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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 마 26: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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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 성경본문 :마태복음 26:26~30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종교 미술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열두 제자가 좌우에 여섯 명씩 앉아 있고 넓은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떡 조각들이 널려 있는가 하면, 제자들이 잔을 나누며 예수님과 환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의 저자들은 하나 같이 이 성만찬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주간인 유월절 전날 밤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어느 집 큰 다락방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킨 채 제자들만 앉혀 놓고 이 뜻 깊은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성만찬을 집례하신 예수님께서 떡을 거머쥐고 축복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잔을 들고 사례하신 후 제자들로 마시게 하였습니다. 이때 나누어주신 떡과 포도주는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속죄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식을 거행하시면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며 이것이 최후의 만찬임을 말씀하셨습니다(29절).

한편 공관복음 저자들과 다른 시각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조명한 요한은 성찬식 행위보다 그 이면의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찬식을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발 씻기신 일과(요 13:4-14), 그 후에 예수께서 당부하신 새 계명의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요 13:34).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신 성찬식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의 성분을 규정짓게 하시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지니는 참된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Ⅰ. 그리스도로 연합된 공동체

「교회」(敎會)라는 말은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성경적 어원(ἐκκλησία)은 「부름 받은 무리」를 의미하는데 이를 설명하면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의 자녀로 불러내신 무리들인 것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불러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일 뿐 부름 받은 사람에게 어떤 특징이 있거나 공통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만 보더라도 그들은 성격이나 출신 배경이나 그들이 가진 소양이나 어느 것 하나도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 서로 큰 자라고 으스대거나(막 9:34), 질투하기도 하고(마 20:24), 위험을 당할 때는 자기만 살려고 뿔뿔이 도망가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마 26:31).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연합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1)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연합입니다.

성경에는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는가 하면 건물로도 비유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22-23에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 성도들은 몸이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4:16에는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면서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리 돌로 하고 성도들은 거기에 연결되어 지어져 간다고 하였습니다(벧전 2:4-6).

(2) 성별된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는 거룩한 집단입니다. 죄로 오염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구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무리 곧 성도(聖徒)라고 불립니다. 고린도전서 1:2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그러나 범죄한 인간이 스스로 거룩하여 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 되는 우리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4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구별하였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7에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속 곧 죄사함을 받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원래는 다 죄인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보혈로 사죄를 받고 거룩한 신분으로 연합을 이룬 사람들인 것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신비로운 연합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머리와 옴과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거기에는 골격과 힘살과 혈관 등이 서로 연결되어 몸을 지탱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 작용이 있어 몸 전체가 하나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교회의 유기적 연합도 매우 신비로운 요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소양이 다르지만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까지 서로 같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성령이 그 속에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4-6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고 하였습니다.


Ⅱ. 사랑으로 연합된 공동체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에베소서 5:22-33에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며 섬기는 것은 교회가 예수님께 하듯 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원리를 말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엡 5:32). 교회는 사랑으로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입니다. 교회의 성분을 알려면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성향을 아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사도 요한은 사랑에 대하여 가장 실제적으로 교훈 하였습니다. 요한1서 4:7-8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1서 4:10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의 실제라는 뜻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라면(요 3: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십자가 위에 내어주시고 살을 찢기고 피를 흘려서 대속의 제물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성찬예식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형상화하는 신령한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한 연합

다같이 부모의 사랑을 나누며 자란 형제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동기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더불어 종적(縱的)관계에서 사랑의 공급을 받은 자들로써 이것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횡적(橫的)관계로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가진 성만찬 자리에서 사랑으로 연합할 것을 언급하신 것도 그의 행하신 일과 더불어 실제적인 교훈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1:24에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 곧 한 덩이의 떡을 가지고 제자들이 서로 나누어 먹게 하므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같이 나누는 공동체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있어서 가장 큰 동인(動因)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고후 5:14). 골로새서 3:12-14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하였습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연합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성만찬과 관련된 예수님의 교훈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에 임하시면서 먼저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주인이 밖에서 들어올 때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상전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것은 너무나 파격적이고 주객이 전도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일을 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였습니다(요 13:13-15).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선포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3:34-35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Ⅲ. 그리스도의 이상을 이루는 공동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삼 년 동안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한편 제자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교회 설립을 선포하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6:18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교회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가르치는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마 28:18-20).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기 교회가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마 16:19).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께서 의도하시는 그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기관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입니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살아야됩니다(고전 10:31).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곧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4:2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경건한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준비하여야 되고 그 일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됩니다. 로마서 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2) 복음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을 훈련시켜 전도자로 쓰시고자 계획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그 형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4:19). 예수께서 열두 명의 제자단을 구성하시고 그들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사도」(ἀπόσтоλοѕ)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삼 년 간 제자들을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다음 그들에게 증거자의 사명을 주어 세상으로 내어 보냈습니다. 마태복음 10:6-7에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자들에게 성령과 권세를 부여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0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1에는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곧 하나님의 교회는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증거의 사역을 감당하는 기관입니다.

(3) 생명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운동의 산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본체입니다. 요한복음 1:4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0:10).

세상에는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멀리하고 죄와 마귀의 세력에 포위된 채 질식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진동합니다(눅 21:25).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새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복음의 소망을 제시하여야 됩니다. 그리고 회복되는 그들과 함께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여야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잃었다가 다시 찾는 새생명 운동의 감격이 어떤 것인가를 일러주었습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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