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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라 / 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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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라
시편 42:1-11

현대인들은 외형적으로 많은 것을 갖추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 생물학자로 알려진 '레네 드보스'는 "인생의 축제"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증거가 아니다. 과거에도 큰 문제는 얼마든지 있었다. 문제는 다름 아닌 인간의 정신이 약화되고 있다는 현상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것을 가지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 속에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내면은 더욱 약해져 가며, 무거운 압박감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심적 고통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고통 중 하나는 우울증입니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이 우울증은 때때로 우리 생활에 큰 혼란과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사람들은 이 우울증에 빠질 때 신경질적인 불쾌감이나 불안감, 공포를 드러내기도 하며 때로는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폐쇄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가 더욱 심화되어 병적인 상태가 될 때에는 식욕감퇴 현상을 초래하고, 질병을 유발하며, 급기야 삶을 포기하여 자살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우울증은 찾아옵니다. 성서에도 이러한 심적 현상의 경험을 고백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시 42:5)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속에서 낙망하나이다"(시 42:6)고 고백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과의 종교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합왕의 아내 이사벨의 죽이리라는 위협을 받고는 그만 우울증에 빠져 하나님께 "오 주여 내 생명을 취하소서"(왕상 19:4)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인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면서 우울한 심적 고통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우울한 감정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우울증은 어디에서부터 발생하고 있습니까? 이 우울한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는 것입니다.

데이빗 씨맨즈(David.A.Seamands)는 우울증의 세 가지 기본적인 원인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결단력의 결핍 곧 우유부단한 태도에서라는 것입니다. 결정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어 나갈 때,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일들을 처리해 나갈 때,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미해결의 감정에서 우울증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응고된 분노에서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정이 없는 사람, 분노를 참는 사람, 분노를 함부로 쏟아놓는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찾아오는데, 균형과 합리적인 판단에서보다는 부당성에 자기의 편견을 편승시켜 분노의 감정을 가질 때 우울증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한동안 수입품인 여자 팬티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특히 프랑스제품인 니코스는 한 개에 남자들 기성복 한 벌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팬티를 사서 입는 한국여인들의 극성에 월간 낭비되는 외화가 그 당시 2억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비싼 팬티를 입었다고 해서 맵시가 더 나는 것도 아닐 테고 또 만나는 사람마다 치마를 들추고 "양복 한벌 값의 고급 팬티 입었다"고 자랑할 수 없을 텐데, 이 팬티를 사입는 여성이 월 4000명씩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400만원짜리 구두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신데렐라 슈즈'라고 호칭되고 있는, 은 실크에 크리스탈 꽃수가 놓인 구두인데 400만원에도 없어서 못 팔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들을 보면서, 균형과 합리적인 판단이전에 부당하다는 분노의 응고된 감정 속에 사로잡혀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데이빗 씨맨즈가 말한 우울증의 원인 외에, 기질적인 원인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울한 감정은 인간의 성품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유 없이 기질적으로 우울한 감정에 빠지는 것을 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본질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우울증은 죄의식으로부터 찾아오는데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하나님께 대항하는데서 찾아오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 우울한 감정은 우리 현대인들의 삶에 더욱 예민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 우울한 감정에 빠질 때 생활의 기쁨과 적극적인 태도를 상실합니다. 우울증에 휩싸일 때 인격이 분열되게 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상실하게 되고,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상대적으로 이 우울증을 감추고자 자신의 속 모습을 은폐하고 겉으로 온전하고 완전하며 강한 것처럼 위선자의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우울한 감정에 빠져 급기야는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폭발하는 것을 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우울증은 우리가 다스리며 극복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음을 봅니다. 이유와 원인 이전에 그는 우울한 감정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저자는 우울한 감정을 헤어나지 못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 "고 했습니다. "마음이 상해 있다"고 했습니다. "낙망과 불안가운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기자는 우울한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면서 극복해 나가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인도 다른 사람과 같이 똑같이 우울한 감정을 느끼되 이 감정을 하나님께 내놓고 해결하는 모습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우리의 상처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 내어드려 치유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울증을 다스리며 그 감정을 극복하겠습니까?

자신이 우울한 감정에 지배당하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그 자신의 감정의 상태를 바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이 상하고 그의 영혼이 낙망하고 불안하여 한다고 하면서 그의 감정의 상태를 솔직히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시편저자는 이 우울의 감정에 지배당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편저자의 노래는 우울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그의 우울한 감정을 폭로함으로 우울증에 지배당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오히려 그 우울증을 하나님과 함께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사람은 감정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지배당하거나 그 감정을 거부하는 것은 그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있는 우울증의 감정을 인정하되 그 우울의 감정에 지배당하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우울한 감정의 환경을 찬송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환경으로 바꾸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때로는 좋은 음악이나 환경이 필요합니다. 사울왕도 우울증에 빠졌을 때 다윗이 연주하던 음악을 통해서 마음을 치료했습니다. 어두운 환경과 우울한 감정의 환경에서, 기도와 찬양과 감사가 있는 환경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울증에 빠질 때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환경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울증의 자리가 그리스도께서 계신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울한 감정의 자리 바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비 나사로를 무덤에 장사지내고 그곳에 찾아오신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라비를 잃고 극한 슬픔과 우울증에 빠져있는 그곳이 주님이 함께 계신 환경으로 바뀔 때에 나사로는 살아나고 슬픔과 극한 우울증은 사라졌습니다.

때로는 우울증에 빠질 때에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사실 교회는 이러한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으로, 믿음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의 모임으로 기쁨을 나누는 곳이 될 때 우울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치유 받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깊이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울증으로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서에 기록된 말씀을 사용하시어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글라오와 다른 한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 우울의 극한 감정을 가지고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눅24:13-35)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사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슬픔가운데 엠마오를 향했던 것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은 그들가운데 나타나셔서 동행하시면서 말씀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 졌고 눈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고 발걸음을 돌려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수세기를 거쳐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편 말씀을 읽음으로 도움을 받아 왔습니다. 유익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는 것입니다. 특별히 시편을 읽을 때 시편기자들이 표현한 절망과 고독한 감정과 우울한 감정을 자신의 현재 감정으로 받아드리고서 시편기자가 극복한 믿음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과 소망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확신하는 태도로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거듭 반복해서 우울증으로부터 해방되는 비결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나를 도우시는 그의 얼굴을 인하여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확신과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다는 증거를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의 우울한 감정을 치유하실 분은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역사 하심 속에서입니다. 누가 우리의 상처받은 심령을 치료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내 마음에 계심을 확신하고 그분이 치유하시도록 성령 안에서 휴식을 가질 때 우울증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바라는 삶입니다.

심장 절개 수술을 한 어떤 사람이 기록한 경험담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수술을 받기 전날, 멋진 간호사가 내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나에게 꽉 잡아 보라고 했습니다. "자, 보세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심장과 분리된 상태에서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해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당신의 심장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당신의 심장기능은 다시 정상으로 연결되고 당신은 마침내 회복실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약 6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일 것입니다. 당신이 비록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못하고 심지어는 눈을 뜨고 싶어도 뜨지 못하는 상태일 지라도 당신의 의식은 완전한 가운데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듣고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될 여섯 시간 동안 내가 당신 곁에서 지금과 같은 꼭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있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비록 당신이 어찌 할 바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빠질지라도 당신이 내 손길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간호사가 내게 말해 주었던 일들이 나에게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나의 의식은 완전히 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몇 시간 동안 내 손을 잡아준 간호원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려움을 경험하는 동안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안에서 계속 임재해 주실 것이란 약속은, 예수님께서 즐겨 사용하신 성령에 관한 명칭인 '보혜사(Paraclete)'란 말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우리 옆에 와 계셔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도록 해야합니다. 우리가 가장 깊은 우울증 가운데 빠지게 될 때에 수술처음부터 수술 끝까지 손을 잡고 있었던 간호원과 같이 성령께서 극한 우울증 가운데 빠져있는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 성령 안에서 손을 잡듯 이 성령과 함께 휴식할 수 있을 때 우울증은 다스려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울한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을 때 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 상태를 인정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환경을 기도와 찬송과 감사로 바꾸어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의존하며, 성령의 임재 하심 가운데 휴식을 취함으로 우울증을 다스리며 정복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시편기자와 같이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며 오늘을 기쁨 속에 감사와 능력 안에 살아가시는 생활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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