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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의 (롬 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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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의(성경 : 롬4:18-25)-의신득구(義信得求)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이유가 본
문을 통하여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 장 16절에 아브라함은 신앙 생활을 하게된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
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하여 믿음과 그 믿음을 통하여 인
정되는 하나님의 의(義)에 대해 깨닫고자 합니다.



1.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는 것

아브라함이 나이 백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구십 세의 고령이었을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
다는 것입니다.
19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이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었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자(無子)한 자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기적적
인 은총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예입니다. 아브라함의 기적을 통하여 주시는 계시적인 가르침
은 불가능한 일이라도 약속하셨으면 믿으라는 것입니다.


히 11:1 ' 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이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사 2천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주시고 그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 주신 희생의 제사
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을 믿고 두 손들고 회개하고 나오면 구원과 은
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요 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5-8절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
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
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
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
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2. 예수를 부활하신 분으로 믿는 자

오늘 기독교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부활하신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단들은 거의 예수를 부활
하신 자로 믿지 않습니다.  육신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믿지 않으면 기
독교인이 아닙니다.

롬 4:24-25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
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은 기독교를 대변하는 내용입니다. 기독교는 세상
의 것들을 위하여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먼저 영생을 믿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 믿고 종교적으
로 혜택을 얻으려 합니다. 생각의 시작이 잘못되었습니다. 혹 그렇게 생
각해서 불교에서 빌 듯이 하여  생활이 잘된다 해도 그것은 믿음의 결과
가 아니라 소위 종교적인 행위로 오는 것입니다.  귀신도 재물과 명예와
기적을 줍니다.  우리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인지 저것이  귀신의
역사인지 잘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받아야 뒤탈이 없다는 것
입니다.
어떤 선지자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으나 심판 날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결과만  좋다는 식으로 일하던 하나님의
종이었는데,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
위가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사람 비슷해서 사실 더 추하게 보입니다.  세상에 흑백이 아닌
그 비슷한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예수교 비슷~~~한 것,
목사 비슷~~~~한 것, 교인 비슷~~~한 것, 이런 것들은 주님은 차지도 덥
지도 않은 것이라 하시고 입에서 토해 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들어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복도
받을 것입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
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를 믿되 예수의 속죄와 이 부활을 믿어야 잘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예수교를 통하여 주시고자 하시는 근본적이고 중요한 뜻은 세상을 향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우리가 장래에 영원한 나라에서 영
생을 위한 부활! 이 부활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3. 믿음의 생활의 연속이 의로운 생활

믿음의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행할 것이라는 계획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실생활에 주 예수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창 17:21'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
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약속을 한
해 동안 기다릴 때 의심도 할 수 있고 긴가민가 할 수 있었을 것인데,그
는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과거의 믿음도 미래의 약속도 아니고 오늘 여기서 믿음이 있어
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19-21절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자기가 늙고 아내도 이미
경수가 끊긴 상태에서 불가능하여 바랄  수도 없는 지경이지만 하나님의
약속 앞에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에 견고하여지고,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굳센 믿음의 한 해 동안의 정신을 보면서 우리가 처음 예수
를 믿는 믿음의 생활이 지속적으로 끝까지  가는 그 초심이 참으로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날마다 불신의 마음을 부추기는 변화 속에 날마다 의심의 도
전을 받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는,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
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닮아서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견고하고,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줄을 믿고 살아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변화의 시대라 하며,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너무 많은 변
화 구도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정보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정
보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날마다 변하지 않으면 못살 지경입니다.  그러
나 우리가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까지 변하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변할 수 없습니다.  천륜이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들에게
하신 진리의 승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신앙인들이 받을 축복은 많습니다. 아브
라함의 역사를 읽어보면 부요의 축복, 영광스런 명예의 축복, 믿음의 조
상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받은 자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들에게 임할
수 있도록 믿음을 잘 지키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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