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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 / 욥1: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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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
본문 : 욥1:13-21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고, 스스로는 행복한 존재가 되며, 다른 사람을 살리는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나 자신은 행복하며,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창조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분 좋으면 감사하고 기분 나쁘면 불평하고,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되면 불평하고, 자기 뜻대로 되면 감사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불평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므로 어떤 환경과,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합니다.

"마라벨 몰간"은 그의 저서 "진정한 기쁨"에서 진정한 기쁨을 아는 자는 네 가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생존의 기쁨이요, 둘째는 주는 자로서의 기쁨이요, 셋째는 사랑하는 자의 기쁨이요, 넷째는 생활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지 못한 채 기쁨을 잊어버리고 내 생활 전체 중 25%의 삶만 억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위의 네 가지 기쁨만 알고 누린다고 하면 100%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감사를 알고 행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삶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감사를 가지고 세상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고, 스스로는 행복한 존재가 되며, 다른 사람을 살리는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나 자신은 행복하며,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창조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분 좋으면 감사하고 기분 나쁘면 불평하고,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되면 불평하고, 자기 뜻대로 되면 감사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불평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므로 어떤 환경과,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합니다.

"마라벨 몰간"은 그의 저서 "진정한 기쁨"에서 진정한 기쁨을 아는 자는 네 가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생존의 기쁨이요, 둘째는 주는 자로서의 기쁨이요, 셋째는 사랑하는 자의 기쁨이요, 넷째는 생활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지 못한 채 기쁨을 잊어버리고 내 생활 전체 중 25%의 삶만 억지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위의 네 가지 기쁨만 알고 누린다고 하면 100%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감사를 알고 행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삶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감사를 가지고 세상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욥은 가장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천천 만금이 있어도 없어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열 자녀들이 있었고 자기 가족, 형제들 종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렸어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정들어 살던 집이 무너졌어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았던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단이 헤집고 다니며 역사를 해도 믿음 잃지 않고 기뻐하고 감사했던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한 기자가 "버나드 쇼"를 찾아가 "세계의 모든 책이 전부 불타버려도 남아 있어야 할 책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는“성경 중에 욥기라 생각합니다. 그는 가난해도 병들어도 자식을 잃어버려도 아내가 배반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을 보면, 환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도하는 신앙이 바로 욥이었습니다. 욥은 큰 부자였고 세력도 있었고 자손도 많았고 종도 많았고 다복한 가정에 신앙생활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스바사람이 갑자기 쳐들어와 밭을 갈고 풀을 뜯는 소와 나귀를 뺏어가고 종사하던 종들이 떼죽음 당했으며 갈대아 사람이 와서 약대를 빼앗고 종들을 죽였으며 거친 들에서 태풍이 불어 형제들이 한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집이 무너져 몰사를 했습니다. 동, 서, 남, 북 사방에서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숨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이 닥치면 기쁨과 감사를 가질까요? 찬송할 때를 찾아 기다려보세요, 찬송 할 수 없습니다. 기뻐할 일 있어야지 하고 기다리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감사 할 일 기다리고 감사하려고 하면 두 배로 고통이 찾아옵니다. 감사 할 수 없을 때 때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주신자도 여호와 취하신자도 여호와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자니이다".

욥은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도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비방을 받고 삽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끝까지 견지하게 되면 감사의 조건이 나타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참아낼 수 있지만 진정 견딜 수 없는 비난은 아내가 하는 비난이라고 합니다. 아내라고 하는 존재는 신기한 존재입니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못 살 것같은 존재가 아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잠언 14장 1절에“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했습니다. 현숙한 아내를 가진 남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내는 좋은 말 친구가 되고, 동반자가 되고, 애인이 되고, 요리사가 되고, 세탁사가 되고, 친구가 됩니다. 일곱 종류의 아내가 있다고 합니다. 살기가 등등한 아내, 음침한 아내, 주인 같은 아내,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동생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아내, 순종하는 아내. 욥은 분명 신앙 좋은 아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자가 한 사람 있다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내, 엘레나 루스벨트 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스무 살 때 루스벨트와 결혼을 했습니다. 젊고 패기 있고, 장래성 있는 신랑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관절염에 걸려 다리가 말라버리는 불행에 직면케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쇠붙이를 다리에 꽂고, 다리를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스벨트가 자기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불구자가 되었는데도,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합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아내가 대답하기를, “그럼 내가 그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한 줄 알아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다리가 아니라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삶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리 불구가 된 루스벨트는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던 그는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1932년 다리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4년 만에 재선이 되고, 또 4년 후 3선이 되고, 미국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누구의 덕분입니까? 격려해주고, 사랑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아내의 내조였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을 격려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상에 대해 비웃기가 쉽고, 상대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기가 쉽습니다. 남편을 낙담시키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세상은 낙담시키는 자들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잿더미에 앉아서 기왓장을 가지고 그 가려운 상처를 긁고 있었을 때에, 아내가 와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지만 그러한 아내의 비방에도 조금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욥이었습니다.

또한 욥은 친구의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기 4장 7절에 보면, 친구들이 와서, 가장 친하다는 친구들이 와서, 욥을 못살게 굽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그렇게 친하다는 친구들이 와서 격려는 안 해주고, 용기는 북돋아주지는 않고, ‘네가 죄졌기 때문에 너의 10남매가 몰살했고, 재산이 다 날라갔다’ 고 했습니다. 잠언 18장 24절에,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장 17절)

오늘 여러분의 친구가 여러분의 얼굴을 빛나게 합니까? 욥은 친구가 그렇게 자기를 못 살게 구는데도 한 치도 신앙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친구란 당신의 과거를 이해해 주고, 당신의 미래를 믿어주며, 현실 속의 당신을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참된 친구라고 했습니다. 친구란 당신이 멈췄을 때 밀어주고, 당신이 슬퍼할 때 달래주고, 당신이 잃었을 때 인도하며, 당신이 기쁠 때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대가 산꼭대기에 있을 때 즐거이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자요, 그대가 골짜기를 해맬 때 조용히 같이 걷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욥은 절대 순종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욥기 1장 20절에 “겉옷을 찢고 - 엎드려 경배하며” 22절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함이요, 사람의 시험은 자기의 욕심에 미혹됨이요,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재물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욥은 자기 가지고 있는 재산이 다 날라 갔는데도 신앙이 흔들리질 않았습니다.

베이컨은‘자기 주머니 속의 작은 돈이 다른 사람 주머니 속에 거금보다 낫다.’고 했습니다.‘돈은 비료 같아서 사용치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재물이 신앙의 거침돌이 되는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베어하우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인분과 같고 거름과 같아서, 주위에 잘 뿌려지면 거름처럼 세상에 유익을 주지만, 차곡차곡 쌓아 올려 가면 하늘까지 악취가 풍긴다”. 세상은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느냐를 물어보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세상의 관심은 받는 데 있지만, 그리스도의 관심은 주는 데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손에 쥔 것이 얼마인지 묻지만, 성경은 남에게 나누어 준 것이 얼마인지 물어봅니다. 돈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만족을 얻는 수단이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통로라고 했습니다.

욥은 자녀가 다 죽었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태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자녀들 위에 무너짐으로 그들이 죽었나이다!’사실 자녀는 재물보다 더 귀합니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벽밥에, 도시락 두 개씩 싸 주고, 자식이 대학을 붙고 봐야 되겠다는 것이 어머니의 절대적인 신념입니다. 그래서 누가 말하기를 ‘남자는 기계를 만들고, 어머니는 사람을 만든다.’고 그랬습니다.

욥인들 어찌 10남매의 자녀가 하루아침에 죽었는데, 눈물이 없겠습니까? 애지중지 키웠던 그 아이들에게 장래 소망도 걸었을 것입니다. 욥은 머리끝에서부터 발꿈치까지 부스럼과 종기로 앓고 있었지만, 그것도 그를 흔들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지만은 자기의 신앙에 흔들림은 없었습니다.

욥의 감사는 믿음마다 나오는 지극한 감사였다

욥의 감사는 정말 감사 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진실한 감사였습니다. 지극한 믿음의 감사였습니다. 욥의 믿음은 이것이 사단이 만든 일도 아니요, 이웃나라 백성들이 만든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로서 난 줄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 줄로 믿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슬픈 마음이 사라집니다. 억울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셨을 때 내가 받았고 하나님이 도로 회수 하셨을 때에 되돌려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입니다. 참 즐거울 때나 또 슬플 때나 주님만 믿고 늘 살아가야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감사는커녕 원망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지극하고도 말할 수 없는 은혜 때문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믿음의 감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평안하고 행복할 때 방종하지 않았다

그가 어려움 당하지 않고 평안하고 행복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감사의 훈련을 잘 쌓았습니다. 나태하거나 게으르고 방종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이 효도합니다. 생일 때마다 열 자녀가 모여서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욥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이 기쁘셔야 할 텐데. "하나님이 이렇게 귀한 자식들 주신 것 감사합니다. 믿음 생활 잘하게 하시고 효도하는 자녀들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자식을 불러다 자녀수대로 짐승 잡아 번제를 드리며 성결케 했습니다. 자신과 자녀들이 행여나 하나님 주신 은혜를 배신하고 배은망덕하며 감사치 못하는 자가 될까하여 늘 가르치며 감사를 실천했습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지극한 감사를 드리면서 평안하고 행복할 때 게으르고 나태하고 방종하지 마시고 감사로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의미 없는 고난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 없이 훈련시키질 않으십니다. 누에고치에서 나방이 나올 때 쉽게 나오도록 칼로 누에고치를 찢어주면 나방은 쉽게 나오지만 날지 못하고 얼마 있지 않아 죽어버립니다. 살리려 함이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스스로 죽을 힘을 다해 누에고치를 뚫고 나와야 그때 강화된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라는 누에고치, 질병이라는 누에고치, 고난이라고 하는 누에고치 속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의 검으로, 쭉~ 찢어 쉽게 해결되도록 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영적으로 세워지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때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야속하다 매정하다' 말하지만 지나고 보면 쉽게 해결 안 됨이, 더 큰 은혜였음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거절하심이 응답이며, 무정하심이 사랑이며 막으심이 열으심이며, 버려두심이 품으심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무기력 증에 빠져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환난 중에 있을 때 부흥이 안 될 때, 질병 가운데 있을 때 그냥 기도만 한다고 하며, 그냥 주만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문제의 해결이나, 부흥이나, 질병의 치유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빈다. 그것을 맡기는 신령한 믿음이라고 착각합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며, 관념이 아니라 치열한 전쟁입니다. 둥지를 떠난 어린 새들이나 고치를 빠져 나온 나방들은 필사적으로 날개 짓을 합니다. 그들의 날개 짓은 장난이나 놀이가 아니고 생존의 문제입니다. 기도는 장난이 아니며 놀이 또한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의 날개 짓을 하나님께 선명히 보여 드려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고 왜, 우리의 처절한 기도에 침묵하시는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력으로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 발버둥, 필사의 날개 짓을 해서 창공을 뚫고 올라가 날으라는 뜻입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날개 짓이 약이며 답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대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도 가만히 계십니다. 죽을 힘을 다해 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로 날개 짓을 하는 것만이 대책입니다.

무기력 증, 기도의 패배주의 그것은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비밀병기입니다. 신앙은 씨름이며 전쟁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무슨 씨름을 하며 가만히 앉아서 무슨 전쟁을 치루겠습니까? 이젠 좀 강해져야합니다. 약해질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강하지 못하면 사단에게 삼켜버림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하게 안주하는 것을 못 보십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풍랑과 절망까지도 지치게 할 강한 용사로 만드시려 하심이 고난의 목적입니다. 둥지에서 무슨 날개 짓을 하겠습니까? 등 따습고 배부른데 어떻게 죽을 힘을 다해 기도의 날개 짓을 하겠습니까? 날개 짓은 낭떨어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 응답의 손은 낭떠러지 밑바닥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빨리 떨어지라. 빨리 둥지를 떠나라. 빨리 기도의 날개 짓으로 날아올라라. 전쟁의 우연한 승리는 없다. 훈련받은 만큼, 땀 흘린 만큼 승리하는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기도의 날개 짓, 끈기의 날개 짓, 실력의 날개 짓만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자원이 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여러분의 마음도 터지지만 고난 중에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운명을 바꾼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로 받을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물질을 드릴 때 헌금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로 노래를 부를 때 찬양이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사랑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아직 그의 것이 아니다."

돈 벌어놓고 감사하지 않으면 그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식은 자식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하늘이 내린 보화가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소중하고 감사할 때 내 조국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 교회에 오게 되었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좋은 목회자를 만나게 되었나. 너무 감사하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하늘이 쏟아낸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운명을 바꿉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합니다. 하나님께 축제로 예배하게 합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나에게는 행복이요, 내 이웃들을 살려주는 감사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으므로 천국이요, 감옥은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탄식과, 후회가 있으므로 지옥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가정에서 살지만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가정은 지옥이요, 감사와, 찬송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천국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감옥 같은 심령을 천국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를 유혹에서 막아 주고, 의혹에 답해 주며, 상황을 견디도록 한다” (에드워드 레이놀즈)고 합니다. 욥은 지독한 시험을 당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대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불행은 더욱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리하던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안식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고난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 태풍‘매미’로 많은 분이 수해를 당했습니다. 125명의 엄청난 인명과 수조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태풍 피해를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민망합니다. 복구에만 15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따뜻한 마음까지도 그 긴 기간에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제 빨리 우리 모두 온 힘을 합쳐 일어서길 기원합니다. 다시금 수해를 당하지 않게 대책을 강구하고 이른 시일 내에 회복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누구의 잘못과 누구의 탓이라기보다 그 현장과 그 안타까운 눈물을 서로 씻어주고 서로 도우며 서로에게 희망이 되길 원합니다. 분열된 이 나라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도록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당분간 당리당약과 정쟁과 분열을 멈추고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며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야 할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어 이번 수해 복구에 앞장서서 힘을 합하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펼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감사하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 부분적으로 고장 나면 내가 고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모두 전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자유가 없는 것 하나 있습니다. 교만할 자유는 없습니다. 교만하면 망하는 순간인데,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주시고자 교만하지 말라고 옆구리를 쳐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많은 것을 깨달았으면 이럴수록 겸손해야합니다. 이럴수록 욕심을 버려합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욕심 버려야 되고 망하지 않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봉사하며, 나눠주며, 위로하며 ,격려하며 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욥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자기가 세상에 나올 때 벌고 벗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신 분이 가져가시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어려울 때 감사하는 조건을 한번 찾아보세요. 넘어졌을 때 감사하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쳤을 때 감사하면 새 힘을 얻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 일어나면 다시 솟아납니다. 십자가 지면서도 감사하면 부활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사탄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께 첫 번째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감사는 무엇일까요? 환난의 상황에서 잃지 말아야 할 진정한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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