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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자` / 신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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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신명기 33장 29절
제  목 : "행복자"

미국 스텐포드 의과대학의 필립하츠 박사가 연구한 발표입니다.

지구상의 60억 인구를 똑같은 비율로 줄여서 100명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00명중 57명은 아시아인,
          21명은 유럽인,
          14명은 미주인,
            8명은 아프리카인으로 나왔습니다.

또 52명은 남자 48명은 여자였으며,
  70명은 비기독교인, 30명은 기독교인,
  20명만 자기 집에서 살고 있으며 80명은 적정 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었
습니다.

그 중, 70명은 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이고,
    50명은 심각한 영양부족을 겪고 있어야 했고,
    1명은 앓고 있거나 죽기 직전이고 오직 100명중 1명만이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
니다.

이 조사에 의한대로
지금 내 집에 살고 있으며,
  먹을게 있고 글을 읽을 수 있으며,
  건강조차 하다면 아주 「특별한 사람」 임에 틀림없습니다.

더 나아가 전쟁의 위험이나 감옥에서의 고독 혹은 기아의 괴로움 등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세계 인구의 상류된 500만의 한 사람이 되는 「행운자」입니다.

그러면서 몸에 거칠 것이 있고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아이나 본인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거나 친구에게 식사한끼 대접할 수 있다면 지구상에서 8%해당되는 「부자」에 속한 것입
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곳에 앉아 있는 성도들은 객관적으로 조사에 의하더라도
아주 특별한 사람이요,
  상류된 행운자요,
  부자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한 행복자가 있습니다
즉 성도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했기 때문입니다.

앞선 행복의 가치 평가는 「소유」에 의했습니다.
즉,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서 특별나고 행운자고 부자로 조사되었습니다만,

1) 하나님의 가치 평가

하나님의 가치평가는,
「의미」와 「관계」에서 옵니다.

성도가 건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무식하고 가난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자라는 뜻입니다.

◎ 사도바울은 매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객관적 가치 평가로 따진다면 「불행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속에서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하며 「곤란의 의미」를 되새길 때 그
감옥에서 최고의 행복자였습니다.
아니 감옥밖에 있는 성도 보담 더한 행복자였기에

  빌 2:17-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
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했습
니다.

왜 성도가 절망하고 낙심합니까?
◎ 하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늘 아닌 땅의
◎ 객관적 가치 평가로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이 탓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행복을 잃어버리고 불행자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행의 한숨과 낙심이 가족과 사회에 전이되어 모두가 불행의 도가니에 빠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 '신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을 설명했습니다.
세상 도성은 물질적이고 물량적인 반면 하나님의 도성은 그 반대적입니다.
그래서 두 도성은 대치 관계요 대립의 관계를 성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인 만큼 하나님의 가치척도로 행복을 보아야만 하는 것입
니다.

2) 행복의 요인

성도의 행복한 요인을 보십시오.

① 이스라엘아
만왕의 왕 대신 하나님과의 새관계로 말미암는 신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천년을 더 산다해도 결코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이미 신민이 되었고,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라는 지칭 속에는 현재의 은혜만 아니라 영원한 기업의 상속자가 되었음
이 포함된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후사입니까?
성도 외에는 없습니다.

  딛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
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무엇인가요?
① 과거적으로 ->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우리의 구원이 보증하고 있습니다.

② 현재적으로 ->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지금 우리의 행복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불경기에 생업이 있고 사업에 소득이 있고 사고와 질병이 만연하여도
오히려 안연함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③ 미래적으로 ->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우리의 큰 원수가 누구입니까?
우리의 마지막 싸움이 언제입니까?
내가 죽음의 요단강을 건널 때입니다.
이때에 승리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 은혜를 입은 자가 없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된 성도뿐입니다.

그러므로 불행하다 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렸습니다.

다만 이 행복이 주어졌음을 믿는다면,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가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하셔야 됩니다.

또한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해야 됩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주어진 은혜와 행복자임을 알았기에 잠시 잠깐의 고난의 나락에서 신음할 때 불행하도다!
하질 않았습니다.

욥도 그랬습니다.
처절하기만큼 세상의 소유물은 그를 떠났어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그 행복
감으로 위기와 고난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하나님 사람답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평가로 판단하셔야 됩니다.

며칠전 야구선수 이승엽이가 홈런 56호를 쳤습니다.
그 장면이 TV에서 방영되었는데,
여러 시각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 홈런공이 얼마냐?
이승엽이가 얼마의 보너스를 받느냐? 하며 돈에 관심이 있었고,

어떤 이는 이승엽이는 꿈을 이루었으니 좋겠다!
아니 그 홈런 볼을 내준 투수는 평생 부담감을 갖고 가겠다 하여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갖
는 이도 있었습니다.
똑같은 사안이지만,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름 말이 나옵니다.
불행하냐? 행복하녀? 백지한장 차이로 행복하고 불행합니다.
세상 시각이 아닌 주님의 시각으로 보셔야 합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영적 사람의 증거입니다.
그래도 불행하다고 느껴지거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 놀라워」를 불러 보십시오.

그래도 행복감이 들지 않거든
「시편 23:6」를 의미 있게 암송해 보십시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3) 행복자의 삶

① 이 행복은 누려야 됩니다.
우리 속담에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너야 짜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말로써, 얼굴의 표정으로써, 그리고 삶으로써 누려야 합니다.
고백하고 표현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쯤 되면 어느덧 행복의 주인공이 됨을 알 것이며,
어느덧 「천국시 행복구 행복동 777번지」에 살고 있음을 남들도 알게 됩니다.

② 보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보은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뭇 사람들과 다른 점은,
사람만이 아닌 하나님께 보답하고자 하는 경외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죽을 일이 쌓였구나! 하는 불행의 험곡에서 행복자로 살도록 하심에
「주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를 염려해야 됩니다.

행복은 이미 주셨음을 감사하십시다.
10월을 행복자의 고백과 표현과 누림이 있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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