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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때에, 이제는 / 엡 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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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그때에, 이제는
◎ 본문 : 에베소서2:11-19
◎ 일시 : 2003년 9월 28일


☞본문: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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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텔레비젼 프로에서 개그맨이 잠자는 모습을 보면 전생에 신분을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엎드려 자는 자의 전생은 거북이였고, 큰大자로 자는 사람은 전생에 대자리였고, 웅크리고 자는 사람은 부지런하지만 주머니에 돈이 없는 머슴 혹은 마당쇠, 혹은 돌쇠였다고 하여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석가모니는 "어느 영혼의 전생을 알고 싶다면 현생을 잘 관찰해 보라! 그러면 그 영혼의 전생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끔 텔레비젼에서 마치 사람이 전생이 있었던 것처럼 사람에게 체면을 걸어 전생에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처럼 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곤 합니다. 이런 것은 불교나 이교도에 있는 윤회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들은 얘기인데 어떤 승려가 신도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마치 그 집에 조그마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특이하게 그 강아지의 머리 가운데로 흰줄이 나 있었는데, 그것을 본 승려는 이 강아지는 이 집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강아지로 환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머리에 흰줄은 할머니의 가르마였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여 짐승과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짐승이지만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죽어 짐승으로 환생하거나, 짐승이 죽어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심은 사람의 속에 하나님의 속성과 인격을 불어 넣으셔서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육신을 입고 태어난 사람이 이 땅에서 그 수한이 차면 육체는 죽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이 하나님의 정하신 곳으로 가게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모든 영혼이 지옥이라는 형벌의 장소를 갈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하시어 누구든지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영혼이 구원함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믿는 자는 영생으로, 불신자는 영벌의 지옥으로 가는 것이지 환생은 없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속임수이요. 사탄을 따르는 무리들의 조작일 뿐입니다. 절대로 현혹되면 안 됩니다.
물론 윤회설의 교리는 '선(善)한 일을 하면 선의 세계에, 악(惡)한 일을 하면 악의 세계에 태어난다'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미혹의 영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서론에서 전생이니, 윤회설이니 하는 말을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이유로 있지도 않은 전생이니 윤회설이니 하는 것으로 혼란을 가져다주고 있는데,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참된 삶을 이룰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생을 살펴보고, 그리고 다음 생애의 행복을 위해 힘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 즉 예수 믿기 전에 나의 신분과 믿은 후에 나의 신분을 비교함으로 현재 나의 신분에 맞게 살면 최고의 질 높은 삶을 살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살펴보면 "그때"(2,11,12)혹은 "전에"(2)라는 과거시제의 문장과 "이제는" "이제부터"(13,19)라는 현재시제의 문장으로 구분되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와 "전에"는 예수를 믿기 전을 말하고, "이제"는 예수를 믿고 사는 현재의 삶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이 이 두 부분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품위가 달라지고, 언행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믿기 전에 우리의 신분을 살펴봅시다.

1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었습니다" 죽었다 하니, 아니! 나 예수 믿기 전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았는데!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미 생명선에서 생명의 공급이 중단된 것을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2절에 "세상 풍조을 쫓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세상풍조을 쫓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문화 속에서 산다는 것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사탄의 조종을 받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3절에서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은 가장 쉽게 설명하면 돼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돼지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11-12절을 보면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무할례자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밖에 사람이고, 외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하면 전혀 소망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 다음 믿은 후에 현재의 우리의 신분을 살펴봅시다.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 함께 일으켜서 하늘에 앉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구원받았음을 말씀합니다.

12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16절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19절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나그네도 아닌 오직 성도들이고, 동일한 시민이고, 하나님의 Family가 되었습니다.

정리를 하여 봅시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전에는 생명이신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이 되어 죽었었고,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전에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세상 문화만 따랐고, 지금은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문화 속에 살 게 되었고,
전에는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게 하던 공중 권세 잡은 자 즉 사탄을 따랐고, 지금은 천지만 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고,
전에는 돼지처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고, 지금은 성령의 조종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있고,
전에는 진노의 자녀이었고, 지금은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복 받을 자녀가 되었고,
전에는 전혀 소망이 없는 자였고 지금은 소망이 넘치는 자이고,
전에는 외인이요. 나그네였고, 이제는 성도요 하나님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Family가 되었고,
전에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담이 막혀 있어 하나님과 내가 단절되었고, 이제는 그 담이 허 물어져 하나님과 내가 연결이 되어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수준 높고 질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수준 높은 삶을 혹은 질 좋은 삶을 살지 않고 있는 자도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를 안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가 어떻게 된 것을 아신다면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이 품위가 있고, 인색하지 아니하고, 나누며 살고, 섬김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섬기는 삶이 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삶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고 어떻게 살지를 판단하여 지금 내 수준에 걸 맞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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