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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고난 / 벧전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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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난
벧전 2:18-25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1. 역설의 체험

금번 태풍 "매미"로 인하여 영남 지역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약 백여 명이 실종 내지 사망하고,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들과 도로들, 그리고 농작물을 비롯한 재산 피해는 이전 어떤 태풍보다도 더 큰 피해를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금요일 밤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복개천이 넘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는 부교역자들과 젊은 집사님들을 연락하여 지하실 집기들을 옮기도록 했는데, 곧장 넘쳐버렸고 거의 손쓸 틈 없이 지하와 1층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예배당 종탑의 함석 철판이 찢어져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모습이었습니다. (월요일 오전 일찍 종탑을 철거하게 될 것입니다) 

토요일 연락을 받고는 많은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남녀노소 물론하고 손에 걸래와 여러 장비들을 들고는 청소를 해내는데,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날 정도였던 모습들이 하나 둘 제 자리를 찾아가는데, 모두들 흙탕으로 온 몸이 뒤범벅되었지만, 웃으며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방송실에서 현장을 녹화하여 담아두려고 직원이 카메라를 가지고 쫓아다니다가, 저를 보고는 한 말씀하라길래 즉석 소감문을 낭송했습니다.

. . .  이런 상황이 슬프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괜히 즐거웠습니다. 까닭은 자기 집처럼 자기 일처럼 여기고 달려들어 봉사하시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그리고 많은 수고를 하도록 했지만, 이 기회가 바로 교회 사랑을 실천하며 훈련받는 기회가 되다면, 잃어버린 많은 것들보다 얻어진 것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2. 아름다운 고난

오늘 설교 본문에도 베드로 사도 역시 매우 역설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로 표현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우리 가운데는 "하나님 의식"(conscious of God)이 매우 강한 분들이 있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실패도 성공도 모두 먼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과 실패는 소망으로, 기쁨과 성공은 겸손으로 자기 행동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더불어 고난을 당할 때도, 그것이 애매한 고난 즉 정당하지 않은 고통 중에서도, 화를 내거나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20절)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능동적인 태도에서,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그것은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선을 행하는데 열심인 분들이 많습니다. 자원 봉사자로써, 혹은 맡겨진 중한 직분에서 일하다가, 오히려 그 일이 고난의 불씨가 될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섬기는 아름다운 분들이 많습니다.

과거 70년대 우리 나라가 고도 성장을 이루어 갈 때, 노동자들의 일터가 매우 열악했었습니다. 그 때 동료들의 노동 현장 개선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했던 전 태일 씨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 제목이 "아름다운 청년 전 태일"이라고 붙였습니다. 

우리 중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자는 그가 아무리 멋있는 옷을 입고 화려한 화장을 해도 아무도 그에게 존경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를 두고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서 이웃을 위하고 대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비록 그가 작고 못생기고, 옷을 화려하게 입지 않아도, 세상은 그에게 존경을 보냅니다. 그에게 박수를 쳐드립니다.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불러줍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기를 소망합니다.

3.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앞에 참으로 아름다운 한 모델을 세우시고 보여주십니다. 그 분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21-24절)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살아가면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의 몇 가지를 정리해봅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그 입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22-23a)

거짓말, 욕, 그리고 협박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고난은 입을 참는 고난입니다. 이 만한 고난도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말에 관하여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약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그래서 야고보는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 3:2b)고 했습니다.

둘째는 마음의 억울함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겸손의 아름다움입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23c)

자기가 다 해결하려는 교만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때때로 이 땅에서 다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애매히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내가 다 해결해보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것은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이요, 도리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도 있습니다.

묵묵히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시편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시 73:1-5)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16-19절)
 
셋째는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 고난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24절)

아름다운 사람은 남을 살리려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자기를 죽인다 함은 자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포기함의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시어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4. 마무리하며

오늘 우리 사회엔 꽃미남도 많고 미스 코리아도 많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적습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은 곧 아름다운 고난을 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 중 고난 당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때문에 겪는 못난 고난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아름다운 고난을 찾을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런 아름다운 고난을 보여줍시다. 그러면 세상이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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