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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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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1-34)


  오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3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간이 세상을 살 때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세상 근심과 걱정입니다.  본문 3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첫째,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등은 모두 육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는 모두가 물질적인 것들로 현재적이고 순간적인 눈에 보이는 염려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옷을 주시는 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먹을 것을 주시는 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혼자 사는 것 같아도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32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악한 왕 아합을 피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던 엘리야 선지를 하나님은 까마귀를 시켜 먹이셨습니다.(왕상 17:6).  아침과 저녁에 떡과 고기를 먹이셨습니다.  엘리야가 숨어있는 것을 아시고 먹이신 것입니다. 

  왜정시대 평안북도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 전도사님의 부인이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고열이 나서 식사도 못하고 심하게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장티푸스에 걸렸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지서에서 순사가 새끼줄을 치러 왔습니다.  전염병이니까 가족 외에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택이 교회와 붙어 있기 때문에 새끼줄을 치면 아무도 교회에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사에게 전도사님이 말했습니다.  “내 아내는 장티푸스환자가 아니고 감기가 심하게 든 것이니 3일 정도 지나면 나을 것이요”  순사가 좋다고 했습니다.  3일을 지나도 환자가 일어나지 못하면 장티푸스니까 예배당을 불질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기가 막힙니다.  예배당에 들어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거짓말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바꿔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사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사모님은 3일 후 일어나서 식사준비를 했습니다.  예배당을 불태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사정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부족을 채워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내게 건강이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내게 물질이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나 이방인과 같이 구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탐욕을 구합니다.  정욕을 구합니다.  우상숭배를 위하여 물질을 구합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사람의 입에서 자꾸 불평이 나오면 안됩니다.  원망이 있으면 안됩니다.  남의 탓하면 안됩니다.  거기는 아무런 해결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벌써 주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적은 것을 가져도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것을 주십니다.  촛불에 감사하면 별빛을 주십니다.  별빛에 감사하면 달빛을 주십니다.  달빛에 감사하면 햇빛을 주십니다.  햇빛에 감사하면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작품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어느 날 한 천사를 불러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어느 산골에 살고 있는 여인의 영혼을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심부름을 갔던 그 천사는 혼자서 올라 왔습니다.  “어찌하여 혼자 왔느냐?”  하나님은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머뭇거리며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 여인의 집에 갔더니 그 집안 형편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은 엊그저께 숲속에서 나무에 깔려 죽었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쌍둥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을 데려오면 갓난아이들은 누가 양육합니까?  그래서 데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다시 그 천사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는 속히 가서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너라.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깨닫기 전에는 하늘 나라에 올 생각을 하지 말아라”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산골로 내려가 여인의 영혼을 빼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천사의 두 날개가 떨어져나가고 말았습니다.  하늘로 갈 수 없게 된 천사는 어떤 가난한 구두장이의 집에 들어가 구두 만드는 일을 도와주며 살았습니다.  천사를 구두직공으로 둔 그 구두방은 번창했고 손님도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부인이 대 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예쁜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구둣가게에 왔습니다.  천사가 보니 6년 전 자신이 영혼을 데리고 간 엄마의 아이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천사는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어머니입니까?”  그러자 부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6년 전의 일인데, 이 아이들 아버지가 숲 속에서 나무에 깔려 죽고 아이들 어머니까지 아기를 낳고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젖먹이 아기를 기르고 있던 사람은 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갓난아이들을 제게 부탁했었습니다.”  “오!”  천사의 입에서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부인의 말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 그만 제가 낳은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 아이들이 나의 아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천사는 그때에야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을 걱정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누구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구나.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구나!”  이때 그 천사는 날개가 다시 돋아나 천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두 번째 인간의 염려는 내일 문제입니다.  장래문제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내일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면 오늘 일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날 겪는 일만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고통이란 염려 때문에 더 힘듭니다.  병이 났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죽을까싶어서 힘든 것입니다.  또 그 병이 죄 값인 줄 생각하고 더 괴로운 것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픈 것으로, 추우면 추운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거기에 신세한탄까지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신앙인이 가질 태도가 아닙니다.  병이 났다가 못 고치면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천당 갑니다.  두려워 떨면 안됩니다.

  어떤 장로님이 중병이 들어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죽을까봐 너무 두려워 벌벌 떱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읽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는지 못 얻을는지 모르고 심판에 이를는지 안 이를는지 모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는지 안 옮길는지 모르느니라”

  그러자 다 죽어가던 장로님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누워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면서 “목사님!  일점 일획이 변할 수 없는 성경을 왜 틀리게 읽습니까?”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목사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장로님!, 이 말씀을 알고, 믿으시면서 왜 그렇게 벌벌 떠십니까?”했다고 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입니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것입니다.  내일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삽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천당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하루가 성실하면 천당에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십시오.  이 날만이 나의 날입니다.


  셋째, 우리 믿는 사람이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본문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란 처음 할 일을 말합니다.  일을 할 때도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 할 일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할 일은 건져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공호흡이 필요합니다.  마른 옷을 준비하는 문제는 다음입니다. 

  인간은 영의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먼저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의 일도 채워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입니다.  낙원입니다.  거기에는 의만 있습니다.  평안과 희락과 기쁨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생입니다.  누가 이 나라를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이 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딤전 2장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한복음 6장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서 9장에 보면 바울 사도의 충격적인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니 내게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경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큰 근심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민족을 통하여 오셨지만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근심과 고통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지옥에 간다 하더라도 민족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진실한 고민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고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옥에 보내어서는 절대 안될 여러분의 가족은 없습니까?  그 사람의 구원을 내일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심각한 고민을 해보셨습니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어느 보험회사 직원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보험가입을 권했습니다. 
  “그래, 생명보험에 가입하면 내가 죽지 않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돌아가신 후 가족들이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내 생명과는 관계가 없구만!”  했습니다.  그래도 자꾸 가입하라고 권하니까 할아버지는 그 직원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보험에 들어줄테니 자네도 내가 말하는 진짜 생명보험에 들게”
  보험회사 직원은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진짜 생명보험이라니요? 그게 어떤 것인데요?”  “하늘 나라 생명보험말일세”하며 복음을 증거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고난 당함을 기억하면서 주의 성찬에 동참할 것입니다.  주의 몸이 찢기심을 기억하며 떡을 들고, 주님의 피 흘리심을 기억하며 잔을 들것입니다. 
  이 예식은 우리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행하셨습니다.  그런 후 주님은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살이 찢겼습니다.  피를 흘리셨습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손과 발로 지은 죄 때문에 손과 발에 못이 박혔습니다.  피를 흘리셨습니다.  옆구리에 창으로 찔림 받아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주님의 피만이 나의 죄,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피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내 죄가 깨끗해집니다.  속죄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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