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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찾은 내 아들 / 눅 15 :11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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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내 아들
누가복음 15 : 11 - 32


아버지란 기분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자식들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란 아들과 딸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최고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자식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아 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도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를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도 큰 소리로 기도도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뒷동산 바위 같은 이름이다/ 아버지는 시골 마을의 오래된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이 말은 저의 말이 아니라 작가 미상의 글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1-13절에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기 복음 중에 복음(Gospel within I Gospel)이라고 하는 탕자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복음의 핵심을 가리키는 메시지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를 떠났다가 먼 타국에서 자신의 분깃을 다 탕진하고 죽을 지경에 이르러 다시 돌아오는 둘째 아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아들은

Ⅰ.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본문 15장 11절에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아들은 두 아들 중에 둘째 아들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둘째 아들이지만 장남과 똑같은 아버지의 친자입니다. 아버지가 볼 때 두 아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고 다만 장남은 먼저 나고 둘째는 나중에 난 것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1) 아버지로부터 지음 받은 아들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창조}는 무엇을 아무 것도 없는데서 있도록 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창조한 자 'formed'가 되고 {조성}이라는 말은 구태여 말하자면 'made'가 됩니다. 그러나 창조와 조성은 비슷한 의미로 본문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43:7; 44:2, 24).

야곱은 하나님께 부름 받기 전에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후에 얻은 이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도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44장 24절에도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2) 아버지가 있는 곳에 그 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들은 비록 아버지를 떠나 있었지만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원적(原籍)이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하늘 나라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이 아들은

Ⅱ. 아버지의 죽었던 아들입니다.

본문 15장 24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잃었다가…}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 된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1) 자기 것을 찾는 아들이었습니다.
본문 15장 12절에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도 자신이 받은 유형무형의 천부적 각양 달란트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2) 아버지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것을 모으는 아들이었습니다.
본문 15장 13절에 {그 후 며칠이 못되어서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모든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3) 자기 분깃을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난 아들이었습니다.
본문 15장 13절에 {…먼 나라에 …}라고 했습니다. 먼 나라는 세상입니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한없이 먼 거리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세상은 먼 거리입니다. 신앙과 불신앙은 먼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 사는 가족일지라도 신자와 불신자는 먼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영적으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1) 그 나라는 과소비의 나라입니다.
본문 15장 13절에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이 살았던 나라는 절제가 없는 나라입니다. 창기와 함께 놀아나는 나라입니다(15:30). 상당한 이유 없이 살인적인 소비로 인하여 결국 사람을 망하게 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치우쳐서 본능적으로 사는 나라입니다. 내세가 없는 나라입니다. 금세주의 나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 나라의 특징입니다.

(2) 그 나라는 재앙으로 인하여 궁핍한 육욕의 나라입니다.
본문 15장 14절에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고 했습니다.
크게 흉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재앙입니다. 재앙의 결과는 궁핍입니다. 이 세상 나라 도처에 엄습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천재와 인재를 통한 흉년들은 일종의 재앙입니다. 그 결과 나라들과 그 가운데 거하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기식하는 생물들은 궁핍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3) 그 나라는 영적 빈곤의 나라입니다.
본문 15장 15절에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비참해진 인간의 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4) 그 나라는 굶주림이 극에 달한 나라입니다.
본문 15장 16절에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고 했습니다.
자기 분깃을 가지고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심히 착각하고 있는 아들입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임금이 인본주의 방법으로 통치하는 육체주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문명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명입니다. 결국 이 나라의 정체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나라입니다. 그래서 흉년 만난 나라입니다.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고사는 나라입니다.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듣고 사는 나라입니다. 사람이 가서는 안 될 곳을 가면서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모스 8장 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은

Ⅲ.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입니다.

본문 15장 24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을 죽은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다시 돌아온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1) 마침내 깨닫는 아들이었습니다.
본문 15장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겠구나}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하찮은 미물들이 DNA를 통하여 누가 가르쳐 주지 아니해도 모체를 닮아 생존하듯이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영향력 있는 힘입니다.

이 아들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양식이 풍족한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많은 일군을 소유한 아버지를 사모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사모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용서와 아버지의 풍요를 그리워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생각은 아버지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 회개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본문 15장 18절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죄악 된 자리에서 돌이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인적인 회개입니다.

3) 돌아오는 아들이었습니다.
본문 15장 19절에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앞에 감히 용서받을 가치조차 없는 존재인 것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본문 15장 20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주님 앞으로 나와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택하신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요한복음 6장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게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은

Ⅳ. 아버지의 지극한 영접을 받았습니다.

본문 15장 20절에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행위야말로 아버지의 전인격이 동원되는 일방적이고도 완전한 사랑의 영접입니다.

1)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확인시키는 영접입니다.
본문 15장 24절에 {이 내 아들은 …}이라고 했습니다.

(1) 인격의 회복입니다.
본문 15장 22절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께 돌아온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의의 옷을 입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니다(롬 13:14).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했습니다(갈 3:27). 새 사람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엡 4:22-24; 골 3:10). 빛나고 깨끗한 옷입니다(계 19:8).

(2) 권위의 회복입니다.
본문 15장 22절에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라고 했습니다.
인장 반지는 권위의 표식입니다(창 41:42). 옛날에 왕들은 반지로 인장을 대신했습니다.

(3) 자유인으로서의 신분의 회복입니다.
본문 15장 22절에 {…발에 신을 신기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노예들에게는 신이 없었습니다. {신을 신기라}는 것은 '신분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신은 자유인의 상징입니다(엡 6:15).

2) 공개적인 영접입니다.
본문 15장 23절에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라고 했습니다.
잔칫집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15:25).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 행해지는 영접입니다. 돌아온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 집은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 왔을 때의 즐거움입니다.
오늘날 이 지상의 교회도 죄인이 돌아와서 예수를 영접할 때 기쁨과 즐거운 잔치 분위기로 충만해야 합니다

3) 기쁨의 영접입니다.

(1) 죽은 아들이 살아난 기쁨입니다.
본문 15장 24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라고 했습니다.

(2)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입니다.
본문 15장 24절에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4) 최고의 영접입니다.
본문 15장 25절에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라고 했습니다.
풍류와 가무는 특별히 큰잔치를 배설할 때 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버지의 집은 궁극적으로 천국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청결 운동을 하실 때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는 곳입니다.

5) 큰아들의 시기 중에 영접입니다.
본문 15장 28-30절에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께 하는 항변은 대단히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는 형의 합리적 항변이 통하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생명에 비하면 그 까짓 얼마간의 재산 손실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6) 아버지의 주권이 발동하는 영접입니다.
본문 15장 31-32절에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주권적 의지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의 생명의 존귀함이 여지없이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둘째 아들입니다. 세리나 죄인 또는 이방인과 같이 뒤늦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종족적으로 볼 때 선민 유대인들에 비해서 둘째 아들입니다.
시기적으로 볼 때 복음을 먼저 받은 서구인들에 비해서 둘째 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각양 아름다운 것들을 타락한 세상 나라에서 탕진하며 살았습니다. 과거의 우리는 모두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고집했습니다. 아버지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이었습니다. 타락한 문명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이 살았던 그 나라가 살인적인 과소비의 나라인줄 이제는 알았습니다. 그 나라가 재앙으로 궁핍한 육욕의 나라인줄 알았습니다. 그 나라가 영적인 빈곤의 나라인줄 이제는 알았습니다. 그 나라가 굶주림의 비참한 나라인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 나라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나라인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아버지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지극한 영접을 받았습니다. 완전한 아들로 영접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를 믿는 우리의 인격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자유인으로서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공개적인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영육간의 축복과 자자손손이 이르는 계대적인 축복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을 먼저 받은 나라들이 우리를 시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전세계 50대 교회 중에 이 작은 우리 나라에 20개 교회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이 시기할 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종족적으로 시기적으로 먼저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택자이면서 아직도 믿지 않고 있는 자들에 비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맏아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317장에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 다오/ 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 다오"
우리 찬송가 269장에도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 보겠구나/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이러한 찬송가는 아직도 믿지 않는 형제를 향해 부르는 우리들의 애원입니다.

죽을 지경에 있는 내 동생, 잃어버린 내 동생, 고생하는 내 동생, 짐승과 같이 살고있는 내 동생을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으로 찾아봅시다. 그리고 찾았으면 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들을 영접합시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양 좋은 달란트를 세상 나라에 의미 없이 쏟고 다니는 하나님의 택자들을 찾아봅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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