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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 저쪽을 향한 손짓 / 수 2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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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 저쪽을 향한 손짓
본문  여호수아 24:14~18


여호수아서 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우리는 이 설교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부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설교, 고별설교, 임종설교…, 중요한 설교이고 비장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에는 ‘강 저쪽’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찾아볼까요?

2절 뒷부분과 3절 앞부분,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14절 뒷부분,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절의 앞부분,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이 강은 유프라테스강을 말합니다. 요단 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공동번역성서 개정판」과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은 지금 읽어드린 말씀의 “강 저쪽에”라는 부분에  유프라테스 강의 이름을 넣고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에는 2절 뒷부분이 “옛날에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프라테스(Euphrates)강은 아시아 서부지역에서 제일 큰 강입니다. 터키․시리아․이라크 세 나라를 흐르는데 전체 길이는 2800Km에 이릅니다. 티그리스강과 함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달한 곳이고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 때 이 강의 이름이 매스컴에 자주 보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 저쪽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곧 갈대아 우르를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이곳에 살았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따라 그곳을 떠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강 저쪽’은 단순히 지리적인 차이, 위치의 차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상들을 섬기던 생활을 말합니다.
불신앙의 생활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어두움의 생활을 말합니다.
제자리걸음, 방황, 그리고 소멸을 말합니다.

강 저쪽과 이쪽은 우상들을 숭배하는 생활과 하나님을 믿는 생활,  불신앙과 신앙, 세속적인 생활과 영적인 생활, 어둠과 밝음, 제자리걸음과 주와 동행하는 생활, 소멸과 영생, 이와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엄격합니다.
6․25 때, 6월 28일 새벽 세 시에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습니다. 일찍 피난길에 올라 강을 건너간 사람들과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생겼습니다.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그로부터 석 달 동안 숨을 죽이고 숨어살거나 인민군에게 엄청난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끌려가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강 저쪽과 강 이쪽은 그 때 한강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던 사람들과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차이보다도 큽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끝내고 이제 나이가 많아져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강 저쪽의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강 이쪽의 생활을 충실히 해라, 섬길 자를 택해라’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교훈을 찾아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강 이쪽에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 이쪽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설교에서 족장시대로부터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하며  그때 그때마다 그 역사 가운데 섭리하시어서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율법을 지키라고 호소했습니다.
백성들도 그것을 알고 감사함으로 화답합니다.
16절과 17절과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니이다 하니라

아름다운 결단이요 화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뒤에 하나님을 떠난 일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배반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자주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아름다웠고 순수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시간이 종종 있어야합니다. 아니 자주 있어야합니다.
이런 시간이 우리의 영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 같은 아름다운 결단과 화답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결단을 하고 강 저쪽을 떠남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남으로 신앙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강 저쪽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부족과 국가들이 그곳 메소포타미아 평야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그 부족과 국가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웠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보다 크고 강성했습니다.

히브리 족속은 그 당시 여러 부족들 가운데서 세력이 매우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부족이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방랑객’ ‘떠돌이’ ‘유프라테스 강 저편에서 온 사람’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를 ‘하비루’라고도 불렀는데 어느 소설가가 「하비루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면서 이 ‘하비루’를 한자로 재미있게 적었습니다. ‘下婢淚’, ‘낮고, 종살이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형편인 이들이 강 저쪽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민족으로 우상을 섬기며 살았더라면, 이들은 얼마동안 명맥을 유지하다가 다른 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강 저쪽에 있는 나라와 부족들을 많이 봅니다.
중국, 아직 강 저쪽의 나라입니다.  최근에 선교가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강 저쪽이라고 해야합니다.
최근에 발표된 2003년 세계인구현황을 보면 중국의 인구가 13억 420만 명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는 흑호(黑戶)라고 하여 호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합하면 14억 안팎이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강 저편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믿음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직도 애니미즘, 정령숭배를 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티베트와 부탄 같은 나라입니다. 강 저쪽 깊은 곳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몽골은 샤머니즘의 지배가 강합니다.
제가 티베트와 부탄, 몽골, 이런 나라들의 이름을 드는 이유는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강 이쪽의 나라가 되지 않았더라면 한국도 지금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국제적인 위상도 이런 나라들 수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복음을 주셔서 우리 가정이 강 이편의 생활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음을 주셔서 내가 강 이편의 생활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6․25 때 국군이 평양에서 철수할 때 많은 북한 주민들이 대동강을 건너기 위해 결사적인 모험을 했습니다. 여기 이 한 장의 사진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북한 동포들이 탈북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세계와 신앙의 세계 사이에 있는 강을 건너는 일은 그것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강을 건너 믿음의 세계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두 주일이 지나면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주일에 많은 감사의 제목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감사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강 이쪽에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강 이쪽의 사람으로서 소속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송두율이라는 분이 ‘나는 경계인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남과 북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강 저쪽과 이 쪽에는 경계인이 없습니다. 우리는 강 이쪽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성도라는, 신앙인이라는 소속감을 분명하게 가져야합니다.
강 이쪽에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소속감이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강 이쪽의 사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일을 설명하고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해 주신 일들을 잘 설명해 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들은 결단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 '그러므로 '는 성경의 기본구조이기도 합니다. 많은 성경들이 앞부분에서는 교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실천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그러므로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강 이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며, 소속감을 분명히 하며 강 이쪽에 합당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내 안에 강 저편의 요소가 없는지 살펴서 씻어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은혜로 섭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 한 여호수아는 이제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진정으로 섬길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14절 뒷부분에서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라고 했는데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우상들을 그대로 섬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믿기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은 다음에도 점쟁이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운명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강 저편의 요소들입니다.

여호수아는 오늘 이 설교를 세겜에서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당시 이스라엘의 중심지는 길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세겜에 백성들을 소집하고 최후의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은 세겜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강 저쪽,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창세기 12장 6절과 7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세겜은 요셉의 뼈를 묻은 곳입니다.
여호수아 24장 32절입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요셉의 뼈를 묻었다는 것은 출애굽의 위대한 일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겜은 무엇보다도 야곱이 믿음을 새롭게 한 곳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오늘의 설교를 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 동안의 신앙체험을 생각하며 경건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에 이방 신상을 섬기게 되었고 정결하지 못한 요소들이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만용을 부린 일 때문에 다시 한 번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야곱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합니다.
창세기 35장 2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이 강 저편의 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생활을 체험했고 가나안 생활을 체험했습니다, 더 많은 이방 신상들과 우상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이 그들 가운데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싶어서 이미 과거 청산의 역사가 있는 땅 세겜에서 강 저쪽의 요소들을 청산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성경 주석들이 오늘 본문에 네 글자로 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언약갱신’(言約更新)입니다. ‘약속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 섬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신다’, 이것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약속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약속을 새롭게 맺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을 새롭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하나님과 언약갱신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응답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 또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이 내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잘 지키셨음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가 언약갱신의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과연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새롭게 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씻어내고 이제 새롭게 출발합니다’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강 이쪽, 믿음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내 안에 청산되지 않은 강 저쪽의 요소들을 찾아내서 깨끗하게 씻어내겠다고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강 저편의 사람들에게 ‘건너오시오’ 손짓해야  합니다.

우리는 강 저편에 있는 사람들, 강 저편에 있는 나라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소. 강을 건너 이리로 오시오. 믿음의 세계로 오시오’ 줄여 말해서 ‘예수 믿으시오’ 해야합니다.

우리는 한 번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해서 그렇게 말해야합니다.
여호수아는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섬기라”는 말, 또는 그와 비슷한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14절 앞부분,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14절 뒷부분,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절 중간 부분,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본문 밖의 23절 뒷부분에서도,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여호수아가 누구입니까?
가나안 정복을 완성한 대영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은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믿어요!’ 한 번 말하고 그친 것이 아니고 네 번이나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네 번 전도를 했으면 우리는 같은 사람을 향해 마흔 번, 아니 그 이상 전도해야합니다. 한 번 하고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열 번은 찍어야 한다’ 이렇게 바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예수 믿으세요’ 해야합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오늘입니다.
이번에 결단하도록 해야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만 섬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유일한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다른 신들을 말할 때는 어떻게 말하는지 보세요.
14절 뒷부분입니다.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15절 앞부분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신들” 복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신처럼 여겨지는 존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겨야 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입니다.
우리는 여호와만 섬겨야합니다.

여호수아는 “섬기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을 섬기다라는 단어가 여덟 번이나 나옵니다. 우선 14절에만 두 번이나 나오지요.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라’고 하실 때 이 ‘섬기다’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애굽기 4장22절과 23절 앞부분,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모세는 바로 앞에 설 때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
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알려 주어야합니다.
돈을 섬기지 말고, 권력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먼저 모범을 보입니다.
15절 끝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의 이 설교가 특히 감동적인 이유는 자기가 모범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이와 같은 고백은 참으로 큰 효력을 발생합니다.
여호수아는 솔선수범했습니다.

여러분 강 저쪽을 향해 부지런히 손짓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리로 건너오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자기를 가리킬 수 있어야합니다. ‘나를 보시오 강 이쪽에서 이와 같이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소!’

우리는 다음 주일에 이웃 초청 큰 잔치를 합니다. 이웃 초청 큰 잔치는 강 저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17장에는 ‘어서 돌아오오“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 찬송은 석 절로 되어 있는데 매 절이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것을 ‘어서 건너오오 어서 건너만 오오’ 이렇게 바꿔 부르며 간절한 마음으로 강 저쪽을 향해 손짓하시기 바랍니다. 

아까 ‘우리는 강 이쪽 사람으로 소속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소속감은 배타적인 소속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을 닫아거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문을 열고 맞아들이는 개방적 소속감이 되어야 하고 포용적 소속감이 되어야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강 이쪽에, 믿음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남아있을 지도 모르는 강 저쪽의 요소들을 씻어내시기 바랍니다.
강 저쪽의 사람들을 향해 강 이쪽으로 오리고 부지런히 손짓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웃 초청 큰 잔치를 앞두고 특별히 이런 일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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