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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 / 행 9: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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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
사도행전 9:32-43 


사도행전 8장에 의하면 복음이 사마리아까지 전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복음전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빌립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해졌다는 말을 듣고 사도들의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합니다.
사마리아에 도착한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이 임하도록 안수 기도하고 그들 모두가 성령을 받습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이곳 저곳에 두루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잠시동안 두 사람의 모습이 자취를 감춥니다.

이어서 빌립이 다시 등장하여 광야 길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9장에 들어서면 사울의 얘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과 회심, 다메섹에서의 전도,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의 만남, 유대인들에 의한 생명의 위협 등등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모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오늘 본문에 다시 베드로 사도가 팔레스틴 서부 지역 순회 전도사역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일어났던 사건 두 가지가 소개됩니다.

1. 첫째 베드로가 룻다에서 애니아라 하는 중풍병자를 고쳤습니다(32-35)

32절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순회 전도를 하였습니다.

1)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내려갔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성령충만이요 ②복음 전파입니다.
그들은 늘 성령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늘 복음 확장을 위해서 모든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사방으로 두루 다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회하면서 전도했음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도 사방으로 두루 다니십시오. 복음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확장되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범위를 날마다 확장시키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복음의 확장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내 가족만 전도 대상자로 삼지 마시고, 내 이웃만 가슴에 품지 말고, 이 지역, 이 나라, 나아가 지구촌 전체를 가슴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약하거나 나이가 많기 때문에 복음 확장의 꿈을 갖지 못합니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복음 확장의 꿈을 갖지 못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이뤄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마음의 꿈이 실제로 이뤄집니다. 여러분이 이루지 못하면 자녀들이 이뤄주고, 자녀 때 다 이루지 못하면 손자들이 이뤄줍니다.
부모의 큰 꿈이 자녀를 큰 인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들이 여러분의 가슴에 품고 있는 큰 꿈을 통하여 복음 확장의 위대한 인물들로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한 가지 목적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영혼 구원이 예수님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시기 위해서 재림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관심이 온통 영혼 구원에 있다면, 우리의 관심도 당연히 영혼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불신 영혼 구원에 관심이 없다면 극도의 이기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구원키 위해서 피 흘리시고 죽어 주셨는데 나는 영혼 구원에 힘을 쏟지 않는다면 해도해도 너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도 두루 다니며 전도하여 영혼 구원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2) 룻다에서 애니아라 하는 팔 년 된 중풍병자를 만납니다.

33절에 보면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위에 누운 지 팔 년이라>
베드로가 룻다에 내려가서 전도하는 중에 중풍병으로 누워 있던 애니아를 만났습니다.
지금도 전도하러 나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준비해 놓으신 전도 어디에서든지 대상자를 만날 수 있게 하십니다. 

애니아는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누워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8년이 아니라 평생이 됐을 것입니다. 8년이 변하여 10년 20년 되다가 그냥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애니아와 같은 육신적으로 병든 자도 만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삶의 지친 영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중풍병으로 8년 동안 누워있던 애니아를 만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3)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애니아의 중풍병을 치유했습니다.

34절 보세요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곧 일어나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그러니 일어나라> 베드로 자신이 치료한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하신다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왜 사도행전 프로젝트를 진행합니까? 왜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교회가 너무 무기력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않고, 멋있는 건물도 없고, 돈도 있고 권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도 영적 힘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영적 힘이 없으니 죽어 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고 명령하지 못합니다.
사단의 역사를 보면서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하고 소리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교회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능력은 없습니다.
주인 되시고, 머리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불신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옛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줘야 하는데 보여줄 게 없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지역사회를 섬기고 또 전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스포츠센터를 운영합니다. 도서관도 만들고 유치원도 만들어 지역사회에 개방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꼭 필요한 일이요 좋은 계획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 만 가지고는 전도에 한계가 있습니다.
교회가 정말 힘있게 전도하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베드로가 애니아를 일으켜 세우자 35절에 보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이처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충만 합시다.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능력 받아서 나가도록 합시다.
병자가 있다면 위해서 기도하고 일으켜 세우십시오. 필요하다면 기적도 보여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돌아섭니다. 그러면 교회는 다시 부흥됩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를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충만해야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오. 베드로는 한 영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로

4) 룻다와 사론 두 마을 전체가 이적을 보고 주님께 돌아섰습니다(35).

빌립도 내시 한 사람을 만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 나라의 복음화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한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큰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지역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가족, 친지, 이웃 전체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천국의 확장은 한 영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편으론 교회 안에 중풍병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중풍병자일 수 있습니다. 앓고 있는 질병이 있습니까? 그 질병이 무엇이고 얼마나 오래 동안 앓고 있었습니까? 중풍 병자가 베드로의 명령에 의해 치료되었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도 지금 이 시간 치료됨을 믿으십시오. 이 시간에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서기 바랍니다. 일어서십시오. 병을 털어 버리십시오. 주님이 치료치 못하실 병은 없습니다.
주님의 전능하심에 신뢰를 보내면서 내 병도 지금 치료될 수 있다 고 믿고 일어서기 바랍니다. <병든 자 일어서라> 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본인이 믿음으로 일어서야 진짜로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일으켜 세우지 않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았던 앉은뱅이에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는 명령이 임하자 본인이 믿고 일어섰습니다. 치료가 되어져서 일어선 게 아니고 믿고 일어섰더니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는 본인의 믿음에 의해서 걷고 뛰는 축복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누리게 되었습니다.

애니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치료해 주시니 일어나라 그런 베드로의 명령 앞에 그냥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믿고 일어섰더니 진짜로 치료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일어설 차례입니다. 각양 각종의 질병을 가지고 이날까지 고생하신 여러분에게 제가 주님을 대신하여 명령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치료될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치료될지어다> 믿습니까? 이제 치료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치료되었다는 믿음을 보일 때 치료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본문의 뒷 부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일어나라> 하니 죽은 자도 일어났는데 살아있는 여러분이 왜 일어서지 못합니까? 여러분의 치료를 이웃에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적으로 해결된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에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뿐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사업문제, 돈 문제, 자녀문제, 직장문제, 가정문제, 결혼문제 등등 모두다 주님께 해답이 있고 주님께 해결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향해 스스로 외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역사 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역사 하셨고 이제는 여러분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치료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문제해결의 길을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없기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믿음의 깊은 맛을 알기를 바라고 믿음의 큰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내일 치료되는 게 아닙니다. 내일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베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 일어섰습니다. 떨어짐과 동시에 일어섰습니다. 치료 될 것이다가 아니라 치료되었습니다. 해결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로 시선을 돌려보십시오. 중풍병자의 모습은 아닌가요?
숨은 쉬지만 꼼짝못하는 식물인간 같은 교회,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지만 영적 호흡이 없는 교회는 아닌가요?
부흥되지 못한 게 몇 년인가요?
전도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한 게 몇 년입니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게 얼마 동안이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게 얼마 동안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없고, 사랑이 없고, 싸움과 시기 질투만 있는 게 얼마 동안입니까?
있어야 될 것은 없고 없어도 될 것만 추구해온 게 얼마 동안이었습니까? 이제 맘껏 활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생명이 있음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죽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보여주고 우리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십시오. 오늘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둘째 베드로는 욥바의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를 살렸습니다(36-43)

36절 이하를 보시면 <다비다>라는 죽은 여인이 살아나는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도대체 어디까지나 믿어야 합니까?
이 땅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요?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고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그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지금도 얼마든지 살아 날수 있습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 산 자를 죽이는 것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연의 법칙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셔서, 자연법칙을 넘어서서 일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이요, 이적이요 표적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언제 기적을 일으키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기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할 때 죽은 자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열왕기상 17:20-22절을 보시면 사르밧땅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가 기도하여 살려냈습니다.
②열왕기하 4:32-37절을 보시면 엘리사의 기도에 의하여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③그리고 본문의 베드로도 40절을 보시면 무릎꿇고 간절히 기도했고 그 결과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겠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능력은 죽은 자를 살아나게 만듭니다.
기도가 그처럼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릎을 꿇읍시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시다.

교회가 왜 힘이 없습니까?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있으면 힘있는 교회가 되고 기도가 없으면 껍데기뿐인 교회가 됩니다.
저는 교회에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의 근본원인은 무릎 꿇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한마디로 능력 덩어리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했고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를 오게 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 졌습니까?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시면 비를 내리기 위해서 엘리야가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어떤 모습으로 기도했습니까?
열왕기상 18:42절에 보나까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7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저 능력을 나타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기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흉내만 내지 말고 기도다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신앙생활하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임합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기도하면 부흥되고 축복 받습니다.
기도하면 믿음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기도하여 <너 기도의 사람 흥준아> 하는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기도하여 <교회 광성교회야> 하는 말을 듣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시작되면 소망이 시작됩니다.
기도가 계속되면 하나님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쓰임 받길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사도행전 프로젝트의 목적을 이루길 원하십니까? 기도 없이는 100%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뒷받침되면 100% 이룰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 주시도록 합시다. 교회 부흥도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하고, 기도할 때에 능력 받고 뛰어나가 전도하게 됩니다.

무릎꿇고 기도를 마친 베드로가 시체를 향하여 명령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비다의 눈이 열리고 일어나 앉게 되었습니다.
어떤 종교가 죽은 시체를 향해 명령할 수 있습니까?
시체를 향해 일어나라고 호통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 외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다른 종교인들은 왜 명령하지 못합니까? 100번 1000번을 외친들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알신이여 불을 내려 주소서 하고 아침부터 낮까지 외치고 또 외쳤건만 묵묵 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니 누가 불을 내려주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명령하기만 하면 다 살아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때,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때에 한해서 그런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었기에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런 사람을 살린답시고 기도하면서 일어나라고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에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실 것이고 그 때에 살아나는 기적이 나타남을 믿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사모해야 합니다. 나아가 기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사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맹목적인 기적 추구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를 35절과 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5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42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주께로 돌아 오니라, 주를 믿더라>. 애니아의 치료와 다비다의 살아남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즉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질병 치료를 통해서 육신의 고통을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면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보여줄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능력을 통해서 나를 나타내고 내가 영광 받고 내 유익을 취하겠다는 그러한 목적이 있다면 마술사 시몬이 돈주고 성령의 능력을 사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영혼 한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라고 전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웃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해도 믿지 않고 전해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을 믿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 많이 하십시오. 그러나 능력을 나타내는 목적은 항상 영혼구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은 순수한 자세로 능력을 사모할 때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 하실 것입니다.

애니아의 치료와 다비다의 살아남을 보고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베드로한테 영광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믿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치료해 주셨고 주님께서 살려주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돌아 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저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도 그저 사람의 손에 들린 지팡이와 같고 돌멩이와 같을 뿐입니다.
목자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사나운 짐승이 다가오자 지팡이로 짐승을 쳐서 양들을 지킵니다. 그때 지팡이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합니까? 목자에게 수고했다고 칭찬을 합니다.

다윗의 손에 돌멩이가 들려졌습니다. 다윗은 돌멩이를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멩이를 칭찬했습니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면서 다윗을 칭찬했습니다.
도구가 칭찬 받고 도구가 영광 받으려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기도 열심히 하십니까? 믿음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겸손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십시오. 오직 주님만 높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능력,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까지도 넘치도록 나타남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중풍병을 털어 버리십시오.
죽은 시체와 같은 모습에서 벌떡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처럼 회복시켰노라고 뛰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능력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메말라버린 이 시대에 능력의 풍년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보여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보여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야가 기적을 보여 줬습니다.
엘리사가 보여 줬고 베드로가 보여 줬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기적을 보여 주시길 원하십니다.
기적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전주시가 다 주께로 돌아 오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믿더라 그런 결과를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다같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시기 바랍니다.
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애니아가 일어섰습니다.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치료되지 못한 질병이 무엇입니까? 그 곳에 손을 올리십시오.
여러분! 문제가 있는 분은 가슴에 손을 올리십시오.
또 죽어 있는 게 무엇입니까? 기도가 죽었습니까? 전도? 봉사? 헌금생활? 축복이 죽어있습니까? 이 시간 살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자 죽은 자가 살아난 것처럼 여러분이 기도하면 질병이 치료되고, 문제가 해결되며,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이 시간 <치료 되라>고 명령하십시오. <살아나라>고 큰 소리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교회가 <일어서라>고 명령하십시다. 교회가 일어서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한 목소리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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