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평화를 누리라 (요 20:19-28)

  • 잡초 잡초
  • 225
  • 0

첨부 1



본문말씀 : 요 20:19-28
제목 : 평화를 누리라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 .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 .

여러분의 기도로 이번에 제가 23개국 기독교 여성 목회자 300여명과 모슬렘 여성 지도자들이 모인 국제 평화대회에 잘 참석하고 왔습니다. 아마 기독교와 모슬렘 사람들이 함께 평화대회를 개최한 전례가 없을 것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기독교는 기독교의 평화관을 말했고, 모슬렘은 모슬렘의 평화관을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만으로는 평화를 만들 수 없다. 정의를 주장한다면 계속 서로를 죽여야 한다. 기독교는 복수의 사이클을 끊고자 한다. 예수님이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용서로 그 사이클을 끊으셨다. 스데반도 자기에게 돌팔매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용서를 빌며 죽음으로써 그 사이클을 끊었다. 사도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네 원수를 위하여 선을 베풀고,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 삼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평화이다.” 반면 모슬렘 지도자들은 “전쟁과 갈등이 있는 것은 정의가 없기 때문이므로 정의가 구현될 때까지는 평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모슬렘 국가에서 기독교 지도자를 300명이나 초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한국교회의 여성 목회자들이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여성들이 대단하지요. 친교시간에는 나눠준 소고를 함께 치며 흥겹게 춤추며 찬송했습니다. 검정 옷으로 온 몸을 감싼 채 눈만 빠끔 내놓고 긴장해 있던 모슬렘 지도자들은 성령에 충만하여 자유롭게 즐기는 기독교 여성들을 보고 나중에는 “당신들의 종교가 참 괜찮은 것 같다”고 부러워하더군요. 회의를 마친 후 이란 정부가 관광을 시켜주었습니다. 다니엘, 에스더, 하박국, 요나의 무덤과 흔적들을 보았는데 얼마나 잘 돌봐주는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란 여자들은 무조건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긴 치마를 입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조심한다고 했지만, 목과 발목이 좀 보였다고 현지의 신문에 났답니다. 그래도 이란은 상당히 개방되었고 인권이 많이 신장된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이란의 여성운동가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요. 대학생 중 65%, 변호사 중 70%, 공무원의 60%가 여자여서 법으로 여성이 50%를 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교분리가 안된 이란은 성직자들이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런데 지난 번 선거 때에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개혁파들이 당선되었습니다. 이란은 지금도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모슬렘의 성직자들에게 확정 받아야 한답니다. 거부하면 무효가 된답니다. 대부분의 이란 국민들이 이런 정치체제를 싫어하지만 드러내 놓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장관의 말이 “종교는 순수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더러운 것이다. 깨끗한 종교와 더러운 정치가 합해져 둘 다 더러워졌다. 우리 국민들은 몇 사람의 손에 정치를 맡기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정교분리를 원한다. 그러나 내가 그랬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변화 중의 하나가 이번에 대회였습니다. 저는 명예대회장으로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계속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슬렘은 땅을 내고 한국교회는 예배당을 지어서 그곳에서 모슬렘과 기독교가 만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란의 한국 선교사는 현재 5명인데, 한 분은 전통적인 선교의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이란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워 부통령에게 보냈더니 부통령이 하도 감명을 받아 그 분을 부통령실에 소속시키고 그 분을 통해서 여러 가지 국가 경제계획을 시행하고 있답니다. 아주 고차원적인 선교지요. 이번 일도 그 분 때문에 성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두려움, 근심, 걱정, 초조, 긴장 속에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평화의 축원이었습니다. 21절에서 두 번째 평화를 기원해 주셨고, 26절에서 세 번째 평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평화를 날마다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란에도 평화가 없어요. 아일랜드에도 카톨릭과 개신교의 싸움 때문에 평화가 없어요. 콩고, 수단, 라이베리아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6-7개월 동안 이상하게 기성세대와 젊은이 사이에 갈등이 심각해졌습니다. 좌익과 우익이 생겨서 광복절 행사도 따로 진행했습니다. 노조간에도 극심한 갈등이 있습니다. 북핵문제도 일조를 하지요.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때인데 엊그제는 대통령마저도 재평가를 들고 나와 국민들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누군가 욕을 먹어도 이 나라를 소신껏 끌고 나가주어야 하는데, 만약에 불신임이 되면 어떻게 하지요? 혼란이 많겠지요. 우리 주위에는 평화라는 것이 잘 없습니다. 고통과 싸움뿐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평화 선언을 들으며 평화를 생각하고, 말하고, 도모하고, 평화를 위해 수고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제가 이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모슬렘이든지 불교든지 힌두교든지 심지어 무신론자라도 평범한 사람은 다 평화를 원한다. 먹을 것과 마실 것, 일할 직장과 사랑할 가족이 있는 보통 사람은 평화를 원한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평화를 깬다. 지도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일반 국민들은 할 수 없이 자식을 전쟁터로 보내야 한다. 그래서 조심해야 된다.” 그런데 모슬렘의 한 여성도 “보통 사람들은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어느 나라든 정치적 야망을 가진 지도자들이 문제다”고 말하더군요. 권력자들이 국민의 평화를 깨뜨리려 하면 국민이 막아야 됩니다. 지도자가 한 번 결정을 잘못하면 온 국민이 다치고 괴로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자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사회를 망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와 비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이 땅에는 불안, 긴장, 갈등이 있어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4:7)이 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의 머리로 상상할 수 없는 영적인 평화입니다. 폭풍우 속에서 제자들은 벌벌 떨고 아우성을 쳐도 푹 주무시는 예수님의 평화, 그것이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여러분과 제 인생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는 예수님을 통해서 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두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화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근본적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영원히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를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이 평화가 우리 가슴 속에 있으면 그 때부터 성령께서 역사하시므로 평화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 안에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평화,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 성령 안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할 때 우리는 주변에 전쟁과 갈등과 두려움이 있어도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의 평화도 주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향해 “잠잠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비도 오고 햇빛도 나고 농사도 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치유를 통해서도 평화를 주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느니라. 네가 편안히 가라”(막5:34) 하십니다. 우리의 몸이 아플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고쳐 육신의 평화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육체에도 임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기 바랍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알지 못하던,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믿음 안에 있는 평화”입니다.

얼마 전 40대 초반의 주부에게 두 번째 전화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분에게 평화가 없더군요. 남편이 막내아들인데 남편과 일찍 사별한 시어머님이 그 막내아들을 기쁨과 소망으로 삼고 살아오셨습니다. 근데 웬 젊은 여자가 그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갔으니 참을 수가 없어서 사사건건 트집 잡고 욕을 하신 것입니다. 이 며느리가 도저히 살 수 없어 도망을 쳤다가 제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제가 잘 달래서 들여보냈었지요.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시어머님이 예정보다 자기 집에 보름이나 먼저 오신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오신다니까 당황이 되지요. 그런데 그 분이 “목사님, 이번에는 편안해요” 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제가 매주 성경공부를 하는데 지난주에는 다윗이 원수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배웠어요. 제 시어머니가 원수 같아도 다윗처럼 해보자는 도전이 생겼어요. 그래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어머니를 대했어요. 제 마음이 편안합니다. 목사님께 제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전화를 했어요” 하지 않겠어요?

인간의 지각에 뛰어난 평화란 말씀 속에서, 기도 가운데, 찬송 가운데, 성도들 간의 교제 가운에서 힘이 생겨서 누리는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평화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어지럽고 평화 없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가정들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남의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십니다. “만약에 그들이 받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에게 돌아오리라”(마13:13) 하십니다. 저는 하루에 한 끼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평화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평화 없는 하루는 너무 깁니다. 잠깐 살아도 마음속에 평화를 갖고 살아야지요. 가정생활의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됩니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이 나오거든요. 그러므로 우리는 “내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가 매일 지속되게 하시고 내 가정이 평화롭게 하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자꾸 평화를 심어라. 평화를 심는 사람은 평화를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축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롬2:10) 하였습니다. 즉 믿는 사람의 입에는 언제나 평화의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원하고 구하고 말하고 행하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모두 평화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3절에 보니까 “서로서로 평화하라.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늘 평화를 추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어떻게 하든지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고 서로의 평화를 기도하면서 서로서로 평화롭게 살려고 작정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평화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무장하여 강한 사람에게 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강한 자가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 궁전을 지키면 그의 재산이 평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내가 무장이 되어 있어야 내가 평화롭고 내가 평화로우면 영적으로 강하니까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즉 힘을 얻어 강한 자가 된다는 것이에요. “진리의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가지고 기도와 간구로 평안의 복음을 전한다.” 즉 영적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으면 마귀와 세상과 죄성이 공격을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약해져 있으면 작은 일에 쉽게 평화를 잃습니다.

평화를 위해 완전무장하지 않으면 평화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마14:32). 즉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조공을 바치든지 항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말씀과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로 날마다 강건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떠한 적도 넉넉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3장 15절에 “하나님의 평화가 네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 하였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우리를 평화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이 험한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평화가 나를 온전히 다스려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이 평화의 사람들이 되어서 평화롭게 살다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떠나시기를 원합니다.

노년의 시므온은 “주의 종에게 평화 안에서 떠나게 하시니이다. 내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나이다”(눅2:9)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맛본 사람들은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평화롭게 떠나게 떠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믿음과 성령에 충만하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아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발아래 굴복시킬 것입니다. 세상과 사탄과 죄성은 평화의 적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종말에 예수님은 사탄과 사망과 죄를 완전히 무찔러서 영원한 평화를 여러분과 저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십시오. 서로 평화를 누리십시오. 나 자신 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철저하게 날마다 지배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으로 흘러가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로 흘러오기 원합니다. 우리 민족이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지배하는 평화로운 민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