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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극히 풍성한 은혜로 / 엡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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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풍성한 은혜로
엡 2:1-7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1. 지난날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호등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늘 바라보던 신축 아파트를 보면서 지난 그 자리가 떠올랐습니다. 태왕이나 유성이 세워진 그 자리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언덕 바락에 국민 주택들이 촘촘히 붙어있어, 초록과 자주색의 기와 지붕들을 보면서 이 자리에 서 있었는데, 이젠 그게 안보입니다. 이젠 본래부터 저 높은 아파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저들 아파트가 신축되어 주민들이 이사 들어와 입택 한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벌써 아파트촌의 모습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오래된 교우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씀 중에 하나가 범어 네거리에서 수성 못으로 가는 도로 일명 '70미터 도로' 그 어느 자리에 우리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젠 그 어느 흔적도 찾을 수 없고 본래부터 저곳엔 저 넓은 도로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안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조금전의 것도 지금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물론 그렇습니다. 영어 속담에서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 안보이면 마음에도 없어진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옛것을 잊지 않으려고 절기를 세웠고, 율법을 생명처럼 지키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좋은 일들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난과 수치의 사건들을 기억에 남기고 있습니다. 역사를 존중하는 것은 무조건 옛것이 좋았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옛것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하심을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기억 속에서 오늘과 내일의 역사를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자 믿음으로 재다짐하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범어 교회 설립 97년을 맞이하는 기념주일입니다. 1906년 9월 9일에 안의화 선교사님의 인도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그후 지금까지 담임 교역자가 16명이 시무 하셨습니다. 제가 17대 담임 교역자입니다. 그 중에는 초창기 일제 시대에 조사 한 분과 전도사 한 분이 담임으로 교회를 돌보신 것 같습니다. 그러는중 위임하신 목사님은 1955년에 양찬언 목사님이 초대 위임목사이셨고 이후 박명석 목사님 그리고 설명도 목사님, 김성무 목사님을 거쳐 제가 5대 위임목사가 됩니다.

우리 교회 담임교역자 중에서 한국 교회사에 가장 크게 일하신 분은 1944년에 부임하여 해방때까지 잠시 시무하셨던 서남동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나중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수가 되어 연세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계시면서 한국 신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 외에도 귀한 목사님들이 시무하셨고, 동역하여 수많은 장로님들이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이처럼 그 동안도 이 지역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고 복음 전도와 선교로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해왔는데, 이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일 뿐임을 고백치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아멘-

2.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누리게 된 축복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나중 천당 갈 차표를 예매해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1절)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 전에 우리 상태는 곧 죽음의 상태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시한부 존재입니다. 그냥 없어져 갈 아침 안개 같습니다. 움직이고 운동을 하지만 실상 그 본질은 생명이 없는 죽음의 상태입니다.

마치 낙지 다리가 잘려서도 한동안 움직이는 모양과 같습니다. 또한 꽃꽂이된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그 모양은 아름답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죽은 상태입니다. 생명을 유지할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합니다. 줄기를 통하여 잠시의 상태를 유지할 물기를 조금 빨아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흙을 떠난 식물은 시한부 꽃입니다.

바로 이런 우리를 예수님의 구속의 피 값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다시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껏 죽음 가운데서 우리를 지배한 것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였습니다. 그 권세자는 지금도 불신자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기 전에는 우리들의 모습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과 같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며 양육하는 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우리가 돌아보면 교회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어떤 사람으로 있을까? 아마도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처럼 그들과 같이 세속 풍속을 따라서 육체의 원하는 바를 좇아 욕망의 열차를 타고 죽음의 계곡으로 질주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복음송을 불러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배당에 앉아서 예수 찬양하는 자 행복이~ 넘치네~
행복 행복 행복 행복이 넘쳐요~

이럴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온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입에 찬양과 웃음이 넘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없다면 어디서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의 자리에로 인도해주는 교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3.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물론 우리의 행복의 진원지는 바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위하여 이 땅에 보내셨기에 이 세상에 빛이 다시 비취었고 생명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빛이시며 우리의 행복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4-7절)

놀라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죽음에서 일어났을 뿐 아니라 이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진 복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젠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우리의 심령은 세상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 주님과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하늘 보좌 우편에 앉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2)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있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그런데 이 하늘에 앉아 사는 기쁨은 곧 교회를 통하여 보존되고 보호받고 재충전됩니다. 뿐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이 풍성한 기쁨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것이 본문에 담긴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즉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부언적 설명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들끼리 하늘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우리가 가진 기쁨과 행복을 그들에게도 나누어야 합니다. 전도와 섬김과 돌봄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죽음의 자리에 있는 공중 궨세 잡은 자의 수하에 있는 이웃을 구하여 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이 이루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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