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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을 찾아서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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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 <눅15:11-24>
2003, 09, 07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행복 찾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 찾기를 하는데도 막상 행복합니까?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행복 합니다 하는 사람은 그리 많이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노력한 만큼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마치 어린이 동화책에 나오는 무지개를 잡으려는 소년처럼 그렇게 행복은 잡힐 듯, 잡힐 듯 그래서 쫓아가보면 또 저만큼 가있습니다. 행복은 어디서 찾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행복을 찾아나서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청년은 자기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자신의 몫으로 되어 잇는 재산을 팔아 먼 길을 떠납니다.  어딘가 저 세상에 나가면 그에게 행복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행복을 주리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무엇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과 시간과 자존심마저  다 빼앗고 그를 홀로 남겨 놓았습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청년은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그곳에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살길은 그길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그저 목구멍에 풀칠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캄보디아에 갔는데 난감한 때가 한번 있었습니다. 현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왜 꼬래들은 밥을 그렇게 많이 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 보기는 우리가 밥을 먹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자기들은 주먹밥만한 것 하나면 족한데 우리는 그것을 세게 네게 먹거든요. 밥이 귀하니까  적게 먹는 습관이 들은 사람들이라서 많이 먹는 법이 없어요.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먹고 살수 없지요. 사람이 어려워지면 목구멍에 풀칠만해도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바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 저것 다 경험했습니다. 밥한 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 밥한 술도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온 아버지 집에는 뜻밖의 것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먹을 것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은 물론 입을 것, 누릴 것, 그리고 또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 집에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삽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에 내 인생에 빈궁이 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빈궁, 소망의 빈궁, 믿음의 빈궁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 올 때 빈궁이 물러 갈 줄 믿습니다. “빈궁아 물러가라” “기근아 물러가라” 오늘도 아버지 집을 찾은 여러분 모두에게 행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본문에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1,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이 행복을 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세상을 쫓아갑니다. 세상과 동행합니다. 그 세상이 금방 행복을 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행복을 줄 것 같습니다. 여러분 텔레비죤에서 나오는 광고 방송들을 보세요. 거기에서 선전하는 화장품을 쓰기만 하면 모두가 미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화장품을 열심히 사다가 바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미인이 되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삽니다.

어디 한번 물어 봅시다. 그래서 미인이 되었습니까? 밤낮 보았자 그 얼굴이 그 얼굴입니다. 내가 보니까 작년얼굴이나 금년얼굴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텔레비죤에서 선전하는 건강식품을 먹으면 병들어 죽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합니까? 세상에서 요구하는 이런 조건 저런 조건에 맞춘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금 그것 때문에 행복합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청년이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즐거운 일이 많을 것이다.  멋진 여자들과 데이트를 하고 고급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출세를 하고,  멋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러면 행복할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천년만년 살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몫을 챙겨가지고 집을 나갑니다.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좋은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잘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는 탄식입니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 탄식이 어찌 육신의 탄식으로만 보겠습니까? 그의 마음이 탄식하고 그의 영혼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건을 내세웁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돈을 잡고 권력을 잡아보세요. 그때는 행복해지는 것 같은데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잃는 순간 버림을 받습니다.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이 떨어지는 순간 버림을 받습니다. 우리가 보쟎아요. 불행한 일입니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2,돌아서면 행복이 보입니다.

이 청년이 돌아 섰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돌아 섰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 섰습니다. 돌아 섰더니 아버지 집에서 희망이 보입니다. 그곳에 안식이 있고 기근이 물러가고 더욱 잃어버린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희망을 가지려면, 행복을 찾으려면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새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베드로는 설교 가운데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유쾌한 날이 올 것이다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유쾌한 날이 왔습니다. 내 인생에도 그리고 수많은 믿는 사람에게 유쾌한 날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주 공간에 나 몰라라 버려진 미아(迷兒)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 보호를 받는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노래하잖아요.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하고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걸 모르고 살았던 것이지요. 그걸 모르고 세상을 더 의지 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아버지입니다. 이 세상에 신을 아비지라 부르는 종교가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우리를 창조자시요.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아버지입니다. 돌아서니 아버지가 보입니다. 은혜 받는 자는 아버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보이니 용기가 생깁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회계가 나옵니다. 일찍 깨달은 것이 복입니다. 젊어서 깨달은 것이 축복입니다. 다 죽게 되어서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러한 사람도 많습니다. 병들어서 다 죽게 된 다음에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 망하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때에라도 깨달은 것이 안 깨달은 것보다는 났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일찍 깨달은 것이 복입니다. 젊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분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내가 부르는 순간 발 내마음속에 오십니다. 이렇게 기도 하십시오 예수님 내가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오시옵소서. 내 죄를 용서 하시고 나를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마음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3,아버지 집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청년이 아버지 집에 왔습니다.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다 알아보고 달려갔습니다. 아들이 달려 간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달려갔습니다. 내가 돌아 설 때 내가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달려오시는 것입니다. 달려간 아버지가 저를 측은히 여겨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입을 맞추며 내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자식, 내 잃었다가 다시 얻은 자식, 얘들아 뭐 하냐  목욕물 데우고 제일 좋은 옷을 가져오고 송아지를 잡아라 잔치를 하자, 맨발로 온 자식에게 신발을 신기고 그리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는 것입니다.

뭘 더 바라겠습니까? 이 청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지금부터는 아버지의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입니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밥만 먹여주어도 황송합니다. 하는 말입니다. 주려서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무슨 투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에게 등 돌리고 간 그 자식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상상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우리의 죄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만이 기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보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너 왜 그랬냐? 잘했냐? 못했냐? 그런 것은 묻지도 않습니다. 돌아온 것은 사랑하는 아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식에게도 조건이 많지요. 1등해라, 말 잘 들어라, 장난치지 말아라. 어떤 아이가 얼마나 말썽인지 어디를 데리고 갈수가 없습니다. 하는 짓마다 사고를 치는 거예요,

아버지가 제안을 했어요, 일주일만 말썽을 안 피면 자전거를 사주겠다. 이 녀석이 자전거 얻을 심산으로 일주일을 정말 잘 참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기특해서 자전거를 사주며 한마디 했습니다. 진작에 그렇게 말 좀 잘 듣지.. 그랬더니 자전거를 훌떡 집어 내 빌고 나가더랍니다.

하나님에게는 조건이 없습니다. 돌아오면 그냥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면 하나님의 것으로 축복하시는 거예요. 그분이 생명이기에 생명을 주십니다. 그분이 영생이기에 영생을 주십니다. 그분이 복의 근원이기에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분이 세상을 주관하시기 악한세력들을 막아주십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온 이 아들은 기대를 초과하는 감당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아버지에게 자기인생을 맡기는 자들에게 이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행복은 하나님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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