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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멈춤 / 히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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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 11:24-26
제목 / 위대한 멈춤

며칠 전 저는 신문을 통해서 너무나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유럽>은 지금 비가 너무 안 와서 걱정이랍니다.
지난 7월, 사상 유례가 없는 <폭염>으로 인해서 만년설로 뒤덮여 있던 <알프스의 빙하>가 다 녹아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폭염 속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자전거 레이스>가 있었습니다.
그 레이스는 자전거로 <피레네 산맥>을 넘는 레이스였습니다.
그 레이스에서 <5년째> 우승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이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
그가 죽음에 이르는 병인 <암>을 이겨내고 그렇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자전거 레이스에서 무려 다섯 번씩이나 우승했다고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계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그에게 <뜨거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달랐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얀 울리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울리히>라는 여기 이 사람은 1999년부터 줄곧 이 대회에서 <암스트롱>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만년 2인자>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7월 22일, 제 15 구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암스트롱과 울리히의 시간차는 <단 15초>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5구간이 진행되던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암스트롱>이 자신을 응원 나온 한 어린아이의 가방에 걸려서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울리히>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면 우승은 얼마든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이클>을 멈추어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암스트롱>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암스트롱>이 일어나서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그도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울리히>는 이번에도 1위 자리를 <암스트롱>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기 이 사람을 말입니다.
<암스트롱>이 넘어지던 순간 !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치고 나가면 내가 우승할 수 있으리라 !
여기 이런 생각을 그 사람인들 왜 하지 못했겠습니까 ?
그 순간 앞으로 치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 !
그런 생각이 그에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의 <그 멈춤>을 놓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멈춤> !
그의 멈춤은 <위대한 멈춤>이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유혹의 순간>이 참 많이 있지 않습니까 ?
그럴 때마다 <여러분의 걸음>은 어떠했습니까 ?
여러분의 삶 속에도 <위대한 멈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멈춤이 있는지요 ?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모세>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위대한 멈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거기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여기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이집트> !
바로 그런 나라의 <공주의 아들>이라면 그 신분이 어떤 신분이겠습니까 ?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 왕에게 공주는 <외동딸>이었답니다.
그렇다면 그가 흐르는 세월을 마냥 즐기면서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
<절대권력> !
당시 왕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그런 권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대통령처럼 언론과 싸우느라고 <도저히 못해 먹겠다>고 말하는 그런 권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그 때 그 권력은 <대단한 권력>이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모세 앞에는 그런 <절대권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때 <어찌했다> 합니까 ?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 하지 않습니까 ?

성도 여러분 !
여기 이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오늘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 !
그런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서 있는 모세의 모습이 보이시는지요 ?

세상은 지금 어떻습니까 ?
권력을 잡아보려고 혈안이 되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
아주 조그마한 권력 ! 
정말 별 것도 아닌 권력 !
그런 권력을 잡아보려고 이제까지 잘 다져진 인간관계마저 마구 깨어버리는 사람들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언젠가 T.V.에서 <가시나무 새>라는 외국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로마 카톨릭의 신부>였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 안에서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야망을 붙잡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갑니다.
결국 그는 로마 교황청의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대단한 권력>을 그가 손에 거머쥐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자리에 앉아서 <고백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 수많은 아픔을 경험했다.
  지금도 그 아픔은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것으로 인해서 나는 지금 가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가시나무 새>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했던 여기 이 신부의 모습 !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여기 이 신부의 모습 !
어떻습니까 ?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

오늘 우리는 이런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서야 합니다.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롬 13:1> 말씀을 같이 보실래요 ?  신약성경 257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

여기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어떻습니까 ?
<권력>을 잡는 것 !
그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국>이 대체로 어떻습니까 ?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앉는 날 !
그 날에 <그 가정>, <그 가문>에 불행이 순식간에 몰려오는 것을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지 않습니까 ?

<권력>을 잡아서 오히려 불행하게 된 사람 !
그런 사람은 이 나라 안에만 있지 않습니다.
<명성>과 동시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은 세계 역사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명해 지고 싶다는 유혹 ! 
<권력>을 잡고 싶다는 유혹 !
그런 유혹 앞에서 우리는 멈추어 설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더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 !
바로 그런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사람을 미워하게 하고, 질투하게 하고, 시기하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바로 그런 마음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결국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허무한 인생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서셨습니다.
오늘 <모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런 멈춤>이 있어야 합니다.
유명해지기보다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모하십시오 !
권력을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성령님>과 함께 걷고자 하십시오 !
그런 인생의 자리에 여러분과 제가 함께 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멈춤>은 <25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 그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죄악 가운데서도 우리가 <낙>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여기 이 말씀 !
성도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죄악의 소굴>에서도 우리는 <낙>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곳에서 누리는 <낙>이 훨씬 더 커 보입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 그냥 있었다면 그는 이런 낙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권세>가 있는 자리 !
그런 자리 주변에는 온갖 <쾌락>이 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어찌했다 합니까 ?
그런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섰다 하지 않습니까 ?
온갖 <죄>가 진하게 묻어있는 <즐거움> !
그런 즐거움의 유혹 앞에서 <모세>는 멈추어 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여러분 앞에는 <이런 유혹>이 없는지요 ?

사람들은 대체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이기지 못합니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나이 40>이 <불혹의 나이>라고요 ?
무슨 말입니까 ?
<나이 40>은 그렇게 호락호락 <유혹>에 넘어나는 나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러분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40이라는 나이>가 정말 그렇게 <불혹의 나이>라면 40대 이상의 사람을 통해서는 우리가 <더럽고 추한 소식>을 접할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어떻습니까 ?
<40대 이상의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가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더럽고 추한 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
<순간적인 쾌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넘어져 버린 40대, 50대, 60대의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 안에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사냥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눈을 뜨면 그 앞에 언제나 <쾌락의 잔>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러분>이나 <저>나 차이가 없습니다.
<쾌락>이라고 하는 놈은 <여러분>과 <저>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는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그의 눈앞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쾌락의 잔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쾌락의 잔> 앞에서 모세는 멈추어 섰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확인해 주고 있는 것처럼 <쾌락의 잔> !
그것은 정말 <순간적>인 것입니다.
지극히 <찰나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그것은 <잠시잠깐>입니다.
그렇게도 잠시잠깐인 <쾌락> !
그런 쾌락 앞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도 무기력한지 모르겠습니다.

<부인>을 천 명이나 두었던 <솔로몬> !
그러기에 매일 밤마다 <쾌락의 잔>을 먹고 마셨던 <솔로몬> !
그가 훗날 우리에게 전해준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얼마나 그 삶이 <헛된 삶>이었으면 그가 이렇게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씩>이나 반복해서 사용했겠습니까 ?
그가 여기 이렇게 말하면서 <전도서>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너는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시편 1:1-2>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까 ?  구약성경 804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여기 이 말씀에서 우리는 <동사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좇아가다>, <서다>, <앉다> ! 
성도 여러분 !  무엇이 보이십니까 ?
<악인의 길>, <죄인의 길> !
그 길에 <호기심>을 가지고 서서히 좇아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가 있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게 되고, 그렇게 서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리에 <아예> 주저앉아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 !
그 자리가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나아가지 말고 멈추어 서야 할 자리는 아닌지요 ?
<찰나적인 기쁨>이 유혹하고 있는 자리 !
<잠시잠깐의 쾌락>이 유혹하고 있는 자리 !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라면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안 됩니다.
아니 그 자리를 박차고 우리는 뛰쳐나와야 합니다.
여기 <이 결단>이 여러분과 저의 결단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멈춤>의 모습은 <26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 그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 !
머지 않은 시간 속에서 곧 <왕>이 될 신분 !
그런 신분의 사람이라면 그의 남은 삶 속에 <엄청난 돈>이 쌓이게 되리라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보십시오 !
<청와대>라는 이름만 거들먹거려도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 않습니까 ?
하다 못해 <청와대 청소부>라는 신분을 가지고도 돈을 긁어모았던 사람 !
우리는 그런 사람도 지난 정권에서 보았지 않습니까 ?

사람들은 <돈>이 있는 곳 !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돈>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
<돈>이 <우상>인 사람의 인생이 서서히 좀 먹어 들어가는 것을 이제까지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으신지요 ?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부>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부>라고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평안함>은 가져다 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그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의 인기>가 이렇다보니 그가 누린 <부> 또한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
그에게는 혼자 타고 다니는 <헬리콥터>가 <여러 대>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가 죽기 <일 주일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처럼 평온하게 <일 주일>을 살게 해 주면
  100만불(우리 나라 돈으로 약 12억)을 주겠노라 !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약물>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약물로 인해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몸으로 겨우 42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멈추어 서야 할 자리에 멈추어 서지 못한 사람의 <결국>이 이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세>가 <권력>이라는 유혹 앞에서, <잠시잠깐의 쾌락> 앞에서, 그리고 <돈>이라는 유혹 앞에서 그가 멈추어 선 것은 참으로 <위대한 멈춤>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런 멈춤>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사람을 죽인 후에 어쩔 수 없어서 그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광야로 도망 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이런 저런 유혹> 앞에서 나 멈추어 서리라 !
그의 마음에 <이런 결심>이 없었더라면 그가 동족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 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후에도 그렇습니다.
<그만한 신분> 가지고 사람 하나 죽인 것이 뭐가 그리도 문제가 되는 시대적인 상황이었습니까 ?
<한 사람>이 아니라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얼마든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시대적인 상황> !
적어도 그 때 그 상황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가 처한 상황이 <유혹>을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보십시오 !
<믿음으로> !
<믿음으로> 모세가 이런 저런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섰다 하지 않습니까 ?
오늘 우리 안에도 <믿음으로> 좇아나는 <이런 멈춤>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권력의 유혹> 앞에서 멈추어 서십시오 !
<쾌락의 유혹> 앞에서도 멈추어 서십시오 !
<돈의 유혹> 앞에서도 멈추어 서십시오 !
그리고 이제는 <성령님>과 함께 하는 자리에 서십시오 !

바로 거기가 <안전지대>입니다.
바로 거기가 <평안의 땅>입니다.
바로 거기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12억 원이나 주고 머물고 싶어했던 땅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 <평안의 땅>에 언제나 머물러 계시는 우리 영암의 가족 모두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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