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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부끄러워 말자 (딤후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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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딤후 1:8-14
▶ 복음을 부끄러워 말자 

새생명축제를 우리들의 축제뿐 아니라 하늘의 축제와 새생명들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 2주전에는 새생명축제를 갖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지난주에는 새생명축제에서 바른 전도자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들 가운데는 전도하는 일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복음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복음 전하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 예배드리고 성경 공부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전도한다는 것은 도저히 부끄러워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서울교회 성도들은 점잖으신 분들이 많아서 특별히 전도는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8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 주를 위하여 갖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본문 말씀에서 세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복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능력 때문입니다.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이 구원의 성격은 거룩하신 부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원은 영원한 때 이전부터였고 그 근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만 들어도 이 복음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10절에 이러한 구원이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말미암아 나타났다고 했고, 그가 인간의 최대의 적인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충분히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복음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하며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이 수많은 고난을 겪고 그 환란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 이유는  복음이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도구가 되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되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증거 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전하는 것이 남을 속이고 남을 해치는 것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와서 좋은 약을 권하고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좋은 보험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도 자기가 하는 일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고 분명히 지금 돈을 좀 쓰면 건강에도 유익이 되고 장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또 그것을 분명히 확신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비록 돈 받고 파는 것이지만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말을 합니다. 오히려 당신이 지불했지만 수지맞았다면서 아주 열정적으로 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도움을 주는 것을 권하는데도 그렇게 한다고 하면 우리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고 영생을 주는 이 복음을 전하는데 왜 부끄러워  하겠습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우리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예수를 믿고 영생을 누리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의 모든 삶을 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되기까지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혼자서 저절로 예수 믿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만일에 복음을 부끄러워했더라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었겠으며 오늘날 우리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앞서서 우리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11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복음의 반포자, 사도와 교사로서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란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을 받으면서까지 그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사람들에게 증거 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졌고 또 그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받았던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져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는 많은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제 시대 에 많은 성도들이 피 흘리면서 그 복음을 지켰고 6.25때도 ,정말 못 먹고 못 살 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계속 전파함으로써 이 땅에 이렇게 수많은 교회들이 생기게 되었고 우리들도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앞서서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전해 주었기에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우리 자녀들과 이웃들, 후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16절에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참으로 위태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5절에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 이런 것들을 부끄러워해서 복음 사역을 돕지 않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들의 가정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사도바울을 돕고 또 복음 전하는 일에 이모저모로 함께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도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전도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한 때 우리 한국 사회는 전도의 붐이 있어서 교회들마다 열심히 전도하고 성도들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들도 점점 전도하지 아니하고 전도하는 사람들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옛날처럼 무슨 핍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람들이 이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보다는 이 세상의 것들이 더욱더 흥미를 주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확신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이 생겨서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 같으면 버스 역, 기차역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요즘에는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꾸준하게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렇게 전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재직들이 많이 계신데 재직들 가운데서도 전도의 부담감 때문에 지역전도부에는 지망을 잘 안합니다. 지역전도부는 모여서 늘 그 지역을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지역전도부의 활동으로 새생명축제가 준비되어지고 있는데 그분들을 볼 때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밖에 20년 동안 계속 되어지는 전도폭발훈련을 보면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매 주일마다 전도현장에 나가서 실제로 전도를 하면서 훈련을 갖는 일들은 그렇게 많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밖에 농어촌 선교부나 군선교부, 의료 선교부나 사회봉사부서에서 봉사하고 전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봅니다.

지난  여름에 경상도 선교 현장에 제가 갔었습니다. 우리 농어촌 선교부와 청년1부가 연합해서 그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면서 봉사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속에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요즘에는 청년들이 더 열심히 전도를 하는데 경상도 선교를 하고 돌아온 후에는 이제는 캠퍼스로 돌아가서 캠퍼스 전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 캠퍼스 전도를 우리 청년1부에서는 캠전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 청년2부와 청년1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센트럴시티에 나가서 전도를 합니다. 그 전도를 총력전도라고 하는데 줄여서 총전이라고 말합니다. 캠전이나 총전이란 말들이 교회 안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이것은 다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전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전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각하시겠지만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젊은이들이 전도하고 있습니다.

옛날 엘리야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바알 앞에 무릎을 꿇는 것 같았고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아있는 것 같았기에 하나님 앞에 하소연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직까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는 7천명이 이 땅에 남아있다고 엘리야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직도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유지되는 것이고 지금도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교회에 새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왜 부끄러워해야 되겠습니까? 이 복음이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데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예수를 믿을 수 있었는데 왜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합니까? 지금도 바쁘고 힘든 가운데에서 복음을 증거 하려고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만 복음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말씀 13절과 14절에서 그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13절과 14절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를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 네 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었는데

첫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인데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번 예수님을 믿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기에 그 주님을 굳게 붙잡고 주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12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를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에게는 이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말씀도 배우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랑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도 포함되겠지만 우리 주님을 향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복음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데 사랑이 없으면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까지 했던 사람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끌려갈 때에 뒤를 쫒아갔다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주님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했습니까? 주님을 믿는 마음은 있었지만 주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만났을 때에 예수님이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신다’고 세 번이나 진실 된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기 까지 순교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동북부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의 얼굴은 흉직하게 얽어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자기 어머니의 흉직한 얼굴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 딸은 대학에 진학해서 어머니를 떠나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는데 딸을 보고 싶어 하던 어머니가 이 딸이 다니던 캠퍼스로 찾아갔습니다. 어머니를 보게 된 딸은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서 친구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둘러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한 어머니는 묵고 있던 호텔로 딸을 불러서 얼굴이 얽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습니다.

부부가 외출 중이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났고 아무도 구할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던 형편의 딸을 이 어머니가 불 속에 들어가서 구해 나오다가 화상을 입게 된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딸은 뉘우치고 어머니를 장하게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나를 불 속에서 건져낸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어머니라고 소개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처럼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자기를 버려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기까지 하셨던 주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늘 부족한 것을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어떠한 사랑을 쏟아 주셨는지를 늘 생각하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 많은 사람들 가운데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자신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해서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에 합당하고 모범된 삶을 지녀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절대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육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막 8장 8절에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몸을 버리시고 모든 것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며 우리만 아니라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데 우리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서 가르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고 우리 모두가 복음을 자랑하며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전하며 살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굳세게 하며 사랑을 확인하며 삶을 바로 갖추고 성령을 힘입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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