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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시리즈 ③-지혜로운 자의 시간 / 잠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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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혜시리즈 ③-지혜로운 자의 시간 
본문 : 잠언 6:6~11 


오늘은 지혜시리즈 세 번째의 말씀이다. 지혜는 곧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지혜이다.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충만해서 이 세상 사는 동안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지혜로운 자의 시간이다. 누구든지 하루 24시간의 시간을 지나면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지혜로운 판단으로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어리석어서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바울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라고 말씀한다.

지혜있는 사람은 시간을 분별력있게 잘 사용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간다는 말씀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서 어떤 분이 잠자리에 들려는데 전화가 왔는데 그 내용은 “이른 아침에 당신 구좌로 1,440불을 입금할 테니 하루 종일 그것을 다 써 보시오.” 별 이상한 전화가 왔다 싶어 장난전화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튿날 저녁에도 전화가 왔는데 “당신계좌로 입금했는데 하나도 안 쓰셨더군요. 그래서 도로 빼냈습니다. 내일 아침 또 넣을 테니까 쓰십시오”라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확인을 해보니까 진짜로 그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썼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사흘째 되던 날 밤에 또다시 전화가 오기를 “제가 사흘 동안 당신이 쓰신 것을 보니까 매우 비생산적으로 쓰셨더군요. 그래서 사흘로 끝내겠습니다.” 얼마나 섭섭했겠는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여러분과 저에게 1,440불은 아니지만 1,440분을 주시고 계신다. 24시간을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도 지혜로운 시간관리가 필요하다. 본문에 나타난 개미의 교훈을 통해서 지혜로운 자는 시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찾아 보려고 한다.

먼저, 개미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한다. 개미는 부지런하게 살기에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사는 사람이다. 바울도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세월을 아끼라.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시간을 아끼라는 말씀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질을 잃는 것을 아까워하기 보다는 허송세월하며 시간을 잃어버린 것을 제일 아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일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기말 시험에서 낙제한 학생에게 물어보라. 한 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라.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자식이 열 명 딸린 날품팔이에게 물어보라.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다면 결혼식을 기다리는 신랑, 신부에게 물어보라. 일 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다면 기차 시간을 놓친 승객에게 물어보라. 일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다면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생존자에게 물어보라. 0.00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다면 올림픽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라.

어리석은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있자”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그 결과는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셨다. 이것은 역시 시간에도 연관이 된다. 어떤 사람은 장수의 복을 누려서 다섯 달란트의 시간을 받은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중년에 생을 마감하여 두 달란트의 시간을 받은 분도 있고, 어떤 사람은 청년기에 생을 마감하여 한 달란트의 시간을 받은 사람도 있다. 문제는 얼마간의 인생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큼의 시간의 달란트를 받은 것에 상관없이 주어진 달란트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바르게 사용하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간다. 약속 시간을 분명히 지키라. 만일 내가 친구하고 약속했는데 내가 삼십분을 늦었다면 나는 삼십분의 시간을 도둑질한 것이다. 나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면 나도 모르게 시간을 도둑질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왕이면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할 때인지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개미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지금 무엇을 해야할 때를 알고 있다.

전도서의 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무질서하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날에 따라서 창조하시는 내용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지혜이다.

준비하는 것도 때가 있다. 우리는 열처녀 비유의 말씀을 보라. 10처녀들 모두가 등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여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다섯 처녀는 준비하지 못하여 결국은 혼인잔치가 시작된 후에 기름을 준비하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준비하는 것도 준비할 때에 준비해야 된다.

기도하는 것도 기회가 있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시 32:6)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하기를 바란다. 지금과 같이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회개하는 것도 기회가 있다. 회개할 때에 하여야 그 회개가 효과가 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넘긴다. 예수님께서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잡혀서 고난을 당하게 된다.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생각한 가룟유다는 그 마음 속에 회개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예수를 몸값으로 팔아넘긴 은 30냥을 대제사장에게 다시 반납하면서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를 원한다. 마태복음은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자기의 죄가 용서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하여 죄책감을 느낀 가룟유다는 결국 자살하여 죽게 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회개하는 것도 기회가 있다. 회개도 적절한 때에 하여야 그 회개가 유효하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17절 말씀에 "너희의 아는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것에 대한 분별력이 있다. 내일로 미루지 말라. 내가 오늘 해야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오늘 하라.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내일을 모르고 사는 우리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미리 미리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자. 개미를 보라.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는데 시간을 사용한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데 시간을 사용했다.

나는 미리 미리하는 습관이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한번도 페이퍼를 늦게 내 본적이 없다. 학기말이라고 해서 바쁜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한가지이다. 시간 계획을 짜서 미리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기말 때에 한참 페이퍼를 낼 때면 나는 다 마무리 해 놓고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었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미리 미리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예수님도 33년의 생애를 사셨지만 3년을 위해서 30년 간 준비하셨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인간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닷새 동안 준비하시고 엿새째 되는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노아를 보라. 햇빛이 내려 쬐이는 날에도 노아는 방주를 지어 홍수를 준비하였다.

이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미리 미리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천국에 이를 때를 준비해야 한다. 여행을 떠나도 준비하는데 영원히 살 천국으로 향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이르렀을 때를 준비해야 되지 않겠는가?

프로이드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파선이 되었다. 다행히도 선원 중 한 사람은 파도에 밀려 어느 섬에 도달했다. 그 섬의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여 추장 앞으로 데려 갔다. 이 선원이 "이제 저들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 그 섬의 임금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그가 일시에 그 섬의 왕이 된 것이었다. 그는 임금의 자리에 앉아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얼마의 기간이 흐른 후 그는 신하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하느냐고." 그들의 대답은 "이 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왕을 세웠다가는 1년이 지나면 그 왕을 그 섬 가까운 무인도로 보내어 나오지 못하게 하여 그곳에서 죽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어떻게 하면 무인도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가를 궁리하였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한 척의 배를 짓고 거기에다 곡식과 과일나무를 가득 싣고 무인도로 가서 심어라" 했다. 임금의 명령이라 모두 순종하며 따랐다. 과연 1년이 지나자 그들은 임금을 그 무인도로 쫓아내었다. 그러나 그 섬은 먹을 것이 풍부한 신천지이었다. 그가 안전하게 또 배부르게 먹으면서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천국에 이를 때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신하고 바치고 전도하는 이러한 일이 결국 천국에 이르렀을 때를 미리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다.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끼라는 동사가 "엑사고라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뜻을 쉽게 풀이하면 건져 올린다는 말이다.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시간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태평양에 아무리 고기가 많아도 건져 올리지 않으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천국에도 남을 수 있는 것을 건져 올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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