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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 / 행 2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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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
† 성경본문 :사도행전 20:17~24


사람이 자기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일에 몸을 던지게 되면 여간한 고난이 온다해도 이를 즐거움으로 생각합니다. 평생을 두고 목적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그 사실에 보람을 느끼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목표로 하고 그를 향하여 매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빌 3:12). 바울은 평소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롬 1:4).

본문 말씀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한평생을 살아온 바울은 복음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하여 수많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특히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말할 수 없는 환난과 시험을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경이로운 실적들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는 지금 3년에 걸친 에베소 전도를 마지막으로 소아시아 전도를 마감하고 예루살렘에 귀환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예루살렘으로의 상경은 그의 종말을 내다보는 비장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소아시아의 마지막 거점인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모으고 의미심장한 고별 설교를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도행전 20: 17-35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는 전도자요 목회자로서 그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그의 가치관과 사생관을 피력한 것으로써 어찌 보면 목회학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담긴 내용들은 구구절절이 목회자의 사상이요 철학이 되어야할 말씀들이며, 오늘날 건전한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요 이상입니다.

이 시대에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들이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목적에 따라 신앙생활을 추구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는 여기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에다 목숨을 걸고자 하는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Ⅰ.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그의 삶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7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자기 평생을 선한 싸움을 싸운 것과 믿음으로 자기의 갈 길을 잘 마쳤다고 피력한 것은 그가 자기의 사명에 충실하였다는 뜻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1) 사명이란 말의 뜻

「사명」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명령을 뜻합니다. 세상에서는 공직자에게 국가로부터 주어진 임무나 권력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과 책임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명이란 말을 쓰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명은 국가기관이나 어떤 단체로부터 부여받은 공적인 임무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가령 어느 임금으로부터 중요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도 그 임금이 물러나고 다른 왕이 등극하게 되면 주어진 임무도 끝나게됩니다. 국가나 단체도 이념이 바뀌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사람을 바꾸고 주어지는 임무도 다르게 정해집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중요하고 절실한 일이라고 해서 맡겼지만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맞으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명은 절대적이어서 시간이나 장소 또는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제자의 도(discipleship)를 강론하시면서 「자기 십자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4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란 제몫에 태인 십자가를 뜻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 져줄수도 없는 자기만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일을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곧 자기 인생을 오직 거기에다 완전히 쏟아 붓는 자세로 임하여야 된다는 뜻입니다.

(2) 사명의 출처

사람들이 그가 받은 사명의 가치나 비중을 논할 때는 먼저 그 사명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은 사명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출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으셨다고 하시면서 그 우주적인 대권을 가지고 오늘 우리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신다고 말했습니다(마 28:18-20).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창세전부터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셨다고 말했습니다(롬 1:1). 하나님께서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던 순간 이 사실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9:15에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의 출처가 어디이든지 그 사명과 함께 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힘의 뒷받침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명의 근거는 사명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확실한 배경이요 힘이 됩니다. 바울의 경우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의 사도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하고 그의 사도적 배경을 밝혔습니다(갈 1:1).

(3) 사명의 내용

24절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롬 1:1). 그는 복음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로마서 1:2-4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이라는 말(єύαγγέλιον)은 기쁜 소식(Good news)을 뜻하는 것으로써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10). 그런데 본문 말씀 24절에는 “은혜의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라는 말(Χάρις)은 값없이 베푸는 호의 또는 선물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신 최상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요 3:16). 범죄 하므로 영원히 멸망 받을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사죄함을 받고 또한 그의 부활로 인하여 영생의 소망을 얻게 되었으니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16에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였습니다.


Ⅱ. 은혜에 대한 보답

바울은 그의 서신 가운데 「은혜」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1) 바울이 받은 은혜

바울은 훗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되고 간 데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놓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본래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사람이요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들과 전도자들에게 온갖 박해를 가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2-14에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인으로서(딤전 1:15), 그의 진노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존귀한 사도의 직임을 받았으니 그 은혜에 대한 감사는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던 것입니다.

(2)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가운데서 구별하여 자기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거기 따르는 하나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와 그 후손들로 하여금 거룩한 민족(聖民)이라는 칭호를 주시면서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나타내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창 18:19). 출애굽기 19:5-6에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신 이유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하여 만세 전에 택하셨고(롬 1:1, 엡 1:4),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갈 1:15).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다고 하므로써 험하고 힘든 이방인 전도의 거친 길을 걸었습니다(갈 1:16, 2:8).

(3) 은혜를 보답하는 방법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 복음 증거의 사명임을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주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하여 진력하였습니다. 로마서 1:14에는 자기가 복음의 빚을 진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하여 유대지경뿐 아니라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로마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를 다녔으며 높고 낮은 모든 사람 앞에서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일을 수행하였고 복음에 유익한 일이라면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없이 전하였다고 회고하였습니다(20절). 그는 거의 복음에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으나(행 26:24), 오히려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고후 5:13).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으로 최상의 기쁨으로 여겼으며 거기에 삶의 보람을 삼았습니다. 빌립보서 1:18에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전도 사역으로 인해서 받게 되는 고난도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보답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였습니다.


Ⅲ. 복음 전하는 일은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인 교회와 성도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을 맡겼습니다. 맡은 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선택과 명령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권이요 또 거기에 따르는 보상이 약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축복인 것입니다.

(1) 복음의 제사장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께 세움 받은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5:16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仲保者)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중 범죄한 사람의 죄를 사유하기 위하여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속죄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입니다(레 1:5-9). 신약적으로 이는 예수닙의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의한 속죄와 제사장적 역할을 비유하여 그 자신이 이방인을 거룩하게 받으실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적 사명은 받은 자에게 분명히 특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9).

(2) 천국의 비밀을 맡은 사실

고린도전서 4:1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비밀은 세상이 말하는 비밀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써 영적이고 신비로운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12-13에는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3:11-12).

(3) 영광스러운 소망

죽음을 눈 앞에 둔 바울은 그가 떠난 후에 되어질 상황을 그려보면서 거기 모인 에베소 장로들에게 의미심장한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고 오히려 담담하게 후일담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6-27절에 보면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평생동안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오는 보람과 기쁨으로 행복해 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기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세계 도처에 산재한 교회들이 그가 자랑하는 축복의 열매들입니다(살전 2:19).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받게되는 의의 면류관은 영광스러운 상급입니다(딤후 4:8). 다니엘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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