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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 요소들 /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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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 요소들 (행6:1-7) - 설교속기

< 사도행전 6장1-7 >

(행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행 6: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 6:7)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 요소들 》

  오늘은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 요소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악한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우리 성도의 기도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방해하기만 하면 성도의 믿음이 쇠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를 방해 받으면 교회는 쇠퇴합니다. 기도가 사라지면 교회가 무너지는 데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교회의 생명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 기도실로 가는 길을 막습니다. 기도의 자리로 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기도하는 길로 가는 곳에 풀이 자라도록 만들고 장애물을 갖다 놓습니다. 마귀의 방해가 매우 교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귀가 어떻게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가를 깨닫고 반대로 기도의 자리를 더욱 왕성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기도 외의 다른 일에 분주함

  기도의 길을 막는 것들이 무엇이 있느냐.

  첫째, 기도 외의 다른 일에 더 바쁘게 만듭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쁘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루살렘교회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다른 의무들이 절박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래서 구제할 일들이 많아진다, 또 우리 교회 같으면 부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야 될 일들이 있다…… 선교의 사역들이 하나도 나쁜 얘기가 아닙니다. 다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일들에 열중하면서 기도가 우선순위에서 슬쩍 빠집니다.

  예를 들어 학생의 본분이 사실 공부 아닙니까? 공부의 양들이 너무 많아지고 짐들이 많아지는 것을 통해서 정작 중요한 기도는 저 멀리 갑니다. 
  다른 성도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업이 힘들거나 또 너무 잘되어서 점점 사업에 매이고 기도의 자리를 점점 떠나는…… 갑자기 떠나는 것도 아니고 서서히 떠나게 되면 그때가 진짜 위기라는 것입니다.
  기도 외의 일에 너무 분주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너무 사업이 잘되고 너무 공부가 잘되고 너무 잘 되도 문제이고 너무 안 되도 문제입니다. 너무 중요한 문제가 많아져도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딱 하나만 붙들면 됩니다. 기도가 내 삶의 중심에서 멀어진다고 하면 다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마귀는 지극히 간교해서 좋은 것(Good)으로 최상의 것(Best)을 무너뜨립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나쁜 것으로 다가온다고 하면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쁜 것이 아닌 좋은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 좋은 것을 가지고 최상의 것을 무너뜨립니다. 사업이나 선한 일, 구제사역 같은 것이 왜 나쁜 일입니까? 그 좋은 것을 가지고 최상의 상태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사소한 접근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니엘의 강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사실 우리보다 좀더 바빴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평민들인데 다니엘은 총리 아닙니까? 그것도 적성국의 총리이고 주변에 적들이 참 많았습니다. 총리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우선순위가 뭐였습니까? 만사를 제쳐두고 기도였습니다. 함정 파 놓고 죽이려고 할 때에도 기도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사자굴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서 6장10절을 보니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의 이 한 가지 원칙만 지킨다고 할지라도 넘어지지 아니하는 귀중한 종들이 될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가 평탄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승승장구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상황은 다 다르지만 기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면 그것은 가장 큰 위기입니다. 삶의 앞부분을 기도의 내용들로 다시금 재건하고 수축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열정을 잃게 됨

  두 번째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 요소가 무엇이냐, 열정을 잃게 만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면 불이 붙어야 됩니다. 엔진이 돌려면 시동이 걸려야 하듯이 불이 붙어야 뭐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의 열정이 사라지면서 하루아침에 기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서히 불성실하게 기도하게 만들고 건성으로 기도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 같으면 정시 기도회를 빼놓고 진 기도회, 선교기도회 등 중간에 많은 모임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될 수 있으면 그런 것을 줄여달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한 군데로 집중해야 되는데 기도모임이 너무 많아서 기도를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대개 기도가 식어지게 되는 예가 마음이 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 오래 하다가 내 마음에 둔 자매가 집에 가면 어떻게 하나, 기도 많이 하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면 어떻게 하나……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되는데 기도를 급하게 해치워 버리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기도시간이 짧아집니다. 어제는 7시까지 기도했는데 오늘은 6시55분까지 하고 그 다음날은 50분까지 하고…… 이상하게 그 5분을 못 견디게 됩니다. 점점 기도의 시간이 짧아집니다.
  그리고 기도가 일과의 구석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옛날에는 중심에 있었는데 이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조건으로 밀려버립니다.
  또 하나 이상하게 기도의 가치를 인정치 않습니다. 기도만 하면 뭐 하나, 기도하다가 낙심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고 기도를 하다가 낙심합니다. 성경은 기도를 씨름과 비슷한 것이라고 여러 차례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씨름에서 쉽게 이길 수 있습니까? 투쟁과 기술,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 그런 것들이 다 조화를 이루어야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꼭 가져야 될 것들이 뭐냐 하면 이런 준비되는 모습들,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종합적인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기도의 열정을 잃지 않는 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성도 개개인도 그렇지만 교회 전체적으로도 기도의 열정을 쭉 관리해야 합니다. 너무 폭발적으로 열정만 있고 내용이 없을 때는 실력을 기르라고 얘기해야 되고 땔감들은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불길이 약해질 때에는 다시 불을 붙여야 합니다. 열정관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가슴 속의 열정이 식어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악한 마귀가 우리에게 많은 땔감으로 압사시키고 실제로는 태울 수 없는 땔감을 만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불 꺼진 심령들이 있지요. 저도 목사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기도가 막히고 기도의 열정이 식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일부러 과도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길이 약할 때 휘발유를 갖다 부으면 확 다시 불길이 올라가잖아요. 마찬가지로 어느 타이밍에서는 과도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에 전무한다.’ 라고 나온 단어가 ‘총력을 기울인다, 집중한다, 관심을 모은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고 합니다. 보통 때도 기도했지만 특별하게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총력을 다해 휘발유를 갖다 붓듯이 기도하겠다, 말씀에 집중하겠다, 과도하게 하겠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열정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서서히 다가오는 악한 마귀의 궤계를 휘발유를 갖다 붓듯이 열정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역전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삶을 불성실하게 함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서서히 기도를 죽이는 요소가 무엇이냐 하면 삶을 불성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와 삶은 굉장히 구체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구제로 인한 다툼이 기도를 악화시켰습니다. 구제 자체가 사실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안에서 형평성의 문제도 있었고 지도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는 독식하려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행정상의 미스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다보니까 기도가 약화되더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나의 삶이 방탕해질 때 기도가 막힙니다. 내 삶이 게을러질 때 기도가 막힙니다. 내가 범죄할 때 기도가 막힙니다. 어제 저녁에 이상한 방탕한 짓 했던 사람 눈은 떠져도 발길이 안 움직여져서 오늘 새벽기도 자리에 못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은 다 깨끗하게 살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내 삶이 불성실하고 내 삶이 방탕해지면 기도가 막힙니다. 죄하고 기도는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험한 십자가 붙들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힘없이 기도하는 것은 힘없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힘차게 살아 보십시오. 힘찬 기도가 나옵니다. 그 반대도 됩니다. 힘차게 기도하면 힘찬 삶을 살 수 있고 힘차게 살면 주님 앞에 나와서 힘찬 기도가 됩니다.
  선교 갖다 와서 돌아온 사람 기도하는 것을 보십시오. 힘차게 일주일을 살았잖아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힘찬 삶을 살았습니다. 돌아와서 기도하는 것을 보십시오. 기도가 얼마나 힘찹니까?

  반대의 예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 세상 속에 나아가서 싸울 때는 힘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 결국은 기도라는 것이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기도의 물줄기가 생활의 물줄기보다 더 높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도로부터 우리 삶의 수준을 높이는, 기도의 활력을 통해서 삶의 활력을 얻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니까 ‘남자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고 베드로전서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남자들이 기도가 안될 때가 언제이냐 하면 분노와 다툼이 있을 때입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구하는…… 그것이 주께서 주신 귀중한 말씀입니다.

  오늘도 기도와 우리의 삶이 같이 업그레이드되는 하나님의 능력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놓고
  하나님, 우리에게 기도를 서서히 죽이는 요소들 삶의 불성실, 삶의 불성실, 열정을 잃게 만드는 것, 다른 일에 분주하고 바쁘게 만드는 이런 장애들이 있습니다.

  다시 기도가 강하게 되기 위해서 이런 장애들만 제거하면 됩니다.
  기도보다 다른 일에 바빴던 것들을 다 제하고 다니엘 같은 인생이 되게 해 주십시오. 기도가 우선순위의 첫 번째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열정이 식어가는데 다시금 이 시간에 기도에 전무하는 기도에 총력을 기울이는 종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의 삶과 기도가 연결되는, 힘 있는 기도가 힘 있는 삶으로 연결되게 해 달라고 이 시간에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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