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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나누는 사람 / 엡 4: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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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나누는 사람들
본문:  엡 4:13-14 

오늘도 주님 앞에 모여 함께 예배 드리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초는 역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튼튼한 사람은 기초가 튼튼한 건물과 같이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믿음이 든든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튼튼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키울 수 있습니까? 

이 문제가 앞에 놓일 때에는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가지 방법으로 성장하기 힘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교회 생활을 잘하면, 믿음 성장에 큰 영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전수 하고, 양육 하고, 또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란 말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은 믿음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 신경>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한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하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곧 우리의 “아버지”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주님이신데, 이 분은 동정녀 탄생했고,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앞으로 재림하실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셋째, “성령을 믿고, 거룩한 공회를 믿고, 성도의 교통과 죄사함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생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아 갈 때에 성령이 오셔서 힘을 주십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한 공회, 즉 교회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을 믿고 소망하며 살아 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사실로 받아 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이 믿음이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어 나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장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이 성장합니까?  기도하면 믿음이 성장합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이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나눔의 방법입니다. 믿음을 나누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을 나눌 수 있습니까?  믿음이 무슨 피짜(Pizza) 같아서 이러 저리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믿음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좋아지고,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5병2어의 기적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빵 5개를 나누어 주는데, 나누어 주면 줄수록 더 많이 생겨서 5000명이 풍족하게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서로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많아지고,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많아지고 더욱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무엇을 나누어야 합니까?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을 나눌 수가 있습니까?

[1] 신앙 고백함으로 믿음을 나눕니다
우리는 믿음을 고백함으로 믿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일 예배 때마다 사도 신경을 암송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할 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 납니다. 

첫째, 동일한 신앙 고백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이 모였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동일한 신앙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게 될 때에, 우리에게 평화가 임하고, 안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함께 고백하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왜 다툼이 생깁니까?  다른 점이 크게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이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습니까?  쌍둥이라도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부각시키면 반드시 다툼이 있습니다.  반면 같은 점을 부각시키면 평화가 임합니다. 특히 신앙이 같으면, 종족이 다르고 사람이 달라도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믿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다시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갱신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때에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계약에 의해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신앙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일 때마다 이 신앙 고백을 해야 합니다.  구역 모임에서도 신앙 고백함으로 시작하고, 전도회 모임에서도 이 신앙을 고백함으로 모든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2] 간증함으로  믿음을 나눕니다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두번째 일은 자신의 체험을 간증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은 다릅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신앙을 가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은 경험도 있을 것이고, 어려운 고통 중에서 해방을 받기도 했고, 기도의 응답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체험이 중요합니다. 이 체험을 옆 사람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이 체험을 묻어두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하기 시작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가슴속에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나쁜 것을 나누면 반감되고, 좋은 것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나누면 그 슬픔과 고통이 반감되고, 기쁨을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중에 역사를 하면, 30배, 60배 혹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손에 의하면 그보다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떡 5 덩어리와 물고기 2 마리는 한 사람의 한끼 먹을 양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 앞에 내어 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어질 때, 5000명이 먹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5000배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체험이 그 사람 가슴에 묻어져 있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을 주님 손에 맡겨 나눌 때에 성령이 함께 하시고 100배가 문제가 아니라 5000배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이웃에게 전도하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무슨 신학적인 이론으로 전도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론으로는 절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무엇으로 사람을 움직입니까?  자신의 경험, 체험을 간증해야 합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고, 나는 그분을 만남으로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라고 할 때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때 5000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선포함으로 믿음을 나눕니다
믿음을 나누는 세번째 방식은 선포입니다.  선포한다는 것은 믿음을 개인적인 믿음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에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에서 “온 세상의 주님”으로 확대시키는 일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선교이고, 전도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선포합니까?  우리가 믿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온 세계를 창조하신 분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되심을 믿습니다.  이 내용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 신경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우리 말로 만들어 선포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자연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특히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구세주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 밖에 없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구원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마귀와 사탄이 아무리 속이더라도 이 십자가의 길만이 구원의 길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王中王이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 우주 만물의 모든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권세를 잡은 것 같아도, 아무리 인간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다스림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선포를 하면서 다녀야 합니다.  대나무가 서 있는 집 앞에서 예수 이름을 선포합시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 우리의 믿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가르침으로 믿음을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믿음을 가르침으로 나눠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보기에는 단순한 것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렵습니다.  동시에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은혜가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침으로 우리의 믿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먼저 배워야 합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평생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왔어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배운 것을 또한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까?  우리가 믿는 믿음의 도리를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새로 믿은 사람은 더욱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 귀찮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어도, 뭘 좀 알고 믿어야지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본문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아들을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합니다. 그래야 교회도 자라납니다.  이 하나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믿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어떻게 믿음을 나눌 수 있습니까?  (1) 신앙 고백을 통해서  (2) 간증함으로 (3) 선포함으로 (4) 가르침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런 나눔을 통해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나눔이 큰 의미로 볼 때에는 <전도>입니다.  전도는 곧 믿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도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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