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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천국의 백성입니다 (마 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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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국의 백성입니다(마7:20-23)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루는 어떤 신문에 흥미로운 광고 한가지가 실렸습니다. 그 광고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사람을 구합니다. 키는 180cm이상이어야 하며, 체중은 100kg이상이고, 허리둘레는  40inch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목소리는 크고 거칠수록 좋습니다. 대우는 숙식제공에 월 300만원 이상씩을 보장합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때 ○○장소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날 그 장소에는 그 조건에 맞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엄정한 심사 끝에 단 한 사람만 뽑혔습니다. 그는 그 즉시 차에 태워져서 어디론가 실려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할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뒤 신문에는 대문짝만한 광고가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네를 타고 담배를 피우는 곰 등장! 50여 가지의 환상적인 묘기 대행진! ○○동물원."
그 광고에는 사납게 생긴 곰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곰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지난 한 달 동안 열심히 곰 흉내를 연습해온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사람들 앞에서 그저 어설픈 재주만 부리면 되었습니다. 때로는 어정어정 걷기도 하고, 때로는 앞발을 치켜들고 사나운 괴성을 질렀습니다. 이따금씩 조련사가 물려준 담배를 쥐고 한 모금 깊이 빨아 들고서는 만족스러운 시늉을 지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서 좋아라 박수를 쳤습니다. 그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는 좀 더 곰스러워지기 위해서 날마다 곰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를 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또는 비디오를 보면서 곰의 모습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면 늘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곰이다. 나는 진짜 곰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아무도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짜 곰처럼 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람들 앞에서 그네를 타는 묘기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발을 구를 때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면서 소리쳤습니다. "더 세게, 더 높이."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면서 그도 흥분했습니다. 그는 점점 세게 발을 굴렀습니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에 그는 잡았던 그네의 줄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몸이 공중에 붕 뜨는가 싶더니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린 그는 질겁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우리 옆에 있는 호랑이 우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한 마리가 입맛을 다시면서 어슬렁어슬렁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습니다. 그는 얼른 울타리로 뛰어갔습니다. 그는 철망을 세차게 흔들면서 소리쳤습니다.
"사람 살려! 나는 곰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순간에 이미 호랑이의 사나운 이빨은 그의 목덜미를 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더 놀란 것은 호랑이의 입어서 새어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쉿! 조용히 하세요. 나도 사실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짐승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곰 흉내를 잘 낸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는 진짜 곰이 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을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또 자기가 곰일지도 모른다는 착각 속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 노릇을 잘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는 진짜 곰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서 곰 흉내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직분들이 있습니다. 직분자 노릇을 제대로 한다해서 그 자체로서는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님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식별하는 방법으로 이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 원리는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참 제자이며, 진정한 천국의 백성들인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백성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로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첫째로, 천국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21절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라야 합니다. 22절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23절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며, 그 뜻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이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첫째로, 천국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루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그들은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탄식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5:8-9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는 예수님을 공경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고 나신 뒤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검과 몽치를 든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에게로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와서 거짓으로 입맞춤을 했습니다. 무리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그렇습니다. 입술로만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은 결국 가룟 유다의 거짓된 입맞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요8:3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누가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까? 누가 진정한 천국의 백성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께서 새로 부임을 하셨습니다. 상당히 연세가 많으신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부임하시고 첫 설교로서 사랑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인들 모두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난주일 설교를 똑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 교인들은 수군대면서 킥킥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목사님께서 너무 연세가 많으셔서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모양이야. 어떻게 지난 주일 설교를 그대로 하실 수가 있을까?"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또다시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화가 났습니다.
"우리가 시골 사람들이라고 목사님이 우리를 무시하는 모양이다."
결국 교인들은 목사님을 내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목사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보따리를 싸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은 목사님이 좀 안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한 달을 채울 겸, 그 다음 주일에 고별 설교를 하시고 가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목사님은 다음 주일에 설교를 하셨습니다. 역시 그 날도 똑같은 내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 없는 모습을 보였으면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고별설교를 하시는 시점에서도 똑같은 설교를 하셨을까?"
그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보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울면서 목사님이 못 가시도록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교회에 그대로 계시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께서 당연히 똑같은 설교를 하리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목사님은 다른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사랑하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물질생활에서부터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십일조생활을 하지 않는 분이 있으면 이제부터 모두가 십일조를 하시기 바랍니다."
교인들이 그 설교를 듣고 나서 십일조를 했을 것 같습니까? 안 했을 것 같습니까?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안 하면 1년 내내 계속 똑같은 설교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고 적고 간에 다 순종해서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또 바뀌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전도에서 나타납니다. 모두가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나가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설교가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모두가 앞을 다투어서 봉사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니까 교회가 놀랍게 바뀌어졌습니다. 교인들 스스로는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날이 갈수록 크게 부흥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입술만 움직이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의 백성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답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 뜻대로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천국의 백성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라야 합니다.

22절을 보십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은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똑같은 일들을 행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들도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약한 자, 병든 자들을 고쳤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열 두 제자 모두가 예수님의 참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한다 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문제는 한 마디 로 말하면 "우리가"하는데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드러내려고 하는데 있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으면, 오직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의 수단과 방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가"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우리가 무엇을 행치 아니했나이까?" 그저 그들은 자기들을 드러내기에 바빴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연못가에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황새 한 마리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잠시 연못가에 내려왔습니다. 개구리 가운데 한 마리가 용기를 내서 황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얘 황새야. 나도 너처럼 단 한 번이라도 하늘을 좀 날아 보았으면 좋겠다.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없겠니?"
그 말을 듣고 황새는 개구리를 측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황새는 개구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황새는 막대기를 하나 주워왔습니다. 막대기 양쪽 끝을 서로가 단단히 물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황새는 개구리와 함께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연못 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밑에서 다른 개구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는 부러운 듯이 소리쳤습니다.
"개굴개굴, 야 멋있다. 저 멋있는 생각을 누가 했을까?"
밑에서 동료 개구리들이 자기를 부러워하는 소리를 듣고서는 공중을 날고 있던 개구리는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소리쳤습니다.
"개굴개굴, 누군 누구야? 내가 했지."
그 순간 개구리는 물고 있던 막대기를 놓쳤습니다. 개구리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물론 개구리는 허리가 부러졌습니다. 배도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큰일을 할지라도 자기를 드러내면 그 결과가 아름답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구제했습니다. 열심히 기도도 했습니다. 열심히 금식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함으로써 자기들이 다 영광을 받고자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드러내며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이와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의로서는 결단코 천국의 백성으로 합당치 않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성전 미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측은히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손을 붙들고 일으켰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베드로가 그를 잡아 당겼을 때 그의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는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3:12입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그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낫게 했으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우리 자신을 드러내지 마십시다. 베드로처럼 우리 자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 완전히 감추어지고,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천국의 백성으로서 합당합니다.

셋째로, 천국의 백성은 예수님의 인정 곧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23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서 어떻게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지 않는 자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중간에서 모든 영광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23:3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였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의로서 어떻게 천국의 백성이 되겠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날 어떤 마을에 한 고명하신 스승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이 아이는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이가 다 썩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먹지 말라고 해도 내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선생님을 무척이나 존경합니다. 선생님께서 말 한마디만 하시면 들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탕을 먹지 말라고 제발 타일러 주세요."
그러자 그 고명하신 스승이 가만히 보더니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한달 뒤에 다시 오너라."
아이의 어머니는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까짓 것 바로 그 자리에서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될텐데, 왜 한달 뒤에 다시 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명하신 스승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이와 어머니는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달 뒤에 다시 갔습니다. 뜻밖에도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한 달만 더 기다려라."
도무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을 기다렸다가 또 다시 갔습니다. 그제야 스승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얘야, 이제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아이는 대답을 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제부터는 제가 사탕을 절대로 먹지 않겠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사탕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렸습니까?"
그때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인, 실상 나도 사탕을 참 좋아한답니다. 내가 사탕을 먹으면서 어떻게 저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한 달을 기한으로 정하고 사탕을 끊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달을 더 연장해서 재시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얘야, 늙은 나도 사탕을 끊었으니까 젊은 너도 얼마든지 사탕을 끊을 수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 사탕을 끊도록 하여라.' 이 아이에게 떳떳하게 이 말을 해줄 수 있기 위해서 나는 두 달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말하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셨더라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에게 말씀에 순종하기를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통해서 계속해서 강조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간략하게 요약하면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순간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써 이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이와 같은 칭찬과 인정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무단히도 애를 썼구나. 잘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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