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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렘 15:11-14, 마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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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 렘 15:11-14, 마 6:19-21 )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부요와 가난을 동시에 가르칩니다. 성경은 성도가 가난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동시에 성경은 성도가 부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요케 하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요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 재물에 대한 이중적 성격을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해 부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가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의 물질생활은 늘 없는 듯이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리스도인에게도 물질생활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물질생활은 신앙의 가늠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례미야 9:23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지혜가 보물입니다. 용사에게는 용맹이 보물입니다. 부자에게는 부함이 보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보물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의 가진 보물을 자랑하면 세상에 쌓는 일이 됩니다. 자랑치 않으면 하늘에 쌓는 것이 됩니다. 자랑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보물은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물질에 대한 만족입니다.

디모데전서 6:8에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3:5에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합니다. 잠언에서 지혜자 아굴은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 30:8)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이야 말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금언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에서 “너는 보물을 발견한 사실에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보물을 발견했다고 해서 네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보물을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보물은 발견하는 것보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 어디에 쌓아두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보물이 무엇이지요? 여러분은 보물을 어디에 쌓아두지요? 성경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이 매우 불확실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보물을 쌓기에 너무나 불확실한 곳입니다. 도둑도 있습니다. 좀과 동록도 있습니다. 우리의 보물을 도둑이 훔쳐가기도 합니다. 좀과 동록 때문에 변질되고 상하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불확실한 이유는 영원히 우리가 이 땅에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영원히 살지 않으면서 이 땅에 쌓아둘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에 이민갈 마음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여유만 있으면 미국에 집도 사고, 투자도 할 것입니다. 한국보다 미국의 경제 동향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투자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사람은 하늘 나라에 집도 사고, 투자도 하고, 관심도 가집니다. 이 땅에 영원히 살 사람처럼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늘에 갈 사람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투자 심리입니다. 좀과 동록은 귀중품을 먹거나 소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쌓아둔 재물은 소멸되고 없어집니다. 세상에 쌓아두어 영원히 안전하고 불변하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좀과 동록은 귀중한 보물일수록 좋아합니다. 귀중품일수록 좀과 동록이 많이 먹습니다. 야고보서 5:1-3에는 말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의 옷은 좀먹었으며 너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세상에 쌓아둔 재물이 어떻게 될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쌓아두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말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을 보세요. ‘굿모닝시티’ 사건입니다. 또 ‘스타시티’도 들먹입니다. 요즘은 시티가 문제입니다. 여기에 투자해 놓으신 분들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투자설명회는 거창했습니다. 규모도 엄청났습니다. 안심하고 투자했지만 세상은 안전치 못합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티’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도성”이 생각났습니다. ‘시티 오브 갓’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과 세상의 도성(City of World)을 설명합니다. 그가 말하는 두 시티는 늘 대치관계입니다. 이 양자는 늘 대립관계입니다. 가인과 아벨 때부터 지금까지 이 두 시티는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나되지 못하고 항상 평행선을 달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는 하나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새마을 금고나 신용협동조합이 금융사고가 납니다. 믿고 돈을 맡기지만 완전하게 믿을만한 곳은 아닙니다. 우리 연동신협은 절대 안전합니다. 외국에서는 은행도 예금동결을 합니다. 그래서 고객들의 인출 사태가 빚어집니다.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은행도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보물을 맡겨놓을 만한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은 모두가 불확실합니다. 우리의 보물을 안심하고 맡겨놓을만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전 어느 홈쇼핑 회사에서 이민 상품을 팔았습니다. 90분 만에 수천명이 몰렸답니다. 그 회사는 수백억의 주문매출을 올렸답니다. 주로 20대와 30대가 이민을 가겠다고 신청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까? 우리 나라가 매우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어디에는 확실합니까? 절대 안전한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은 완벽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불확실한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땅에 쌓아두지 못하는 것은 땅은 불확실하지만 하늘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은 너무 다릅니다. 성경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 부요하게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집 문앞에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부자는 음부에 갔고, 나사로는 낙원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나사로는 위로를 받고, 부자는 고통을 받습니다. 낙원과 음부는 서로 보고 있고, 대화도 하지만 중간에 깊은 구렁이 있어 왕래하지는 못합니다. 낙원과 음부는 이렇게 다릅니다. 하늘과 땅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이는 부자는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을 거절하였고, 그래서 부자는 물 한 방울을 거절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품과 뜨거운 불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세요? 천지차입니다. 오스틴이란 분은 말했습니다. “지상의 부는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갖게 되면 만족할 것이다’라는 서구 문명 최대 거짓말에 인간은 다 속았습니다. 이 땅은 결핍으로 가득 차고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가 말한대로 “우리는 세상에 적합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절대로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십일조를 권면하고 있는 말라기 3장에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으면 이 땅에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쌓으면 하늘 창고가 빕니다. 우리는 하늘 창고가 비든지, 이 땅의 창고가 비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 땅의 창고가 비고 하늘의 창고가 차게 해야 합니다.


둘째, 무엇을 보물로 삼든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보물은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성경은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으면 마음도 땅에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면 마음도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일에 물질을 쓰는 것을 뜻합니다. 에머슨은 “네가 땅을 소유하면 땅도 너를 소유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소유하면 하늘도 우리를 소유할 것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그의 책 ‘묵상’에서 “많은 사람이 황금의 중량 때문에 지옥 속에 가라앉았다”고 하였습니다. 배가 가라앉는 것은 너무나 많이 실었기 때문입니다. 황금을 너무 많이 실으면 가라앉게 마련입니다. 증권에 투자하면 신문이 오면 주가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주가가 오르고 내림에 따라 기분도 업 앤드 다운을 반복합니다. 이것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마음을 완전히 주가에 빼앗겨 버립니다. 결국 주가가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리처드 포스트에 의하면 “금식하면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람이 가장 원초적인 본능으로 돌아가게 되면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에 빠지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 교회는 연초에 교역자들이 금식을 합니다. 금식을 하고 나면 먹고 싶은게 다 다릅니다.

지금 있는 분들 얘기하면 좀 그렇습니다만 영국에 가 있는 김은섭목사님은 그렇게 못 견뎌요. 배가 고파 어쩔줄을 몰라합니다. 몸에 저장해 놓은 에너지가 없나봐요. 그렇게 생겼지요? 브라질에 가 있는 주성염목사님은 초콜렛이 제일 먹고 싶대요. 어울리지요? 금식을 하고나면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재물을 포기한다는 것은 작은 일입니다. 하지만 인격을 포기한다는 것은 운명을 건 큰 모험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지배당하게 하는가 하는 것은 모험입니다. 그러나 지금 무엇에 지배 당하는가 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잠언 4:23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잠언 16:32에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은 인격이며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훈련은 어떤 것에 숙달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훈련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도록 공간을 내어드리는 노력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훈련입니다.

셋째, 필요한 모든 물질이 이미 공급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다 공급하십니다. 그래서 땅에 쌓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에 쌓으라는 명령은 땅의 것을 주시겠다는 보증입니다. 마태복음 6:26에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합니다. 6:28에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은혜로운 말씀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라는 말씀입니다. 금방 없어질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명령하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만하면 다 끝난 것 아닙니까? 고생 끝, 염려 종료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내가 몰라도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텐데 내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벌이 1Kg의 꿀을 모으기 위해서는 560만 개의 꽃을 날아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수고를 하지 않고 먹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의 기준은 광야에서의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미리 아시고, 공평하게 분배하신 것이 하나님의 공급입니다. 이 땅의 것을 우리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에 가장 적절하게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가장 많이, 가장 흔히, 가장 쉽게 공급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과 공기가 그렇습니다. 이것을 돈으로 사서 사용한다면 엄청난 돈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대가 없이 주시기에 늘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자 베르나르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유하신 한 나는 가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재물이 곧 나의 재물이니까.” 여러분, 이 말을 믿습니까? 이 말을 확신합니까?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되찾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쌓아두면 하늘 나라에 가면 반드시 찾습니다.

결론

옛날 한 고대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얘기입니다. 어느 한 노인 수도사가 젊은 사업가에게 말했습니다. “물고기가 마른땅에서 죽듯이 자네도 세상에 뒤엉키면 파멸케 되네. 고기는 물로 돌아가야 하고 자네는 성령께로 돌아가야 해.” 그 사업가는 아연실색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내가 사업을 그만두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란 말이오?” 그 노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런 것은 아니죠. 제가 드린 말씀은 사업은 그대로 붙들고 있고 당신 마음속으로 들어가란 말이오.” 우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지배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보물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쌓을 것이 없을만큼 이 땅의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 땅에 쌓을 수 있습니까? 이 땅은 너무나 불확실합니다. 믿고 투자할 데가 없습니다. 이런 때가 하늘나라에 투자할 때입니다. 이 때에 하늘나라에 투자하십시오. 가장 안전한 투자입니다. 절대 떼일 염려가 없습니다. 하늘에 많이 쌓고, 하늘에 부요한 자가 되십시오. 하늘나라에 가면 면류관으로 더 크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자가 받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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