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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 골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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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 골2:11-15


오늘 우리는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에 대한 입교예식과 성인이 되어 믿은 이들에 대한 세례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가 함께 행한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귀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 됨의 표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본문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세례의 의미를 할례의 의미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할례는 옛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표지였습니다(Cf. 창17:9-14). 물론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로서의 진정한 할례는 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는 것임은 옛 이스라엘 때부터 가르쳐진 바입니다.

신30:6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생각을 롬2:25-29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오늘 본문 11절에서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와 "육의 몸을 벗는 것"과 "그리스도의 할례"를 말하며 이것들을 세례와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지인 세례 또한 몸보다는 마음에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세례, 특히 물 속에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세례의식은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우리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즉 죄와 죽음의 노예상태에 있었던 옛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영생을 누릴 새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죽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6:6-11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또 갈6:15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했습니다. 진정한 할례란 단지 신체의 작은 일부를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끊는 것이듯이, 세례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력과 향락과 삶의 방식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나라 백성다운 삶의 목표와 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뜻하는 의식입니다.

셋째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사하심을 받고 우리의 모든 죄값이 청산되었음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3-14절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먼저 13절 끝에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했습니다. 14절에서는 그 말을 보다 눈에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서"라는 것은 본래 빚진 사실을 확인하고 날인한 채무증서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길 때마다 마치 채무증서처럼 우리의 죄값이 일일이 기록되게 되는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거슬러 불리하게 증언할 그 증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지워버리셨을 뿐 아니라 아주 없애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잉크는 종이 위에 그냥 남기만 하고 그 종이 속에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걸레로 닦으면 종이 위에 쓴 글씨가 깨끗이 지워져서 다시 쓸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증서 위에 기록되었던 우리의 모든 죄를 그의 십자가의 피로 다 깨끗이 씻으셨을 뿐 아니라 아예 그 증서를 없애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가리키는 행위가 세례라는 것입니다. 14절 끝에서는 또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어떤 죄인을 십자가에 처형할 때에는 그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의 머리 위쪽에다 죄목을 명기한 서판을 십자가 위에 못을 쳐 달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값을 청산하셨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바로 그 사실을 상징하는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로 죄와 사탄과 이 세상과 모든 악한 세력들에 대해 승리하셨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이 세상과 악한 세력들이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우리를 이끌어가는 데가 어디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죄 짓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멸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를 구하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계획을 좌초시키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 죽게 만드는 사탄과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의 계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그 계책을 이용하시고 거꾸로 뒤집으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패배를 그의 승리로 바꿔놓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다 치루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사탄과 세상의 눈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패배인 줄 알았던 십자가를 순간적으로 그의 승리요 우리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승리로 뒤집어놓으신 것입니다. 본문 15절은 그것을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했습니다.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다"는 말은 로마제국의 개선장군들의 시가행진을 연상케 합니다. 승전한 장군들은 개선행진을 할 때에 포로로 잡은 패잔병들을 노예나 짐승처럼 포박해서 열광하며 환호하는 로마의 시민들이 다 보도록 끌고 가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써 우리를 멸망시키려던 사탄과 그의 앞잡이 권세들이 그 패잔병노예의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꼴이 되었어야 할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그도 승리하고 우리 또한 그와 함께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다시 한번 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세례는 바로 이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증언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세례가 이러한 것일진대 오늘 세례를 받은 이들이나 이미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자의식입니다. 세례 받은 이답게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과 이 세상을 향하여 죽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죄사함에 대한 확신과, 그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결한 삶의 의지입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를 얻은 기쁨과 승리자의 의연함입니다. 비록 지금 이 세상이 우리를 압도하고 억누르며 우리를 이기는 것 같은 상황 하에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안에서 희망을 가졌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것을 예수님의 패배요 자신들의 절망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가 바로 자신의 승리였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이요 희망이었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로 물로 행하는 세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3:21).

요즈음 한국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온갖 조롱과 비방과 음해와 파괴공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치권력도 언론도 직간접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습니다. 반(反)기독교사이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며 교회를 헐뜯고 있습니다. 교회 내 개혁세력임을 자처하는 단체들이 교회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십자가에 매달려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도 그와 함께 장사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갈보리 산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며 이기는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향하여 철저히 죽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진정 살게 되고 승리하게 됩니다. 지금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핍박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대하여 이미 승리를 얻은 이들답게 의연히 이 세상에 대응하며 믿음을 지켜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것이 세례교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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