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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이름을 내자 (삼상 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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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내자
삼상 15:11-23

요즘 우리나라는 정년의 시기가 점차적으로 당겨짐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젊은 인력들을 쓸모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 이모저모로 철저하게 사용하였다가 이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보통 정년의 시기가 45세를 넘기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한번 사람을 선택하시면 그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연약할 때에도, 능할 때에도, 병들 때에도, 건강할 때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와 함께하시고 그를 버리지 않고 사용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면 몇 명의 예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하나님께 선택받아 쓰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게 된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귀한 선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쓰임을 받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 받은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여 쓰실 때 몇 가지 기준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외모나 배경을 통해 사람을 선택하여 쓰시지 않습니다. 그가 잘생겼든지, 지식이 뛰어나든지, 좋은 가문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건강하든지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선택할 때에 내적인 조건보다는 외적인 조건이 잘 맞으면 그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절대로 그 사람의 과거를 묻지 않고 선택해주십니다. 그러나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좋은 면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탕한 사람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이 좋지만 반대로 화려한 업적을 가진 사람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면 그것은 손해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과거를 뛰어넘어 바로 지금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시고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한번 보십시오. 그 거룩해야할 족보에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와의 관계 속에 태어난 사람도 나오고, 라합과 같은 기생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윗이 다른 사람의 아내, 즉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이야기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한 자입니다.하나님 앞에 나를 드러낼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나타낼 수 있는 자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는 사울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우 겸손한 사울을 들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권력을 통해 괴팍하고 교만한 자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까?


2. 하나님 앞에 드러난 사울의 교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울의 교만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 삼상 15장 12절에 보면 기념비사건이 나옵니다. 그것은 사울이 가는데 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자 자신감에 넘쳐 자기 자신에 대한 찬양기념비를 갈멜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전쟁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울은 다만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을 뿐 하나님이 싸워 승리하신 사건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마치 자기가 전쟁에 능한 자라서 승리한 것처럼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싶은 것은 사람의 당연한 심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교만의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자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즉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드러나야 될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홍수의 멸망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 이름을 내기 위하여 쌓은 것이 바로 바벨탑입니다. 그렇습니다. 외형적으로 우리교회 공동체가 한다 해도 거기에서 사람의 이름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바벨탑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지금 드러나고 있습니까? 내가 봉사하고 헌신하는 곳에는 내 이름이 높여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하십시오! 또한 사울의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께서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사울에게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져서 아말렉의 전리품들과 가축들을 끌고 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하나님의 의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의 앞에 우리는 어떤 탐욕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은 회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사무엘에게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21)고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자기이름의 조그마한 흠집도 내기 싫어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로 떠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않고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죄를 드러내고 자기의 모든 실수를 고백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앞에 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깨닫는 자마다 비록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드러내는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겸손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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