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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강을 건널 때 
(삼하16:5-14)

인생은 고갯길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올라가기만 하는 신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 한없이 내려가는 암담한 날도 있습니다. 푸른 초원과 잔잔한 시냇가에 사는 평안의 날도 있는가 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절망의 어둠에 싸여 고통을 받는 날도 만나게 됩니다. 순풍의 돛을 단 듯이 순항(巡航)하는 순간도 있는가 하면,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우로 파선 위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사업이 잘 됩니다. 자녀들이 별로 속을 태우지 않고 잘 자라줍니다. 오히려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이 생길 정도로 가정의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그러나 어느 때는 모든 출구(出口)가 막힌듯이 보여지는 날도 만납니다. 사업이 부도 위기를 만나서 사방 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판에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교통 사고를 만나 덜컥 입원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낄 정도로 죽을 맛입니다.

지금 다윗은 시련의 깊은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도망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 이복형인 암논이 자기의 친누이 다말을 성적으로 범했을 때 화가 나서 죽이어버렸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다윗왕이 자기의 이복동생인 솔로몬에게 왕위(王位)가 물려준다는 것을 알고 유다의 불평불만자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할 정도로 막강한 장수와 군사력을 가졌으나, 아들과 차마 싸울 수가 없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피난길에 오릅니다. 옆에 보위하던 장수들은 화가 났을 것입니다. 아비에게 반역을 일으킨 이 천하 패륜아를 당장에 쳐들어가서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일어났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자식을 끔찍하게 위하고 있으니 차마 말을 못 꺼냅니다. 속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골리앗 장수 앞에서도 물 맷돌 몇 개만 들고도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 싸우던 용감하던 다윗,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던 의로운 다윗은 어디로 가고 허둥지둥 도망치는 초라한 꼴이 되었는가? 삼하15:30에 보면, 다윗이 감람산 길을 통해서 도망칠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갑니다. 이에 함께 가던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갑니다.

너무나 초췌한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일생 전투에서 승리해 왔던 부하들의 가슴은 안타까움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더 비참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감람산에서 여리고를 향해 60리 정도 내려가야 요단강에 이릅니다. 다윗 일행이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바후림이라는 곳에 왔을 때였습니다. 사울의 집 족속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란 자가 나와서 고함 고함을 지르며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고 욕을 퍼부으며 저주합니다.

"피를 흘린 자여, 이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사울왕 대신에 왕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쫓기어 도망치는 처참한 지경에서 이런 욕을 당하니 얼마나 화를 치밀었을까요? 더욱이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데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장수 중에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감히 저주하리이까? 당장 강을 건너가서 저 못된 놈의 머리를 베게 허락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로 펄펄 뛰면서 흥분했으나 다윗이 가까스로 말렸습니다. 겨우 피난을 갔으나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예루살렘을 차지한 압살롬이 간신 아히도벨의 간계를 듣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강제로 동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으면서 다윗이 너무나 낙심하여 죽은 자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세가 이처럼 압살롬에게 기울자 다윗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배신하고 새로운 왕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 특히 정치생명이 끝나버린 절망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련의 날, 절망의 날 속에서도 다윗은 믿음으로 견딘 결과 마침내 승리의 날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러한 다윗의 사건을 통해서 배울 교훈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1.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그 동안 얼마나 승승장구 올라가는 삶만 살았습니까? 그 앞에는 언제나 푸른 초원과 잔잔한 시냇가, 쉴만한 물가만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사자와 곰과 싸워서 이기게 하시고, 심지어는 당대 천하무적의 장수 골리앗과 싸워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루아침에 백성들의 스타가 되고, 단번에 왕의 사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병적인 시기로 인해서 갖은 핍박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식사 중에 창을 던져서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런 핍박 속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제일주의 삶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을 왕의 자리까지 높이셨습니다. 그가 왕이 된 뒤에도 저는 결코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과 조국, 백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왕의 신분으로도 전쟁터에서 앞장서서 나가 싸우는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모든 장수나 군사들이 감격하여 전력투구함으로 전투마다 연전연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모든 국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로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다윗은 '이제는 좀 쉬자. 왕으로 위신을 찾자.'라는 생각에서인지 왕궁에서 편히 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다윗의 위기가 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수요일마다 배운 대로 삼하11장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과 전쟁을 벌리고 있는 동안, 다윗은 왕궁에서 오랫동안 낮잠을 자다가 늦게 일어나 왕궁 지붕을 산책하다가 왕궁 뜰에서 목욕하는 밧세바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궁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왕궁 주변에 있는 평인(平人)들의 집 안뜰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뜰은 담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흔히 목욕을 해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밧세바의 목욕하는 아름다운 자태를 보자, 음욕이 일어나 그 여인을 불러다가 음란을 저질렀습니다.

자기에는 많은 여인이 있음에도 그런 욕심이 생겼다는 것과 그것도 자기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이 영적 긴장이 풀어졌으며, 동시에 양심이 무디어졌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자기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아를 꾀어서 여러 가지 감추는 수단을 부리다가 안 되니까, 최전방에 보내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던 다윗이 영적으로 병드니까, 음란과 살인 두 가지 죄를 짓게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때부터 그렇게 튼튼하고 평안하던 다윗의 가정과 국가는 엄청난 시련에  시달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밧세바가 낳은 불의의 씨앗인 어린 아기가 비참히 죽습니다. 이어서 악질(惡疾)이 돌아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암논이라는 아들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제로 강간했고, 이에 분노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마침내는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에게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는 날이 옵니다. 다윗이 악을 저질렀다고 즉시 악의 열매를 거둔 것이 아닙니다. 수년 동안의 세월이 가면서 점점 그 씨가 자라 마침내 악의 열매를 거두는 날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이 자기를 벌주지 않으셨다고 용납하신 것은 아닙니다. 마침내 악을 심은 대로 거두는 날이 오는 줄 알고 철저히 회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때보다 모든 것이 평안하고 형통할 때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어느 부부는 가난한 때는 그렇게 부부가 잉꼬처럼 우애가 깊고 신앙생활을 잘 하더니 사업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가고 집안 살림도 좋아지니까. 기도생활, 충성생활을 게을리 하더니 부부 사이도 나빠집니다. 더 나가서는 깨어지기도 합니다. 안 됩니다. 어려울 때보다도 평안하고 형통할 때에 더 영적 긴장을 놓치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서 충성하고 깨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영적으로 잠자고 있으면 사탄이 틈을 타서 하나님과의 관계, 식구와의 관계를 깨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전도관을 시작한 박태선 장로는 처음부터 이단(異端)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저는 남대문교회 집사로서 열심히 노방전도를 할 정도로 모범적인 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생활을 한지 21년 되는 때에 이성봉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회에서 참석하여 3일을 금식하며 열심히 기도하다가 새벽 4시에 성령의 큰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그를 통해서 고침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는 남산에서 김치선 목사님과 스완스 선교사와 함께 10일 동안 집회할 때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은혜를 받았는지, 엄청난 헌금이 모여지고 금가락지만도 몇 가마니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가 정신을 차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하나님처럼 받들어 주고 집회가 끝나면 여인들이 최고의 음식과 다리와 몸을 주물러 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러자 교만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기성교회를 맹렬히 비판하고 칼빈의 예정론을 뒤엎고 자기를 감람나무로 자처하기 시작하면서 '기성교회는 마귀의 전당이니 구원이 없고 전도관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함으로 이단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신도들의 피땀 어린 재산들을 착취함으로 덕소에 제1신앙촌, 소사에 제2신앙촌, 경남 기장에 제3신앙촌을 설립하는 등,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지만 결말이 너무 비참하고 그 자녀들은 천한 패륜아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평안하고 형통할 때, 방심하거나 교만하지 마십시오. 또 조그마한 죄라도 소홀히 보지 마십시오. 오직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서 충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시련의 강을 다윗은 오직 겸손히 건넜음을 배워야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 비참한 모습으로 임진강을 건너던 인조대왕처럼,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유비가 신하들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양양으로 피난 가던 그 처참한 때처럼 지금 다윗은 아들의 칼날을 피해서 요단강, 그 시련의 강을 절망의 가슴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비참한 때에 시므이라고 하는 보잘 것 없는 자가 계속 따라오며 욕설을 퍼붓고 저주하고 돌을 던지면서 모독의 먼지를 일으키니 기진맥진할 지경입니다.

정말, 다윗은 요단강에 머리를 박고 죽고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보다 못한 아비새 장군이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데 나로 건너가서 저 놈의 목을 베게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에게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고 했습니다.

또한, 또 11절에 보면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에게 저주하게 두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므이가 저렇게 욕하고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시각(視覺)에서 이 사건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적으로 한없이 교만하고 방자하던 다윗이 철저하게 하나님 아래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반역의 칼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려는 압살롬의 탓도 아니요, 저기 이를 시리 물고 욕하면서 돌을 던지고 있는 시므이 탓도 아니라, 바로 자신의 탓이요, 나의 연고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요, 하나님 앞에 깨어진 모습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 탓이다.'
'누구 때문이다.'라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세는 성도들의 진정한 자세가 아닙니다. '나의 탓입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은 탓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다른 이의 허물까지 대신 십자가를 지는 자세가 성숙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시련을 만나거든, 결코 다른 사람의 탓이나 무슨 환경 탓으로 돌리기 보다 먼저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나의 연고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진 모습을 보이심으로 문제 해결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시련의 강을 건너면서 다윗은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었습니다.

다윗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 가운데서도 12절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시련의 날 속에서 교만했던 죄, 음란죄, 살인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낮아질 때에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실 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고도의 군사작전을 써서 압살롬의 군대를 고립시키고 승리함으로 나라를 도탄에서 구할 수 있고 왕의 권위도 회복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저렇게 악착같이 따라오면서 욕과 저주와 돌을 퍼붓는 안하무인격의 시므이를 당장에 처형함으로 일행들의 사기를 높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철저히 경책하고 낮추기 위해서 역사 하시는 사건인 줄 믿었기에 인간 수단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압살롬의 칼에서 하나님의 칼을 보았고, 시므이의 욕설과 저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과연, 다윗이 이러한 믿음대로 나갈 때에 압살롬에게는 더 막강한 군대가 있고, 아히도벨이라는 최고의 전략가가 있을 지라도, 전쟁에서 다윗에게 승리하게 만드심으로 아히도벨은 자살하게 되고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압살롬이 늘 큰 자랑으로 여기던 긴 머리채가 상수리 가지에 걸리고 노새는 달아남으로 뒤쫓아온 요압 장군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다윗이 큰 시련을 겪은 후에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에 다시 요단강을 건네게 되었는데, 그렇게 욕과 저주를 퍼 붇던 시므이가 와서 용서를 구합니다. 그 때 아비새 장군이 다시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죽여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말했으나, 다윗은 삼하19:22에서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고 한 후 시므이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예루살렘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안 압살롬의 편에 섰던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다가 안심을 하면서 민심이 안정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말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 교만과 자기 자랑과 죄악의 불순물을 제거함으로 더욱 더 겸손의 왕, 더욱 더 덕이 넘치는 성왕이 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 길을 가다 보면 시련의 강을 건널 때가 있습니다. 이 시련이 우리의 실수나 죄로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 시키기 위해 올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연히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련은 아픔과 쓴 눈물과 많은 손해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날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겸손과 회개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통해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시련은 손해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자기의 죄와 인간의 연약을 깨닫게 함으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므로 영적 성숙을 가져오게 하며, 마침내는 더 좋은 길로 인도하게 하는 지름길이 되게 하십니다.

어느 글을 읽어보니까. 기독교인이 성숙한 성도가 되려면 고난의 학교에서 4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견딜 수밖에 없다."는 말을 배우는 단계로, 고난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적인 십자가를 배우는 단계요, 두 번째 단계는, "나는 참고 견딘다."고 하면서 고난은 힘들지만, 자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 고난을 떠맡는 단계요, 세 번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견딜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고난을 이기는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는 단계로, 여기서는 고난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이 나타나는 표적이 되고 시험이 오면 오히려 기뻐하는 위치까지 이르는 단계라고 했습니다. 광야를 간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나 거기를 지나면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더 좋은 초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같이, 시련의 강을 건너면 더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어야 합니다.

「크리스챤 옵서버」라는 잡지에는 이런 귀한 예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912년 4월 타이타닉이라는 호화선이 서덤튼 항구를 떠나 항해하던 중에 거대한 빙산에 부딪혀 1,635명이 사망한 대참사가 있었는데, 그 배에서 구사일생으로 산 어느 성도의 간증입니다. 한 미국 부인이 밤에 자려는 데 남편에 대해서 너무나 불안하여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열렬 하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시간을 기도해도 평안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다가 새벽 5시경에야 굳건한 확신과 평안을 얻고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 부인의 남편은 귀국하려고 타이타닉호를 탔다가 침몰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명정을 타려고 했으나 수백 명이 매달려서 탈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여자와 아이들만 태우기로 하고 남자들은 생명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여인의 남편도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여보, 잘 있어요."라고 공중에 눈물로 외치고는 거대한 배가 침몰할 때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물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돌연, 물위로 솟구쳐 떠오르게 되고 가까운 곳에 구명 보트가 뒤집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배 위로 올라가 생명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시간이 바로 미국 시간으로 새벽 5시였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미국에 돌아온 남편은 자기가 물에 빠진 시간에 아내로 하여금 강권적으로 기도하신 것과 새벽 5시에 확신과 평안을 준 것과 더불어 그 시간이 자기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뀐 시간인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감격하여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는 간증입니다.

그 죽음의 시련이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지름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인생 길을 가다보면 올라갈 때도 있지만, 내려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라갈 때, 평안할 때 방심하지 마시고 깨어서 기도하고 충성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시련의 강을 건널 날에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더욱 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 하여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고 좁은 길로만 따라 가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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