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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충만하면 (엡 5: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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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하면 (엡 5:18-21)


요즘 기독교의 각 교단들마다 야단들입니다. 부흥시키겠다고 . . . .그런데 부흥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성령운동이 일어났던 7,80년대 이후 그동안 교회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전도하고 성장을 애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기'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하나님이 더욱 강하게 역사하실 때인 것 같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찾아야 할 때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당시 신학도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기도와 말씀과 전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니까 교회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됩니다.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음도, 하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결과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TV광고를 보면 침대안에 진디물을 현미경으로 보여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것을 현미경으로 보니까 토실토실한 돼지 만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칫솔을 현미경으로 보니까 더러운 병균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입에 넣고 양치질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을 갖는 것,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소망이 되시고 부활이 되시고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는 것을 믿는 것도 보이지 아니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또 지금도 보이지 않는 천군 천사가 우리를 도와 줍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자의 힘인 것입니다.
인간은 다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고 영적인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1. 성령이란?

'성령'이라는 말은 '바람'('루아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마는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바람의 힘과 방향을 알 수 있듯이 오늘 우리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게 됩니다.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결과를 보고 성령이 역사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는 물결을 보고 어디에서 흐르는지 알수 있듯이 말입니다. 인간에게도 삶의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경향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계시는 것과 성령의 충만은 다릅니다.
불신의 사람들에게는 마귀의 바람이 불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바람이 부는 사람은 미워하게 됩니다. 싸움을 만듭니다. 쾌락을 즐깁니다. 세상의 정욕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가 역사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충만도 있지만 마귀충만도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충만이란?

성령충만 받는 것은? 성령의 다스림, 지배받음, 통치받음, 순종함을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신앙으로 살아오게 하는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돕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은 사탄(악의 영)이 지배합니다. 마귀가 지배합니다.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연관됩니다. 그리스도의 주권에 헌신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고, 나의 삶을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고 계십니까?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에게 나의 삶의 통치권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현상과 술 취함에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의 특징과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비슷합니다.

1) 기쁩니다(기분이 좋습니다) 기뻐서 노래가 나옵니다. 노래를 못하던 사람들도 한잔 들어가면 노래가 줄줄 나옵니다. 2) 주기를 좋아합니다. 술값 걱정을 안합니다. 지갑의 돈도 막 줍니다. 이것이 술에 충만한 사람들의 모습니다. 아직 덜 취한 사람들은 택시비 생각하느라고 주지 않습니다. 3) 담대함이 있습니다. 3) 말을 잘합니다(대화가 잘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때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행2:13)고 하였고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도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술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무리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도. . . 돈많고 지위가 높아도. . .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그 분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분이 지배자가 되어야 충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 심령의 집안 모든 열쇠 뭉치를 그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손님으로가 아니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분에게 마음의 열쇠를 몇 개나 내어 드렸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성령 충만의 증거를 오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상한 현상을 보았다거나, 아니면 이상한 음성을 들었다는 것, 또는 이상한 느낌을 얻었다는 것 등으로 성령 충만을 말하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오감을 이용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표준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뭔가를 보고 듣고 했는데 그 사람의 인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성령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연 다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추구하는 바가 다릅니다. 행동하는 것이 다릅니다.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성령충만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들이 맺어지게 됩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령충만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 삶의 완전한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들였을 때 그분은 내 안에 사시고 나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 사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존재와 삶에 그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3. 성령충만함으로 얻는 축복들.

1) 노래와 기쁨이 있는 삶을 사게 됩니다.(18,19)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것이 성령충만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성령충만 하지 못한 사람들도 노래를 부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노래, 신세를 한탄하는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노래,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래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노래가 아닌 노래이지만 그 노래를 부르면 힘이납니다. 그 노래를 부르면 마음에 근심이 사라집니다. 신령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는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부를 노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루에 몇장 정도 찬송을 하십니까?
성령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늘 찬송이 있습니다.

2)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받지 않을 때에는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 바꿔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불평하고 원망하기를 잘 합니까?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3) 피차 사랑하고 봉사하게 됩니다.(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말씀 후에 바로 부부의 문제, 가정 문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흔히 봉급을 주는 사장에게는 복종합니다. 권게자들에게는 아부합니다. 그런데 부부관계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믿는 가정에서도 문제가 많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대듭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으로 다스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신앙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결혼식 때는 마음이 딴곳에 가 있습니다. 주례목사님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어제 어제 집안 결혼식이 있어서 모 호텔에서 가졌는데 '결혼 예배'라고 했는데 겷ㄴ에배 중에 음식이 들어오고 먹고 마시고 소란하고. . . 이런 분위기에서는 결혼예배가 도저히 되지 않는 것입다.
우리나라 가정의 이혼율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미국다음으로 이혼율이 많다고 합니다. 세계2위. . . . .그 이유는 '피차'간에 문제가 많습니다. 이유없는 무덤이 없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이혼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때 주례는 하나의 의식절차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맘대로 행동, 수틀리면 이혼. . .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것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아내는 남편을, 성령충만한 남편은 아내를 섬깁니다. 또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피차'입니다. 종들은 주인을 위해 봉사하고 주인은 종들을 형제로 알고 봉사합니다. 이런 사랑과 섬김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성령충만함으로 오는 결과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충만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4) 전도의 열심히 생깁니다.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면 믿음이 생기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약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부터는 얼마나 강력하게 능력이 임하는데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예수이름으로 명하니 벌떡 일어섰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와 요한의 병고친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시기하고 위협을 느낀 유대교지도자들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요한은 '우리가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겠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안을 수 없소.' 하고 말합니다.
그들이 풀려나자 교인들이 일심으로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기도했더니 더욱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교회는 나날이 능력이 있게 되고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19세기 미국 교회에 대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챨스 피니 목사님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거짓된 생활, 외식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 숨기고 있는 죄, 다른 말로 하여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방해하는 죄의 세력을 제거하면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3) 육욕적인 생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들어가서 받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죄를 가지고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먼저 나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된 생활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4) 성령을 거역하고, 근심케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신을 더럽히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충만히 거하시고 일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5) 성령 충만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간절히 사모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갈구하며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행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모하며 말씀을 듣는 무리들에게 임했습니다. 그 말씀을 깨달아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성령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 . . .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을 간구해야 합니다. '로또 당첨'을 구하지 마시고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6)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 불순종하고 비판하고 흠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 충만한 생활을 할려면 말씀 읽고, 듣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행 10:44 -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
성령 충만은 모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 아이. . .목회자, 평신도. . 누구든지. . .다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
'전도'는 중요한 성도의 큰 의무요 명령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충만하면!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
전도를 함에 있어서도 해야 할 순서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사모하시고 간구하십시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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