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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양식 (요 4: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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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양식 (요한복음 4:27-38)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코드(Code)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코드가 맞다.’ ‘코드가 맞지 않다.’ 하는 말들을 많이 씁니다. 사고방식이나 추구하는 목표에 있어서 같은 생각이나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을 때에 ‘코드가 맞다’고 하기도 하고, ‘코드가 맞지 않다’는 말을 씁니다.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기 위하여서 애쓰는 정치가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과 코드가 맞지 않은 경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말하기를 “장성한 사람이 어떻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니고데모는 육신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참으로 코드가 맞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고,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자가 귀가 번쩍 했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도 주사 목마르지도 않게 하고, 또 이 더운 낮 12시에 물 길러오는 번거로움도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물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 사마리아 여자는 육신적인 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때는 제 6시입니다. 유대나라의 시간을 우리시간으로 계산하려고 하면 6시간을 더하면 됩니다. 제 6시니까 우리시간으로는 12시입니다. 12시가 뭐하는 시간입니까? 밥 먹는 시간, 점심시간입니다.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시장했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우물가에서 쉬고 계시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예수님은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물 길러 온 것도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사마리아성에 뛰어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다.”하면서 예수님을 전하여서 사마리아성에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음식을 준비해가지고 왔습니다. “선생님, 점심 드시지요.”하면서 음식을 권했더니, 예수님께서 기쁘게 음식을 잡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아! 우리가 없을 때에 누군가가 와서 예수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예수님께서 우리가 드리지 않은 다른 식사를 드셨는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코드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양식에 대해서 다시 제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의 뜻이 뭡니까? 34절에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사마리아 여인의 구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35절에 있는 것처럼 영혼을 추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한번 찾아볼까요?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40절까지 우리가 한번 찾아서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40절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뭐라고요? 예수님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는 것, 구원 얻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이 또 뭐라고요? ‘예수님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코드를 맞춘 삶이었습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온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예수님의 교훈 한마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말씀하시는 그것을 그대로 전달한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내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삶의 코드를 예수님께 맞추어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믿는 사람이고, 바로 그런 사람이 <양식>을 제대로 먹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양식

그리스도인의 양식은 크게 나누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양식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땅에서 왔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쌀과 보리를 먹고, 땅에서 나는 물을 마시면서 삽니다. 그러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먹고 살다가 하나님에게 갑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그 많은 물 가운데 있으면서 바닷물을 마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땅에서 갔기 때문에 물도 땅에서 가지고 가고요, 땅에서 나는 모든 음식을 가지고 먹고 일을 하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먹어야만 우리의 영혼이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어서 건강한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님의 몸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6장 48절에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51절에 보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성찬이 곧 우리의 양식입니다.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상징하는 성찬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양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하는 네 차례의 성찬식에 빠지지 말고, 성찬에 참여하여서 꼭 우리가 영적인 양식을 풍성하게 먹어야 되겠습니다.

셋째로는 오늘 본문 34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인 영혼을 구원하는 것, 영혼을 추수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양식인 것입니다. 양식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물도 마시지 않고는 10일을 살기가 힘듭니다. 제 아무리 힘센 천하장사라도 10일쯤 굶고 나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자라지 않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그만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여서 말씀을 먹고, 교회에서 하는 성찬식에 꼭 참여하여서 영혼의 양식을 우리가 먹고, 또 복음을 전하여서 영혼을 추수함으로 하나님의 양식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영혼이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unicef)의 통계에 의하면 지구상에는 1억 5천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에 걸려있고, 1년에 1천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굶어서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북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수년전에는 1년에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와 같이 기근과 굶주림이 있지만 영적인 세계는 더 비참한 굶주림이 있습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은 많지만 양식을 먹지 않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 성찬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영혼을 구원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양식을 먹지 못하여 굶주려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세상에서 패배하는 삶을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먹어서 건강한 영혼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양식의 기능

양식의 기능이 뭡니까? 양식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부모세대는 보릿고개가 있어서 어려운 때를 지나왔기 때문에 잘 먹지를 못해서 키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보세요. 얼마나 잘 먹고 잘 먹였는지, 평균 신장이 몇 십 년 전보다도 10㎝이상 커졌습니다.
먹으면 이렇게 잘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양식을 먹어야 성장합니다. 내 영혼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양식을 먹지 않기 때문임을 알고, ‘내가 왜 영혼이 이렇게 자라지 않을까? 10년 전의 내 신앙과 지금 신앙이 꼭 같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양식을 많이 먹어서 날마다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식은 또한 기쁨을 줍니다. 먹는 재미가 보통 재미가 아닙니다. 금식을 해보세요. 영혼은 기쁘고 은혜를 받지만, 육신적인 기쁨은 없어요. 왜 영적인 기쁨이 없는 줄 아십니까? 양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잔칫집에 가면 기쁩니다. 노래가 있습니다. 마음이 푸근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살이 찐 사람은 마음도 푸근합니다.

안 먹으면 신경질이 나고, 안 먹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다른 사람의 조그만 건드림에도 화를 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먹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먹기 때문에, 영혼을 구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쁨이 없지, 정말 하나님 말씀 따라서 하나님 뜻을 따라서 영혼을 구원해 보세요. 거기에 진정한 기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식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몇 일만 굶어보세요. 다리가 떨립니다. 천하장사라도 안 먹으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양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어요. 조그만한 마귀의 시험에도 넘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먹지 않아서, 힘이 없어서, 세상을 향해서 힘을 쓸 수가 없고 사탄을 이길, 세상의 죄악을 이길 힘을 상실해 버릴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어서, 또 복음을 전하여서, 영혼의 양식을 많이 먹어서, 정말 건강해서, 힘을 써서, 어떤 시험과 유혹에도 넉넉하게 승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식은 생명을 줍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40일이고, 50일이고 계속해서 안 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 먹으면 결국 죽게 되어집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먹지 아니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자라게 하고, 기쁨을 주고, 생명을 주는 양식이 뭐라고요?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양식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뜻이 뭐냐?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 오늘 본문에는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밥 한 그릇을 잡숫는 것보다도 더 힘이 나고 더 건강해지고 더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 그 뜻을 행하는 것이 영혼구원인데, 영혼을 구원하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양식이고, 우리의 양식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추수가 나의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교회 모든 조직이 왜 있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건강주시고, 물질주시고, 재능주시고, 우리의 삶을 터전을 주신 이유가 뭡니까? 이 삶의 모든 것을 다 활용해서 영혼을 구원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입니다.
이 영혼구원의 양식을 먹어서 나의 영혼이 건강하고, 나의 영혼이 자라고, 나의 영혼이 기쁨이 넘치고, 나의 영혼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양식 우리의 양식

영혼구원, 영혼추수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믿어 영생얻게 하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예수님의 먹을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양식이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양식을 먹어서 우리의 영혼이 튼튼하고, 건강하고, 기쁨이 넘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단순히 우리가 구원받아서 천국가게 하는 이것이 우리를 구원한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그것만 목적이라고 하면  예수 믿는 족족 다 천국 데려갈 것 아닙니까? 왜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그대로 살게 할 것입니까? 또 다른 목적,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 믿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또 다른 제자를 삼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여서 영혼을 인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혼을 인도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고 세례를 주어서 예수님의 삶을 닮은 또 다른 제자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뭐하는 곳입니까? 교회의 여러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이 친교하는 곳입니다. 교육하는 곳입니다. 천국가기 위한 신부화장하는 곳입니다. 또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많이 있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고 하면, 그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하면, 교회는 뭐하는 곳이냐?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주가 되어집니다. 이것 한 가지만 해나가면 다른 것 다 거기에 따라서 제대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교회의 조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가 갖지 못하는 여러 가지 기관들이 있는데, 모자원이 있습니다. 유치원이 있습니다. 신협이 있습니다. 모자원, 유치원, 신협이 그 고유한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관들도, 모자원도 영혼구원을 위해서, 유치원도 영혼구원을 위해서, 신협도 영혼구원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당회가 있습니다. 당회가 당회를 위해서 조직된 것이 아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당회가 조직되어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제직회가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권찰회가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전도회가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안수집사회가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권사회가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구역이 있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모든 조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고 하면, 영혼구원하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서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그 코드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지지 아니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코드를 맞추어 나가면 거기에 온갖 행복과 온갖 축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코드를 맞추어 나갈 수 있는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이 일에 힘써 왔지만, 이제 남은 생애, 금년 이 가을, 모든 만물이 다 열매를 맺어서 추수하는 이 계절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영혼구원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1서 2장에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아이, 청년, 아비, 그런 말들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아이입니까?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아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누구냐? 악한 자를 이긴 자. 다시 말해서 죄를 이긴 자, 죄에서 승리한 자, 이런 사람을 청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가 아비입니까? 자식을 낳아서 길러본 사람이 아비입니다. 아무리 오래 예수를 믿어도 영혼을 낳아서 키워보지 못한 자는 아직도 어린아이입니다. 신앙의 어린아이요, 청년입니다.

영혼을 낳아서 양육할 때 자기의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혼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애써보고 기도해보고 자식을 위해서 먹여보고 가르쳐보고 하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자식이 자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란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입니까? 아직도 어린아이입니까? 아직도 청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영혼을 전도하여서 키워보는 아비와 어미의 위치에까지 올라가 있습니까? 이제 영혼의 양식인 영혼을 추수하여서 아비의 자리까지 이르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식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 먹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의 양식인 영혼을 추수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건강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기쁨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영혼을 구원해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이 추수의 계절에 영혼을 추수 한번 해보리라’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해서 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비된 영혼을 우리에게 붙여주실 줄 믿습니다.

4. 추수의 원칙

오늘 본문 후반부에는 다섯 가지 추수에 대한 원칙이 나와 있습니다. 38절에 보면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노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낸다. 예수님의 보냄을 받아서 추수하기 위해서 가면 예수님께서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안 가서 그렇지, 영혼을 준비해놓고 주님은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구원할 영혼들, 가야 할 영혼들, 생각나고 또한 마음에 와 닿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향해서 나가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기 전에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손을 보아 놓습니다.

두 번째로는 영혼구원은 나 혼자의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선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전도자를 통해서 이미 씨를 뿌려 놓았어요. 우리는 가서 거두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씨를 뿌리고 내가 안 거두어도 마음 상해하거나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뿌린 것을 나는 거두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거둘 수가 있습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뿌린 것을 내가 거둘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많이 뿌려놓기만 하면 언젠가는 우리가 뿌린 것만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영성훈련 때에 한 분이 귀한 간증을 했습니다. 그 분은 불교에 굉장히 심취되었던 분인데, 대신동에 살면서 주변에 우리교회 장로님이 계셔서 장로님 가정이 자기를 볼 때마다 “교회 갑시다. 교회 갑시다.”하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들었지만 교회에 나오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잘 아시는 분의 가정에 한번 들를 일이 있었는데, 가보니까 부산 영락교회 카렌다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당신 교회 나가느냐”고 하니까 “교회 나간다”고 하며 “당신도 한번 교회 나와 볼 수 있겠느냐”고 해서 따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씨를 뿌렸느냐? 장로님이 씨를 뿌렸어요. 근데 거두기는 누가 거뒀느냐? 집사님이 거두었어요. 그렇게 교회 나오기 시작해서 신앙생활 하는데 1년이 넘었습니다. 간증하면서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딱 한번 교회에 빠졌지, 계속해서 교회 나오다가 영성훈련에 참여해서 가정이 완전히 새롭게 회복되었노라고 얼마나 귀한 간증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내가 뿌릴 때에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세요. 누군가가 거두게 될 것이고, 내가 지금 전도해서 거두면 내가 말 잘해서 내가 설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씨를 뿌려 놓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내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씨를 뿌리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두게 하실 줄 믿습니다.

36절에 보면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고>라고 했습니다. 추수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구두쇠라도 삯을 아끼지 않습니다. 추수 때는 더 많이 줍니다. 공짜로 일 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혼을 추수하는 추수꾼들에게 공짜로 일을 시키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내가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일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사업과 내 가정과 내 자녀를 일으켜 축복해 주셨노라”고 동일한 간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역사를 보세요. 선교를 하는 나라의 순서를 따라서 세계적으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영혼을 추수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영육간의 삶을 넘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의 축복은 맛보기에 지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에서 다섯 고을, 열 고을을 다스리며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6절에 보면 <거두는 자는 뿌리는 자와 함께 즐거워 한다>고 했습니다. 자식 낳아보세요. 얼마나 기쁩니까? 어느 사람이 밤 12시나 되어가지고 아기를 낳았는데, 너무 좋아서 밤 12시에 막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친척에게 전화를 하는데, 자기는 기뻐서 전화를 하는데 받는 사람은 그렇게 기쁘게 받지는 않더라는 거예요. 자식을 낳아 본  사람은 그런 기쁨에 있어서 남 생각하지 아니하고 밤 12시라도 전화를 해서 그 기쁨을 전달할 만큼 기뻐합니다.
영혼을 구원해 보세요. 영혼을 건져보세요. 마음에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이 없습니까? 신앙생활에 재미가 없습니까? 전도해서 영혼을 추수해 보세요. 마음에  놀라운 기쁨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5절에 보면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추수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 중, 외국사람들도 아는 ‘빨리빨리’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게 사실을 추수밭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추수는 얼마나 단기간에 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보리를 추수할 때 며칠 넘겨버려서 우기(雨期)를 만나게 되면 보리가 싹이 납니다. 곰팡이가 피어요. 그렇기 때문에 볕이 날 그 시간에 빨리 추수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보리가 썩지 않습니다. 보리를 추수하고 난 다음에 또 느긋하게 있을 수 있습니까? 바로 논을 갈아서 벼를 심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가을에 추수가 되어집니다.

가을 추수하고 난 다음에 벼를 추수하고 난 다음에 또 느긋하게 지낼 수 있습니까? 바로 보리를 파종해야만 다음 해에 또 보리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때는 좀 느긋하지만 추수기에는 얼마나 농부가 바쁜지 몰라요. 그래서 ‘빨리빨리’하는 말이 거기서 나온 거예요.
기회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놓쳐 버리고 나면 농사 거둘 것이 없어요. 추수의 시기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추수할 기회도 많지 않지만, 또 추수될 영혼들도 언제나 기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가, 내 이웃이, 내 친구가 항상 내가 복음을 전하고 추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회 있을 때에 추수하라 이 말입니다.

금년 추수기에 우리가 적어도 한 3명 정도의 영혼을 위하여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영혼들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마음에 떠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꿈에라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않았는데 길가다가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여서 복음을 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누군가가 뿌려놓은 영혼을 거두는 기쁨을 우리가 누리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욱 더 건강한 영혼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육적인 양식만 먹지 말고, 밥만 먹지 말고, 밥 먹으면서 영혼의 양식은 먹었는가? 영혼을 구원하여서 영혼을 구원하는 양식을 내가 먹었는가?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면서, ‘다시 내가 복음을 전해야지.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지’ 그렇게 결심해 보세요. 육신의 밥을 먹을 때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을 양식으로 삼았는데, 나도 이 양식을 먹고 살아야 되겠다’고 우리 자신들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여서 영적인 양식을 잘 먹어서 건강하고 성장하고 기쁨이 넘치고 생명이 넘치되 더 풍성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수의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산야(山野)의 이름모를 풀 한 포기까지 다 나름대로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열매들을 우리가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영혼을 추수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의 영혼은 더욱 더 양식을 많이 먹어서 건강한 영혼이 되어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마음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코드에 자기의 코드를 맞추었습니다. 우리들도 내 뜻대로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예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이것이 성도의 삶인데,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뭡니까?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예수님의 그 코드에 우리의 삶을 맞추어서 살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양식을 먹은 영혼처럼 더욱 더 건강하고 더 성장하고 기쁨이 넘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정치가들이 아부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코드에 ,예수님의 코드에 영혼구원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되 금년 가을에 꼭 이 코드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고 우리의 영혼이 더욱 더 건강해져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영육 간에 누릴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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