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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욥 (욥 2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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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제목 :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욥
본문 : 욥기 23:1~10

  태풍으로 인해서 수많은 형제들이 생명을 잃었고 또 재산에 엄청난 피해
를 가져오게 된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루
려고 하는 욥기서에는 인간 고난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욥기 성경
은 범위가 아주 간단합니다. 욥이라는 한 개인의 문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고 있는 성경이 됩니다. 이 욥은 유대 땅 사해 동남쪽 우스라는 땅
에 실제 살았던 3,500년 전 인물로 해석이 됩니다. 욥기서를 우리가 잘 이
해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또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많은 고난스러운 문제들에 대한 훌륭한 답변을 얻게 되어 있습니
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세상의 모든 인간은 종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봅
니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의 문제 앞에서
는 별안간 종교의 힘을 얻고자 초월적 힘을 기대하고자 변해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대 사람이건 현대 사람이건 문명인이건 원시인이건 상관없
이 나름대로 믿는 인간 이상의 초월적 힘에 대한 기대와 소원을 가지고 인
간이 살아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 가운데 하
나님을 찾도록 본능적으로 그렇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방법
이 틀리기도 하고 혹은 잘못되기도 하지만 모든 종교 활동은 하나님을 찾아
가는 모습이 됩니다. 신이 계시다면 한 분이지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
람이 자연스러운 자신의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때 매우 심각한 경우를 만나
게 됩니다. 그 심각성이란 거의 고난의 사건을 말합니다. 인생의 난제, 내
게 현실적으로 닥친 이 고난의 문제에 대한 현명한 처리, 이것이 우리들이
늘 살아가는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인간은 바로
이 내게 닥치는 고난의 문제를 통해서 인간됨의 가치를 발견하는 힘을 또
갖도록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닌 그
런 시각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이 욥기서의 주제는 "의인이 당하는 고통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주
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고통의 사건이 주어졌습니
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시각이 나타납니다. 복음서에
서도 그런 것이 나타납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고난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이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 사람들이 그 고난을 바라보는 시
각은 죄 값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만 날 때부터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죄 값이냐 자신의 죄 값이냐를 판단하기 어려워서 예수님께도 질문했던 그
런 기록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이 욥에 대한 신상 명세서가 오늘 말씀
가운데 소개되어지는데,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욥의 현실은 세
상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면서 얻고자 하는 가장 좋은 것들을 모두 소유하
고 있는 행운아로 소개가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람은 하나님
과의 관계가 매우 좋은 신앙인으로 그렇게 소개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인생
의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인 삶의 목표라든가, 삶의 철학 이런 것들이 완
벽하게 훌륭하게 준비된 그런 사람으로 여기 보여집니다. 영혼의 소유가 넉
넉한 사람인데 어느 정도인가? 그 사람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없
다고 동방의 의인이라고 선언을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을 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
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나님
이 인정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위치에서 이 사람
은 살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삶에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아주 잘 준비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건강했다고 했습니다. 부
인과 평화스러운 관계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자녀의 복을 받아서
아들이 일곱이고 딸이 셋인 10남매의 자녀들을 지니고 있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자녀들이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모두 순종을 잘하
는 모범 자녀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재산이 아주 엄청나게 많은 부자
입니다. 당시 유목민 생활은 가축의 수요가 그 사람의 재산의 정도를 평가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욥이 가지고 있는 가축의 수요를 정확하게 기록하
고 있습니다. 7,000마리의 양떼를 가지고 있었다 했습니다. 3,000마리의 약
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1,000마리의 소를 가지고 있었고, 500마리
의 나귀를 소유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는 아마 그 옛날 아득한 먼 재산의
규모로서는 재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부리는 종들도 많았다고 그
랬습니다.

  욥기서에서 이 욥의 재산 목록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얻고자 하는 것이 넉넉한 물
질의 소유이기 때문에 욥은 그것이 충분하게 준비된 인물임을 확실히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사실 재물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
을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욥은 당대의 재산가이면서 하나
님 앞에 최선의 신앙 생활을 훌륭하게 하는 그런 인물로 표현이 되고 있습
니다. 실제로 이 재산이 많으면 재산 관리에 너무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쓰
게 되므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좋은 신앙 생활을 할 때 영적인 장애를 많이
느끼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인정합니다. "소유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제일 염려되는 것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그런 염려를 항상 하
게 됩니다.

  저는 교회 건축을 하면서 돈을 수중에 많이 지녀본 경험을 가지고 있습
니다. 그때는 건축위원장하고 저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어떤 때는
제 몸에 100만 불, 200만 불 수표를 항상 넣고 다녀야 되는 때도 있었습니
다. 또, 어떤 때는 많은 돈을 저의 집에다가 두고서 잠을 자야되는 그런 때
도 있었고, 건축하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했는데 그때 내 마음을 솔직히 표
현을 해보면 이게 쉽지를 않아요.  몇백만 불 수표를 주머니에 넣고 길을
건너가는데 세상 사람들이 별안간 다 강도같이 보이는데 말이에요, '저 사
람이 도대체 언제 나를 봤다고 저렇게 째리고 쳐다보나?' 이런 생각도 하
고, 공연한 사람을 공연히 다 강도로 만들어 버리고, 돈을 또 많이 몇십만
불을 현금으로 집에다 두고 자야되는데 말입니다, 그때는 교회 건축 전이니
까 남의 교회 빌려서 예배 드릴 때 둘 때도 없고 말입니다. 별안간 내일 은
행 문이나 열어야 은행에 갖다 둘까 오늘 저녁은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자야
되는데, 이불 밑에다 넣고 자보기도 하고, 그러면 도둑놈이 와서 이불 밑
을 들쳐볼 것 같기도 하고 베개 밑에다 두면 또 꿈마다 돈 뭉텅이가 나타나
니까 잠도 안 오고… 옷 속에다 깊이 넣어도 밤새도록 잠도 안 오고 말입니
다, 아마 그런 큰돈을 가져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아주 뭐, 그 돈 관리
에 어떻게 내가 고난을 겪었는지 그것 다 쓰고 나니까 얼마나 편안하고 좋
은지…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재산이 많다보면 관리하는 여러
가지 과정에서 신앙에 손해가 날만한 자리에 많이 가게 됩니다. 또, 그런
모임들은 주일날 많이 있습니다.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
기 욥이 훌륭하다는 것은 그러한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는
데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잘 공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모두 하나님을 찬양
하고 때가 되면 생일마다 번제를 드리며 일이 생길 때는 반드시 챙겨가면
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동방의 의인입
니다. 그 가정은 영혼의 삶도 아주 풍성하고 육신의 삶도 모두 윤택한 정
말 행복한, 온 세상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그런 행복을 다 소유한 그런 가
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한 가정에 큰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마귀의 개입으로 나타납니다. 욥을 바라보시고 너무나 좋아하시는 하나님
을 보고 마귀는 하나님께 그럴 듯한 이유를 제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속고
계시는 겁니다. 뭘 속고 있느냐? 욥이 저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뭐냐?"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
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고 세상에서 그가 하나도 고난스럽지 아니한 모든
행복의 조건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욥이 저렇게 하나님을 좋아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욥에게서 그러한 행복의 조건들을 빼앗아 가시다면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속고 계시
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냐? 그러면 너하
고 나하고 한번 내기를 해보자." "그렇게 합시다." 마귀에게 "네 마음대로
욥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다 빼앗아라. 내가 그 권한을 너에게 주겠
다. 다만 욥의 생명은 손대지 말라." 그렇게 하나님이 조건부 허락을 하십
니다. 그래서 마귀는 신이 나서 그 시간부터 욥을 고난의 삶으로 떨어뜨리
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신학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인간 고난은 하나님
이 주시는 것이냐? 아니면 마귀가 주는 것이냐? 욥기서 대로 대답을 한다
면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마귀가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인간의 가
장 고귀한 것을 주시기 위하여 시련을 주시는데 그 시련은 하나님의 자녀
를 망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빛이 나는 하나님의 사람
을 만들려는데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생각은 망하게 하려는데 목적
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허용되는 일이기 때문
에 결과적으로는 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내
용을 밝혀주는 성경이 욥기서 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욥기서는 하나님
께 대한 인간의 믿음을 훈련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반대의 의미가
더욱 강한 성경입니다. 그 반대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이 더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욥이라는 사람 하나를 가운데 놓고 양쪽에 하나님과 마귀가 그를 바라보고
믿어주는 시각에 큰 차이가 납니다. 마귀의 시각과 믿음은 무엇입니까? "욥
이 소유하고 있는 행복의 모든 조건들을 없애버리면 결국 욥도 하나님을 버
리게 된다." 이것이 마귀가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은 무엇
입니까? "절대 그렇지 아니하다." 욥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허락하는 것
입니다. 욥의 믿음이 좋다는 것은 이와 같은 영적 게임에서 하나님의 믿음
이 승리할 수 있도록 그가 그 고난을 견디었다는데 교훈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러한 일은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같
이 하나님도 나를 믿고 계십니다. "너는 나의 자녀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지 나에 대한 믿음은 승리할 것이다!" 라고 하나님은 나를 인정하시고, 마
귀는 "너는 너에게 조그만 고난이라도 닥치면 금방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
놈이니까!" 자신 있게 덤벼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 그 중간에 내가
있는 그런 시각이 욥기서라고 하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마귀
는 그때부터 이제 욥을 고난스럽게 만들기 시작하죠? 아주 잔인하고 험악하
게 욥을 쳤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의 순서를 보면 이렇습니다. 재난 손해의 고난이 먼저
찾아옵니다. 사실 이 욥의 재산은 피 땀흘린 것입니다. 그렇게 정직하고 하
나님이 인정하는 부정을 했을 리도 없고, 도둑질을 했겠습니까? 재산을 모
았다는 것은 남보다 많이 땀흘렸다는 결과입니다. 요즘에 자살하는 가장들
이 좀 많이 생겨집니까? 땀흘려 윤택한 삶을 누려보려고 모은 자산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릴 때 그 당하는 뼈아픈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심정이죠? 이 욥의 재산은 당시로서는 재벌인데, 무너지는 재벌의 슬
픈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한 재벌 총수가 얼마 전에 자기 생명을 스
스로 끊어버리는 슬픈 비극을 우리는 보아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물질관계에 몇 번의 시험을 거친 일이 있습니다. 잔뜩 기대
하고 있습니다. '아! 이것은 내 것이 되었구나! 참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
다!' 얼마나 기뻐하고 그랬는데, 그것이 소리 없이 태풍에 날아가 버릴 때
그 당하는 쓸쓸함이란 그런 경험을 당해본 사람만이 기억할 수 있는 인간
고난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고난이 됩니다. 그런데, 조그만 재산을 가지고 있
다가 없어진 사람도 섭섭한데, 지금 태풍이 불어서 집이 조금 무너지고 과
일이 떨어지고 이것도 슬픈 눈물을 금할 수가 없는데 욥과 같은 재벌이 하
루아침에 다 무너져 버렸을 때 그 고통스런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더 슬픈 고통이 찾아옵니다. 자녀들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다 죽었습
니다. 10남매가 모두 죽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들도 늘 말합니다. 자식이
죽으면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었다는 그런 말을 하면서 삽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당하는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욥은 한꺼번
에 10남매를 잃어버린 최대의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마귀
는 최대한의 고통을 주고 기어코 욥의 입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고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자기가 하나님을 이기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그 다음에 보면, 그토록 사랑스럽고 평화스럽던 부인이 원수가 되어 버
립니다. 아무리 고통이 커도 인간 고통은 여기서 고통을 함께 나누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이길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부인이 가장 많이 그 고통
을 나누어 주어야할 입장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최대 고통을 자
기에게 줄 때 그 고통이 몇 배로 증가하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외로운
욥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는 건강의 손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몸에 상처가 얼마나 심했
는지 너무나 아프고 너무나 가려워서 재에 앉아 기왓장으로 자기 몸을 문질
렀다고 그렇게 표현되어 이 있습니다. 솔직히 사람이 건강해서 제 모습을
갖출 때 우리 사람됨의 가치가 나타나잖아요? 욥과 같이 되어버리면 사람같
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욥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생명이 붙어있다는 것입니
다. 그런데 욥에게 있어서 그러한 모든 소유의 손실에서 온 고통보다도 더
욱 큰 고통스러웠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혹은 정신적인 고통이었
는데, 그 고통이 뭐냐?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
는 그 고통이 더 컸습니다. 즉, 의인이 받는 고통이기 때문에 더 고통이 컸
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자신이 고통을 받는 일은
우리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오는 고통일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
욥과 같이 의인이 아닌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고난의 책임이 나 자신 때문
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 값이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보다도 더 큰 고난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내 죄로
오는 고통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인정하셨기 때문에 욥이 지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이 인
정할 만큼 의인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게 사는 사람도 이런 인간 고
통에 참여해야 되나? 죄와 벌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잘못이 있을 때 하
나님이 벌을 통해서 교훈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욥기서 1장 1절에
하나님이 인정했습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욥 같은 사람
은 절대 그와 같은 고통이 주어지지 않아야 됩니다. 욥이 당하는 고통은 하
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악질스러운 사람에게나 나타나야 되는 그런 고통을
지금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욥의 고통입니다.

  욥이 끝까지 고통스러웠던 것은 고통의 이유를 모르는 고통입니다. 이
때 욥이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은 안계시다! 지금까지 내가 믿었던 하나
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 라고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터인데, 그러나 욥은 절대 그렇게 믿어지지가
아니하고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시
다!" 라고 하는 그 변함없는 신앙 고백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
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실까?" 마귀의 고문은
늦추어지지 않습니다. 욥이 그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
고 그의 세 친구가 심방을 오게 됩니다. 그 세 친구는 욥에게 계속해서 질
문을 합니다. 그 질문이 "네가 감추고 있는 죄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
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입니다. 그러니 욥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
까? 욥의 고통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 집니다. 세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욥
에게 한 이야기는 "죄 값이다! 너는 겉으로 의인인체 하면서 속으로는 죄
를 많이 짓고 살아서 그 죄 값이 네게 임한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
습니다. 그래서 욥은 오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하나
님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에게 내가 묻기를 무슨
이유냐고 내가 물어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그 대답을 듣고 내가 깨달으리
라. 나로서는 도저히 이 고통의 이유를 알 수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합니
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계시지 아니하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
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
면 나는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통은 누가 준 것인가? 욥기서의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 사건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사탄이 가
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서 예수를 팔게 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
다. 그러면 사탄이 시켰습니다. 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길을
피하고 싶은 진솔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일이 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
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러면 예수의 십
자가 사건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었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뭔가? 의
인의 의로운 고통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능력이 주어진다
는 것입니다. 죄인의 고통은 죄 값입니다. 마치 마귀에게 져서 완전히 패망
하는 듯한 자리에까지 하나님은 의인의 고통을 그대로 두실 때가 있다는 것
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이 성취되
는 하나님의 계획이 계시기 때문에 이 고통이 주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
니다. 욥의 자녀들은 죄가 없잖아요? 죽었잖아요?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론
안에서는 인간의 판단으로는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님도 십자가 사건이 그것 아닙니까? 욥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되는가?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역사성 안에서는 그런 고통으로 하나님께로 먼저 가
는 사람도 있고, 그런 고난으로 평생을 고난스럽게 사는 사람도 있고 즉,
의인의 고통을 통한 인간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십자가 사건과 욥기서의 신
학이 우리들에게 제공하여주는 것입니다.

  욥기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마지막은 똑같은 의미로 나타납니다. 그
것은 승리입니다. 욥기는 마지막에 욥이 잃었던 모든 소유를 회복했다는 아
름다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과 같은 그런 모습을 기록하고 있으며, 예
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권세를 때려부수고 3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하나님의
의가 거기에 나타나게 하시는 승리로 끝이 납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도 겟세마네와 십자가로 연결이 되는 의인의 무한한 고통 속에 들어섰다는
것과 욥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무한한 고통에 떨어지면서 욥기서가 나왔다
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 대한 확신이 변함이 없었다는 그것을 십자가 사
건과 욥기서가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서 욥을 쓰러뜨리려 했던 마귀는 마침내 손을 들고 하나님이 승리의 노래
를 부르셨습니다. 마귀의 세상이 되는 것 같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
나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에 역사 하시고 일을 하
고 계십니다. 지금은 네가 무한한 고통 속에 떨어져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
망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 고난이 인간 구원의 역사에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는 너의 손을 붙잡고 이 고난을 지금 이겨가고 있는 것이다.

  사탄이 하는 일은 뭔가? 하나님과 사람을 이간시켜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탄의 권세는 하나님의 허
락 안에서만 가능한, 제한된 권세에 있다는 것입니다. 능력도 시간도 하나
님이 정해주신 그 한도 내에서만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의 구원 역사
에는 마귀마저도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나라를 위해서 억울하게 죽는 경우의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욥의
자녀들과 같이! 마지막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 이것이 욥기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욥기서에 나타난 유명한 세 가지 요절이 있죠? 모든 소유
를 다 잃었을 때, 1장 21절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
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두 번째, 왜 이런 고통을 당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를 때, 오늘 말씀 23장 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
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세 번
째 말씀, 모든 것이 끝나는 마지막에! 42장 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빛이 나게 만나는 욥의 고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욥의 승리,
이것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똑
같이 나를 믿으시고 "너는 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의 어떤 고난의 역사 속에
서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내 자녀가 될 것을 내가 믿노라!" 욥과 같이 승리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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