 높은 자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모든 문제는 단순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샘 슈메이커>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10퍼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트의 행복을 누릴 가 있다." 이곳에서의 순종이 바로 참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세상에서 내가 사는 삶의 영역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의지, 결단, 이 결심과 순종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이 곳에 당신의 손을 이용하지 않고 나를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곳에 나를 있게 했습니다. 내가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이 바로 그 곳에서 나의 참 예배입니다. 주님은 내가 있는 이곳에서 그 뜻대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곳에서 참으로 순종으로 예배하는 나를 찾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주님은 지금 이곳에서 나의 삶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곳에서 내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만 드리는 교회에 계시지 않을런지 몰라요. 아마도 주님은 내가 살고 있는 현장에서 나의 예배를 기다리고 계실른지 몰라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있는 나를 원치 않고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나의 순종하는 삶의 예배를 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의 말에 동의하시면 아멘 합시다. <아멘>

  그렇게 내 삶에서 순종으로 예배하는 나를 보실 때 주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주님은 나를 받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주님은 나의 삶에 더 풍성한 삶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받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본문 이사야 58장 8절에서 12절 보면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 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에게 참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면서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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