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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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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좇아 행하라(갈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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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교>

가을입니다.
아름다운 결실과 함께 감사가 넘치는 복된 시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상 기후와 태풍으로 풍성한 가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성령의 열매로 충만한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읍시다(18). 
  육체의 일은 성령의 일을 거스립니다.
  육체의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매이지 아니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2.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22-23).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 성령의 열매로 충만합시다.

3.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합시다(25-26).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거듭난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하는 삶이 성도들의 바른 삶입니다.

헛된 것을 구하지 아니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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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하고 복된 가을이어야 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단 그것은 농작물에 국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복잡합니다.
제 같은 서민으로서는 분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같은 데 누구의 말이 참말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말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정치는 다양한 의견으로 인한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제시됨으로 우리들의 판단을 요구하는 게 아니고 변명, 책임 전가, 추궁, 회피, 거짓, 자기 고집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결실과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뿌려놓은 씨앗이 일시적인 한탕주의 내지는 로또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기, 개인적인 이기주의와 변칙적인 자기 수익 위주로 뿌려져 있으니 어찌 경제적인 수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땅도 바다도 하늘도,
각종 이상 기후와 태풍으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너무나 무감각합니다.

우리가 기대할 것은 영적인 추수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한 은혜로운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참으시고 계십니다.
내가 죄를 저지르고 잘못하는 일이 많지만 괜찮더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의 깨우쳐 주심에 따라 회개합시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신 그 사랑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가을이 성령의 은혜와 열매로 충만한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는 항상 두 개의 자아가 싸웁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절규합니다(롬7:18-25).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능)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 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장 21절부터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이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그래서 절규하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 하)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우리 모두는 마음으로는 원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법대로, 여러분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천사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절규하고 안타까워합니다.   
육체의 일은 성령의 일을 거스립니다.
육체의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로마서 8장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미 로마서 7장에서 예고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5. 상)
8장 1,2절만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줄입니다.
따라합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의 법에 얽혀 사망으로 빠져들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편안이니라.”

<성령의 좇아 삽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읍시다.>
다시 갈라디아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16절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이 둘이 대적함으로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갈5:17).

그러므로 여러분!
영적인 충만한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율법에 매이지 아니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18절)


2.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22-23).

그렇다면 도대체 육체의 일은 무엇이고
성령의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오늘 본문 5장 19절에서 21절을 통하여
육체의 일을 지적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은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1) 먼저 인간이라면 쉽게 빠져 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십시오.
2) 한 번 빠져 들면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음란과 호색이 그렇습니다.
분내는 것과 분쟁과 시기가 그렇습니다.
술 취함과 방탕이 그렇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21절 끝 부분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빠져나오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나는 못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성령님을 좇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성령의 소욕을 이루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의 결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흉년입니까?
올 가을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하고
아무런 수확이 없다고요?
따라합시다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24절).
그러면 여러분!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인내)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여러분!
이 열매들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합시다(25-26).

오늘의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거듭난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육체 가운데 사는 우리들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2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절 말씀 계속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삽시다.
성령으로 행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은 이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26절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서로 격동하며 투기하지 맙시다.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로 사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식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3-14)

그래서 우리는 전도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하는 삶!
아름다운 것을 지키고 전하는 삶이 성도들의 바른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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