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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사의 죽음 이후
(역대상 15:11-15)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어떤 성도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밖에서 일처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때 그의 받을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은 아닙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함으로 저주받아 죽었습니다. 웃사가 벌을 받아 죽었다면, 신앙인들도 얼마든지 예외가 아닐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웃사를 죽여서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자신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교훈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은 웃사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고, 웃사의 죽음 이후에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취급하는 지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웃사의 죽음이 다윗을 변화시켰듯 우리들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타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웃사는 아비나답의 아들입니다. 웃사와 아효가 함께 법궤를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지만 웃사만 죽었습니다. 그것은 아효는 앞에서 소를 몰고 갔기 때문에 궤가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다행이지만 형 웃사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웃사가 왜 불순종을 하게 되었는지 좀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언제부터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는지 알면 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7:1,2]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20년간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습니다. 처음 아비나답의 집안에 법궤가 놓일 때만해도 엘리아살을 구별하여 잘 섬겼습니다. 그 집 사람들만이 아니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섬겼습니다. 20년간 하나님의 궤를 섬긴 아비나답의 집은 사명의 위대함을 차차 잊어버렸습니다.

성도들이 처음에는 열심을 내다가 차차 사그라지는 게 문제입니다. [계2장]의 에베소교회가 책망 받은 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웃사의 집안사람들도 처음에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시고는 얼마나 잘 섬겼겠습니까.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열심과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처음의 열심을 잊는 것은 귀중한 것도 가까이 있으면 귀중함을 모르는 속성 때문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한 법궤와 오래도록 함께 있다보니 귀중함을 잊었습니다.

사람이 참 어리석습니다. 공기가 아주 귀한 것인데 항상 숨을 쉬다보니 그 귀중함을 잊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납니다. 교회가 있으면 교회가 귀중한 걸 모릅니다. 말씀, 목회자, 아내나 남편의 소중함을 얼마나 인식하고 사십니까?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영원히 법궤가 있는 게 아닌데 오래된 시간이 타성을 키워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이 화근입니다.

시간의 길이는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오래 믿으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웃사와 오벧에돔이 그걸 단적으로 증명해 보입니다. 웃사는 법궤를 20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3개월 섬겼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삼하6:11) 20년 섬긴 사람은 벌을 받아 죽었고, 석 달을 섬긴 사람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죽음과 축복은 그들의 믿음의 결과입니다. 결과가 그렇다면 분명히 그 결과를 낳은 믿음이 그런 것입니다.

[마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렇습니다. 결과가 웃사와 오벧에돔의 신앙을 말해줍니다. 오벧에돔은 비록 석 달을 섬겼지만 첫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헌신과 봉사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법궤가 그의 집에는 복이라는 열매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앙생활에서 시간은 무의미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금방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를 향하여 기쁨으로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고도 죽음 앞에서 불안해 어절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진짜 신앙인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사명은 빠지고 즐겁고 신나는 것만 남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윗과 웃사 일행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길 때 새 수레를 지어 법궤를 올려놓고는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삼하6:5) 즐거워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법궤를 옮기고 있는 지는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고 신나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다는 점만 즐거워했습니다. 물론 찡그리고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나 즐거운 것 때문에 주의 일을 하면서 주님은 안중에도 없다면 큰일입니다.

일에 너무나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시키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일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인데 일을 하다가 일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잘못 되도 한참 잘못 된 것입니다. 다윗과 웃사 일행의 잘못은 일은 하는데 하나님은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의 일을 한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영광 돌리는 목적을 잃지 않았나 생각해 보십시오. 설교를 하는 것도, 찬양을 하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 것을 빼먹고 일한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서기관들입니다.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이 일을 안 한 게 아닙니다. 일을 하긴 하는데 자기들을 위하여 일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20년을 일한들 30년을 일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주님은 심판대에서 말씀하십니다.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여러분, 다시 여러분의 일과 사명을 점검하십시오.

말씀 안에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웃사의 사건을 치른 다윗이 그 사건을 어떻게 교훈 삼았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웃사가 죽자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고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기를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라옵니다. 그런데 예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성전을 짓고 지성소를 완성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대상15:2) 정신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궤를 메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며 덧붙입니다. 옛날에는 메지 않아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충돌하였다고 말입니다. 이는 웃사가 죽은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유심히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15)라고 합니다. 다윗은 예전에 그 사건이 웃사 한 사람 죽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궤를 메지 않았다가 혼난 다윗은 지난날을 간증하며 제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의 모습입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아 징계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일하다가 웃사가 죽은 사건은 지금도 말씀 안에서 일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떠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세워도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떠난 예배는 아무리 거창한 모양새를 갖추었어도 무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웃사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래 섬겼다고 자랑하지 말고 잘 섬기겠노라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일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중요한 분이십니다. 그 어떤 섬김도 하나님 밖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어떤 봉사도 말씀을 무시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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