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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고전 15: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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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고전15:57-58) 

어제 토요일 아침에 멀리 서산에 계시는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외갓집 외사촌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장례라고 알고만 있으라고전화가 온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자고 일어나 보니 시체가 되어 있다니. . .

우리의 생명을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자다가 일어나 보니 남편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인이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없으라는 법이 있을까요?

남편의 코 고는 것 때문에 각방 주무시는 분들 잘 들으세요. 수면무호흡증이라는 것 아시죠? 코골다가 10초이상의 무호흡이 한시간에 다섯번이상이나 일곱시간동안 30회 이상이 있는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무호흡 상태를 여러차례 반복하게 되면 혈액속에 저산소증을 초래하여 부정맥 및 심부전으로 돌연사하는 불행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질병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십시오. 이제 코골이 남편이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오히려 반갑게 들릴 것이다.
‘내 남편이 살아있구나. . .’
성경에 주님의 재림시에 대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눅17:34 )
어떤 교회에서 연세가 많으신 한 노인 권사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성경을 몇 번씩 베껴쓰며 성경도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참 성품도 좋고 열심히 있는 사람입니다.
목사님께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권사님 혹시나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하시면 천국 가실 확신이 있습니까?"
권사님은 고개를 흔들면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얼마나 겸손한 대답입니까? 이것이 한국인의 미덕아닙니까? 나는 확실히 압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진 것처럼 이해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얼마든지 겸손하십시오 그러나 구원의 문제에 관한 질문에는 절대로 겸손하지 마십시오.

엡2;8-9에서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혜)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에세나 믿는 자에게 주시는 . . . 그러므로 확신있게 대답해야만 합니다.
스트로맨 이라고 하는 연구원이 교회 청년들 7천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응답자의 60%가 선행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질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70%가 봉사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인정받는데 필요한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것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대답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11: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것과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두 종류의 믿음

믿음에는 크게 두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의 믿음과 생활의 믿음입니다.

1) 구원의 믿음은 강하고 약한 것이 없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한 자는 곧 믿는 자입니다. ‘영접’ 곧 주님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으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받아들였는가 안 받아들였는가 하는 차이뿐입니다.어떤 사람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구원이 큰 구원 작은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생활의 믿음은 다릅니다. 구원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존해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사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존하며 삽니다.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얼마나 염려가 많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물맷돌로 골리앗을 때려눕혔습니다.
사울은 자기를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인간의 방법을 총동원해서 자기 인기 관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사이에는 믿음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생활의 믿음은 날마다 주님과 기도(교제)하지 않고 신앙 훈련을 받지 않고 말씀 듣지 않고, 기쁨으로 찬양하지 않으면 . . .예배에 소홀하면 자연히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확신 없는 사람의 불행

오늘 우리의 시대는 뭔가 아리송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확신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웃도 믿지 못합니다. 정치도 믿지 않습니다. 지도자도 믿지 않습니다.
음식도, 물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상대화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확신의 삶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시원한 생수를 앞에 두고도 물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마실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마찬가지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해서 죄가 사함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도 "나는 확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은 안 해도 확신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자는 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힘을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즐거움과 엉뚱한 일에 몰두하는 교인들도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란 예수님을 분명한 지식으로, 마음으로, 입술로 시인하고 영접한 자를 뜻합니다.
요즘, 자살이 유행입니다. 음독자살. . ., 활복자살. . ., 투신 자살. . ., 남들이 자살하니 따라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 비겁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삶과 더불어 싸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삶이란? 싸우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여 죽음으로 문제의 해결을 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 하나 죽어버리면 되지 않느냐?' 또는 '그 같은 놈, 죽여버리면 끝장이지. . '
죽음과 싸우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누가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이 없다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적당하게 살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후5:10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들어가 각각 선악간의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갚으려 함이라.”
우리는 반드시 심판대 앞에서야 합니다.

히4:13에는 “지은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리라.”
반드시 그 분 앞에 서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삶의 모습이 바뀌어집니다.

5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나팔 소리가 들리고 그리스도 안에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부활될 몸은 현재와 같이 죄의 유혹에 빠져서 끌려다니는 몸이 아닙니다.
질병에 꼼짝을 못하는 그런 몸이 아닙니다. 온전한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빌3:21).
그 때 살아 있는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죄와 사망은 더 이상 군림하지 못하게 영원히 소멸될 것입니다. 이 날을 준비하고 기대하는 성도들은 장래의 소망을 가지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믿는 우리는 부활해서 영광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의 기본입니다.

부활신앙은?
핍박과 고난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목 베임을 당하기도 하고 짐승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항상 생명의 위협과 핍박 속에서 살았습니다.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들이 이렇게 맹수와의 싸움이나 고난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바울이 복음 때문에 그런 고난과 위험을 어떻게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이 부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고전15:58에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내 속에 부활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힘들고 주변에서 시험하고 유혹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핍박이나 환난이 올 지라도 . . . 부활 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8:34,35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바울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항상"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동일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주의 일은 내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 .그것이 진정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입니다.
‘더욱 힘쓰라’고. . 이 의미는 "적당히"라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넘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일은 적당주의가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 . . 세상 일이나 교회 일이나 적당주의가 남긴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역사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쓸 때 영적으로 더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기 때문입니다.

영적 체력?

흔히 시험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고 하면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약할 때 걸림. . .영적인 병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치고 영적인 병에 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걸립니까?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구경꾼 교인들이 잔뜩 겁도 집어먹고, 불평도 다 하는 것입니다.
체력이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덩치가 큰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덩치, 몸 크기와는 관계없습니다. 차두리 선수가 독일에서 선수생활하고 있는데 그나라 선수와 비교할 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폭탄이라는 별병이 붙을 정도입니다. 체력 테스트에서 2위를 했답니다.
체력과 체격은 다릅니다. 체격이 아무리 좋아도 체력이 나쁠 수 있습니다.
체력테스트는 혈액 속에 젖산을 가지고 결론을 내린다고 합니다.
젖산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라는데요. 체력이 좋은 사람은 아무리 뛰고, 피곤해도 금방 회복 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젖산이 많은 사람은 쉬 피곤한 것입니다. 젖산이 적어야 좋은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피곤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금방 회복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시험에 걸려도 잘 이기는 성도가 강한 성도입니다.

그런데 계속 영적으로 시험들고 지치고 피곤해 있는 사람은 영적인 체력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님 나, 시험들었어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시험에 빠지면 두가지로 나타납니다.

1) 하나님을 등지고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성도.

2) 더욱 더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며 주님과 가까워지는 성도.

감기에 걸리면 드러눕기부터 하는 사람과 더 잘 먹고 이기기 위해서 밥도 더 잘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까?
영적으로 약한 삶에게 필요한 것은 꾸준한 운동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운동이 있습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모이기를 더욱 힘쓰라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에게 어떤 젊은 교인이 찾아가서 '꼭 교회에 나가야만 됩니까? 교회에 안 나가도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되지 않습니까?. . .'
그 때 무디 목사님은 벽난로에서 활활 타고 있는 장작 덩어리들을 집게로 따로 따로 헤쳐놓았습니다. 그러자 화기가 점점 약해지더니 마침내 불이 꺼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 교인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자주 모였습니다. 그 때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도 120문도가 모여서 열심히 기도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 중의 가장 큰 것은 모이기에 힘썼다는 점입니다. 행2;42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은 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라도 교회를 자주 빠지면 신앙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중에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한 달만 교회 예배와 모임에 빠지고, 성경과 기도를 멀리해 보십시오. 그 좋던 믿음이 다 식어 버리고 불평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창고에 있는 많은 보화들을 가져 올수 있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안 하는 사람은 기도 안 하는 것만큼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생선 대신에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구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실 때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기도 없는 자에게는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이것저것 다 하면서. . . 이 핑계, 저 핑계. . .
사람들은 신문은 두개 세개 보고, 텔레비전은 연속극. . .광고노래까지 다 외울정도로 보면서도 기도할 시간은 없다고 . . 이래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지금, 힘듭니까? 일이 안됩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이 가을에 잃어버린 기도를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교회의 본질적인 힘입니다.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는 힘있는 교회이고 기도가 사라진 교회는 힘을 잃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든 일에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기도가 그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기도의 크기가 교회의 크기입니다. 기도가 클수록 그 만큼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납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쩌니 경제가 어쩌니 정치가 어쩌니. . . .그런 걱정들을 들어보면 매우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걱정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모세는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도말할 지라도 자기 동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중보하며 기도하였습니다(출32:32).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의 골육과 친척의 구원을 원하는 바라고 하였 습니다(롬 9:3).
요한 낙스는 "오, 주여! 스코틀랜 드를 내게 주옵소서! 그리하지 아니 하면 나에게 죽음을 주옵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기도하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9:28에서 주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셋째로 전도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하보다 귀한 것은 한 사람의 영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6:26).
바울은 말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 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딤전 1:15).
복음을 전하는 기쁨과 보람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교회와 교인은 절대로 좋은 교회와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는 화를 받게 됩니다(고전 9:16).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정체하며 정체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기쁨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정을 가지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에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내 옆자리 한 자리만 내가 책임지고 채우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축복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세상 일에는 헛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는 헛됨이 없습니다.
은밀하게 주의 일을 하면 주님도 은밀하게 갚아 주십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눈에 어떤 상급이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주의 일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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