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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중요한 것들 / 룻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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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장 중요한 것들
본문 : 룻2:1-11

사람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적절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사람, 준비된 사람, 훈련된 사람,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고, 둘째는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파도를 타려면 파도가 몰려올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것처럼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되고, 그리고 셋째는 적절한 장소에 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배필감을 찾기 위해서 하란의 우물가에 가 있었던 것처럼 적절한 장소에 가 있어야 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하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룻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일을 꿈꾸는 시간보다도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더 많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과거를 회상하고 되돌아보면 자꾸만 후회스럽고 또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들도 과거 속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고 소유한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 않은데 하나님 앞에 설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가진 것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힘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뒤안길을 보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그동안 소중했던 순간들, 중요했던 사건들을 지혜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쉬워서 후회도 해 보지만 이미 흘러가 버린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보다는 오늘이 더 중요하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중요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직 나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나는 공부도 할 수 있고, 나는 아직 하나님 앞에 충성할 수도 있고, 나는 아직 진실할 수도 있고, 나는 바르게 고칠 수도 있고, 혹은 나는 성공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필연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간다

회개하고 돌아온 나오미와 오직 믿음으로 그를 따라온 룻을 위해 하나님은 살 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파산한 자, 아무것도 없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은 ‘보아스’라는 한 유력한 사람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아무런 재산도, 아무런 먹을 것도 없는 룻은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우연히 한 밭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바로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여기서‘우연히’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합니다. 사람이 볼 때에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다 예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우연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필연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갑니다.

보아스는 철두철미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신앙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밑의 일꾼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을 빌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고 우리의 만족과 기쁨이 되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러자 일꾼들도 보아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화답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름다운 노사관계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믿음으로 행할 때 이루어지는 복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일꾼들 사이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룻을 발견하고서 “이는 뉘 소녀냐?”고 물었습니다. 보아스가 하찮은 시녀에 불과한 룻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찮은 죄인인 나에게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굳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기회라고 했는데 오늘 룻기 말씀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회이고 그것이 또한 기회를 붙잡는 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룻이라는 여인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본래 이 여인은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모압이라는 이방 땅의 여인이었는데 이스라엘에서 이민 온 사람과 결혼을 했다가 그 집안에 연거푸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되어서 함께 불행해집니다. 시아버지가 죽었는데 시숙이 죽고 또 거기다가 자기 남편마저도 자식 하나가 없이 남자들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한 집에 자식 하나 없이 세 과부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어머니 나오미가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이민 왔던 모압 땅에서 다시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며느리들에게 나는 돌아가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좋은 사람 만나서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형님인 오르바는 그 모압에 남게 되고 룻은 그 불쌍한 늙은 시어머니를 잊지 못해서 나오미를 따라서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오게 됩니다. 그야말로 올 때 거지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와서 이 룻은 시어머니를 공양하기 위해서 이삭 줍는 일을 하게 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방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인 룻이 이삭을 줍는다는 것은 아주 수치스럽고 비참한 일이었고 열대 지방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이삭을 줍는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달리 할 최선의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힘든 일이지만 그 이삭줍기에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이삭을 줍는 것을 본 밭의 보아스의 사환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부터 와서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날이고 계속하니까 이것이 소문이 났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룻의 그 지고함을 다 말하게 되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젊은 소녀 같은 여인이 무슨 일이냐 했지만 룻의 변함없는 이삭줍기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다 감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지고함을 다해 일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한 것이 중요하고 최선을 다한 것에 하나님은 위로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큰 일, 작은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끄럽고 그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이삭을 줍는 것 같은 일일지라도 최선을 다한 룻에게 하나님은 보아스라는 아주 부호를 만나게 해주셨고 그의 아내가 되게 했고 거기서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여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한 자에게 내리는 축복이었습니다. 비록 부끄러운 일, 작은 일이지만 자기의 온 혼신의 힘을 다한 지고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아무리 찢어지고 흩어지고 아프고 하찮은 것 같을지라도 룻과 같이 최선을 다하십시다. 내게 주어진 일, 온 힘을 다해서 지고에 이르는 이런 삶을 살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하십시다.

두 번째로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의 만남이란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룻은 아무런 이름도 없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인이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된 영광스러운 여인으로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역사가 왜 일어났습니까? 작은 만남 하나를 소중히 여긴 인연이 끈이 되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버려진 여인과 같고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와는 고부관계였지만 자식이 하나도 없고 이방 사람이었고 이제 나오미가 "너는 이제 여기서 살아라. 좋은 남자 만나서 살아라.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할 때 그 시모를 버리지 못하고 불쌍히 여겨서 의리를 지킵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시모를 섬깁니다. 자식도 하나 없고 재산도 하나 얻을 수 없지만 그 만남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베들레헴까지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인연이 되어서 이삭을 줍게 됩니다만 그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바로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영광의 여인으로 바꾸어지고 역전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만남을 귀중히 여길 때 그 만남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인생에 중요한 끈이 되어서 우리를 큰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고 우리를 큰 은혜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역사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주위의 사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습니다. 또 교회에서도 구역에서도 여러 가지 만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들이 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습니다. 룻인들 나오미와의 만남이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부담스러운 만남, 귀찮고 싫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을 그는 소중히 여겼습니다.

여러분, 남편이나 아내가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여러분, 자기가 소속하여 섬기며 예배드리는 교회나 목회자가 100% 마음에 드는 성도들도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만남이 잘못된 만남이나 악한 만남이 아니라면 의리를 지키고 그 만남을 소중히 하고 또 나를 양보하고 희생해서 그 만남을 가꾸어가야 됩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만남을 내 마음에 따라 혹은 내 감정이나 내 유익에 따라 혹은 내 처지나 내 신분에 따라 차별하고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길바닥의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찮은 돌조차도 우연히 차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 사사기 9장에 보면 아주 의미 있는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기드온의 첩의 자식인 아비멜렉은 이복 형제들인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이고 스스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배반한 세겜성을 치고 다시 데베스 망대에 피신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공격하다가 이스라엘의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합니다.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절대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연인 것 같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 해명할 수도 없고 그것을 다 해명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우연으로 보는 것이지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다 필연입니다. 컴퓨터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가 우연히 버튼 하나를 잘못 건드리면 컴퓨터가 이상하게 뜹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연이지만 컴퓨터 안에서는 수십 가지의 논리적인 체계를 거쳐서 그것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컴퓨터의 복잡한 회로와 그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다 이해하지 못할 뿐인 것입니다.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는 우연인 것 같지만 절대로 우연이 아니고 심지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진 것도 하나님에게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죽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 보기에는 우연 같지만 하나님은 우연을 통해서도 역사 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연히.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우연히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룻이 이삭을 줍다가 그렇게 보아스의 밭에 들어갔습니다.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룻을 통하여 귀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룻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연히 만난 사람 같지만 절대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그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뜻이 있어서 그 사람을 보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를 소중히 여기고 그 만남에 최선을 다하고 그 만남에 나를 헌신하고 나를 희생해서 그 만남을 가꾸어갈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이 사람이 우리에게 은인이 될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벌도 내리시고 복도 주십니다. 우리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룻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내 이익에 따라 변절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그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으면 그것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일이요 축복의 길이 됩니다.

마지막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비젼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설계도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집을 지을 때 작은 집은 설계도도 없이 대강 지을 수 있지만 좋은 집이나 큰집이나 견고한 집은 반드시 설계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럭저럭 그냥 오두막집같이 짓는 그런 인생을 사시렵니까, 아니면 우리 자녀들, 우리 후손들에게 귀하게 물려줄 수 있는 그런 견고한 가치 있는  내 인생을 구축하시렵니까?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고 무서워서 떠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시렵니까? 여러분,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실 예정입니까? 60이 되고 70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계실 예정입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 드는데 어떻게 10년 후까지 계획하고 살겠느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어려울 때일수록 비전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젼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울 때일수록 힘들고 고단할 때일수록 그 비젼을 가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비전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그 비전이 내 인생을 끌어가고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표가 없이 건강한 말 두 마리가 끌고 달리는 마차보다는 다리가 한쪽 부러진 자라가 절뚝거리며 걸을지라도 목표를 가지고 있는 자라가 이긴다'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장래의 분명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가지고 내 인생의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과 주어진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 다릅니다.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십시오. 물론 세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목표와 계획 앞에는 수많은 시련이 오고 방해가 있고 실패가 옵니다. 그러나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실패를 통해서 더 강해지고 더 커져서 그 실패 그 시련에서 포기만 안하며 오히려 더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목표가 확고하고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실패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는 사람은 시련이 오면 거기서 강해지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거기서 주저앉아버리는 것입니다.

희망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우리 인간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희망이 우리를 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비젼은 그림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림! 설계도!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가령 집을 그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라면 제일 처음에 지붕을 그립니다. 그리고 옆에 처마를 그리고 그 다음 대들보를 그리고 벽을 그리고 밑에 바닥을 그립니다. 그런데 집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이렇게 안 그린다고 합니다. 집을 지어본 사람은 면저 터와 대들보를 그리고 벽을 그리고 지붕을 맨 나중에 그린답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우리가 비젼을 가질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그것을 이뤄나갈 사람은 기초부터 밑바닥부터 하는 그런 자세와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층을 원하면서 일층 없이 이층만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공중누각입니다. 그렇게 지을 수는 없습니다. 바닥부터 지어나가야 합니다. 비젼을 향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꿈을 가진다고 하면서도 소망을 가진다고 하면서도 늦잠하나 고치지 못하고 꿈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술 하나 끊지 못하면서 뭘 하겠습니까? 말 하나, 버릇 하나 고치는 결단 없이 우리가 무엇을 이룰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떤 비젼을 가질 때 그 비젼이 나를 끌고 가고 나의 다른 모든 것들을 절제할 수 있을 만큼의 그런 비젼만 가진다면 그 비젼은 반드시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난 과거가 아닙니다. 사실 돈도 아닙니다. 능력도 아닙니다. 물론 능력과 돈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젼이라는 사실, 그것이 나의 운명을 바꾸고 나의 내일과 내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적어도 우리에게 기본적인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럽지 않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내 자식 앞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라도 부끄럽고 추한 모양새로 살지 않아야 되겠다는 그런 기본적인 비젼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니고 무슨 학위나 무슨 직장이나 심지어 자식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할 수 있는 기회, 고칠 수 있는 기회, 바꿀 수 있는 기회, 성공할 수 있는 기회,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이것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주어진 일에 어떤 일이라도 지고에 이르도록 그 일을 감당하십시다. 내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성실함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서 그 사람들을 섬기고 아름다운 관계로 이루어 나가십시다. 좋은 그림, 소망 있는 그림을 가지고 그 그림을 위해서 비젼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심지어 희생할 수 있는 그런 결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잘 사는 사람, 제일 성공하는 사람,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을 알고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는 그런 인생을 가꾸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믿으며 믿음으로 전진하고 있습니까? 직장과 사역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자신이 복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습니까?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을 만날 때,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보아스’의 뜻을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께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며 오늘 일어나는 작은 우연 속에서 그것을 연출해 내신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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