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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 / 출 35:4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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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 / 출 35:4 - 9

[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6]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7]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8]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9]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저의 신앙철학과 목회철학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것 하나는 ‘영광’이라고 하는 이 용어를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해 드리고 인간에게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이라고 하는 이 용어는 아주 무거운 단어입니다. 하나님께 사용해 드려야만 어울립니다. 사람에게 사용하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경스럽습니다. 그런데 지상에서 오직 한 곳, 주 예수님의 교회에만큼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the glorious of our road!) 지상에서 오직 한 곳 교회만이 ’영광스러운 곳‘이라는 이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감격하게 하는지요? (할렐루야)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십니다.(4절) 현대어로 번역하면 ‘교회당을 건축하라’는 뜻입니다.

주전 1500년 경, 장소는 오늘의 저 이스라엘 남쪽 시내(sinai)광야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거친 광야 위에다 ‘아름다운 성막(집)’을 지어라 하십니다. 언뜻 보면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보세요. 메마르고 거친 광야 위에 ‘아름다운 성막’ 한 채가 세워진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 아니겠습니까? 신나고 황홀한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앞으로 40년 동안 이 시내 광야를 전전해야 하는데 성막이 없다면 너무나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성막이 있으므로 고달프고 지루한 광야 행진이지만 견딜 수 있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BC1500년 경, 저 시내광야만 광야가 아니고 오늘 21세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광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이 세상에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없는 이 세상이라면 우리는 답답하고 무미건조하여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 교회 없는 이 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교회를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 그 값으로 이 광야 세상에다 아름다운 교회,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할렐루야) 교회를 바라보는 기쁨으로 살아갑시다.

2. “너희의 소유 중에서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여호와께 드려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온 우주가 하나님의 것임을 믿으십니까?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각자 자기 가진 것을 내 놓아 그것으로 성막을 건설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원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라고 하십니다.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하다 급하게 해방을 맞아 떠나온 저 사람들에게 무슨 소유가 그리 많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소유물로서 성막 세우기를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마 간이 작은 사람들은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갈등하였을 겁니다.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이것을 바쳐 버리면 황량한 광야에서 무얼 먹고산담?’ 고향 땅에 들어가서 25평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해야 우리 다섯 식구 거처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일을 어쩌나?‘

하나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애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들만” 참여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정도 되면 감을 잡아야 합니다. 그 다음 대책은 하나님께서 다 갖고 계십니다.

요한복음11장, 베다니 마을 삼남매 사건이 기억납니다.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저희 오라비(나사로)가 살아나면 주님을 새롭게 믿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먼저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마르다, 마리아를 보고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으로 가보자. 너희들이 앞장서거라’ 이 말씀을 하실 때 두 자매는 감을 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 산소에 조문하려고 나서시겠습니까? ‘아하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오라비를 살려 내시고자 무덤으로 가자 하시는구나’ 이렇게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이런 믿음, 이런 순종, 이런 헌신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이런 미담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이런 미담을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이런 미담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할렐루야)

3. 금과 은과 놋으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십니다.(5절)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오시는 장소요, 이스라엘 중에 함께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거룩하게 구별되는 곳이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오늘의 신약시대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도 일곱별을 손에 붙잡으시고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한 곳이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즐거운 곳이요, 기쁜 곳이요, 행복한 곳입니다. 그래서 금, 은, 놋으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당 건축 이야기만 꺼내면 반사적으로 거부 반응을 나타냅니다. 반대하고 폄하합니다. 기업체의 물류저장 창고처럼 지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우주의 창조주시며, 통치자요, 주인이심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렇게 무성의 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죽었던 우리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던 우리가 기적처럼 살아났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특권을 입었다면 그처럼 무성의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큰돈을 풀어 자식 결혼시키고, 혼수 장만하고 거주할 집까지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이 때 부모는 전혀 아까운 마음 가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며느리를 얻고, 사위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결혼 잔치만도 못한 헌신을 해서 되겠습니까? 영생을 얻었고, 천국을 얻었고, 천국 시민권을 얻었고, 하나님 아버지를 얻었는데 우리의 감격과 기쁨과 헌신이 자식 혼사만큼도 안 된다면 어떻게 주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육신 거처하는 자기 장막은 세월이 갈수록 더 좋고, 더 훌륭하고, 더 새 것으로 장만하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모시고, 만나고, 찾아 뵙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거룩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예배하고, 신령한 하늘의 양식을 받아먹는, 정녕 내 육신이 거하는 장막보다 몇 갑절, 더 위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는 왜 힘껏, 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지를 않을까요?

교회는 아름다운 전통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빛나는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합니다. 금, 은, 놋같은 보석처럼 귀하고 빛나는 사람들로 변화되어가야 합니다. 빛나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정신과 전통이 가득 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 영락 교회 성도들은 피난 올 때 빈손 들고 나왔는데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석달 치 식량만 남기고 다 바쳐 성전 짓자고 외쳤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이에 호응하여 아름다운 돌 예배당을 지어내었습니다. 금, 은, 동 보석을 바치던 그 빛나는 정신이 지금도 영락교회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 보석 같은 믿음으로 지어진 성전을 출입하는 오늘의 성도들은 그 빛나는 헌신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6-9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 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질 보석이니라”

안정되게 살고 있는 21세기 오늘의 우리들로서도 이 물품들을 준비하여 성막 건축에 바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주전 1500년, 저 황량한 시내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특히 여성들로서는) 그럴 수 없이 희귀하고 소중한 애장품들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사실 위 예물들은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보낼 때 쓰려고 엄마들이 정말 애지중지 그 숨막히던 피난길에서도 끝까지 챙겨서 간직해왔던 물품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이 세상 사는 동안 한 번 정도는 눈물겨운 자기 헌신의 이력서를 남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업이나 자신의 야심을 위하여 일생일대의 모험을 한 번 정도는 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주고 계십니다. 실감나는 헌신, 정녕 아름답고 눈물겨운 헌신의 기회는 ‘교회당 건축’할 때 실천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릴 수 있는 믿음의 헌신을 보여 드립니다. 조용히 묵상해보면 아직 ‘참여와 헌신’이 미흡하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실 겁니다. 정말 우리 평생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한 번 드려 봅시다. 교회당 높이를 볼 때 우리의 눈물이 더 필요합니다. 교회당 안을 드려야 볼 때 우리의 피땀이 더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금, 은, 놋으로 성막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보석(소유물)으로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내 모든 소유 금, 은, 놋을 다 팔아서 건축해도 될 만큼 더 소중한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 가진 금, 은, 놋 보석보다 훨씬 더 소중한 하늘의 보화가 내려오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피흘려 세우셨고, 성령님이 항상 머물러 계시고, 하늘의 신령한 보화들이 날마다 한량없이 내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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