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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엡 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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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엡4:11-16)
새문안교회 2003. 9.7 주일예배


세상에서 괜찮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때 자기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업에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지식과 권력으로 인해 어떤 자리에 있거나 힘을 가진 사람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주님을 의지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더 의지합니다. 내가 가진 그것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돈을 가졌거나, 지식을 가졌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역시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종종 주변에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1)어떤 사람이 척척 승진하며 잘 나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한 병에 걸려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어떤 분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2) 어떤 사람이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는데 어느 날 부도가 나서 망하고, 방황하다가 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나갈 때에는 복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게 있는 것이 주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을 바라보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인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그토록 의지하고, 붙잡았던 것이 내게서 떠나게 될 때 사람들은 크게 실망합니다. 기가 팍 죽습니다. 정도가 심한 사람은 자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것이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위 세상이 말하는 괜찮은 사람, 괜찮지 않은 사람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런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괜찮은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 줍니다. 또한 스스로도 '나는 이런 자리, 이런 업적을 이루었으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괜찮은 사람을 이런 식의 잣대로 재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괜찮은 사람이란 오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세상에서 무슨 큰 일을 했거나, 세상에서 무슨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괜찮은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아무 일도 하지 말자는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업을 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괜찮은 사람, 온전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니 그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6장부터 나오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보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의 삶은 모두가 하나님이 보실 때 푹 썩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획하는 것들이 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오직 그들의 관심은 육체를 자랑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노아 당시에 네피림이라는 장사요,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세상적으로 잘 나가고, 돈 많이 벌고, 권력의 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딸을 저들과 결혼시킬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을 사위로 삼을 수 있을까? 당시 사람들의 주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괜찮은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를 등장시켜서 누가 괜찮은 사람인가를 보여 주려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산에다가 짓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믿는 것이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아는 것이란 하나님이 만들라 하신 방주밖에 몰랐습니다.

홍수를 만나게 될 때 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다 물바다가 될 때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방주밖에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 가족들의 이와 같은 믿음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비웃음 거리였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방주가 완성되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갔을 때 큰 비가 내려 홍수가 나게 되었습니다. 집이 물에 잠기고, 산이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누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증명되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에게 기대를 걸고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의 가족들뿐이었습니다. 결국 괜찮은 사람이란 예수님을 믿고 아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임이 증명된 것입니다.

예화) 성경을 배우는 어떤 고등학교의 시험에서 "골고다"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골고다는 다윗을 죽인 거인의 이름입니다" 라고 대답했더랍니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죽으셨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글쎄요, 서울대학병원 인 것 같은데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지요?' 라고 물었더니 '공동묘지에 가지요.' 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얻은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의 주장과 이 세상의 가치들에 대하여 운운하는 것을 이제 모두가 중단하겠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예수님만 관심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집중할 때 괜찮은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무엇을(what) 열심히 하는 것보다, 왜(why) 이것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 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말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을 위하여 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견딜 수 없는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집중하게 될 때 하나님의 교회가 점점 더 든든하게 세워져 가고,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순서입니다.
먼저 온전하게 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서야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뒤 바뀌면 그리스도의 몸을 튼튼하게 세울 수 없습니다.
먼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소란스럽고, 시끄럽습니다. 일하며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괜찮은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견고한 성도로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철저한 전도 훈련과 제자 훈련과 삶의 훈련을 통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물질 문명과 과학 문명과 우상과 철학과 휴머니즘과 많은 사상들이 있는 잡다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원리는 먼저 사람을 만드는 것이 먼저요, 일을 맡기는 것이 나중이었습니다.

괜찮은 사람으로 먼저 만들고 나서 그 다음에서야 봉사의 일을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 봉사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든든하게 세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일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일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려는 것보다 처음부터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100년 역사를 가진 교회는 있어도 100년 동안 영향을 미친 교회는 없습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를 그 예로 든다면 100여년 전에 그 교회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교회, 제일 좋은 목회자, 제일 좋은 건물 그리고 제일 좋은 회중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8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런던도 바뀌었고, 런던에 사는 사람들도 바뀌었지만 교회만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일할 '건강한 일꾼'들을 길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은 하지 않고, 그저 봉사의 일'을 하도록 맡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업과 행사를 치르는 데 봉사하는 일꾼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제자로 삼는 일꾼은 많지 않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람을 재생산하지 않는 일꾼은 진정한 의미의 일꾼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며 영향을 주는 헌신 된 소수를 키워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주도하게 해야 합니다.
소책자 '기도' 시리즈의 저자 E.M 바운즈의 말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은 더 좋은 기술과 더 좋은 프로그램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한 알의 사과 씨에서 수 백개의 사과를 보는 눈을 가진 '일꾼 한명을 만드는 것'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계속해 나가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든든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신실한 성도가 얼마나 많이 모여 예배드리느냐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성숙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서 있는 사람이 단 몇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숫자가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는 세상에 많은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 세상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고 보니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게되니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자리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속임수에 넘어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그리스도의 몸을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든든하게 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도가 가야할 길입니다. 이것이 괜찮은 사람, 온전한 사람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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