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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초를 반석 위에! (마 7: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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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를 반석 위에!
마7:23-27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산상 수훈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24절을 보면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이 결론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제자다운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 생활의 주초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초가 왜 중요합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개의 집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이 집의 공통점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이 두 사람은 모두가 집을 지을 필요성을 인식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 사람이 모두 신앙 생활의 필요성을 깨달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신앙 생활을 집 짓는 것에 비교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사실 이 집이라는 것은 사치품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우리의 기분이나 오락을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취미가 아닙니다. 절대적 필요에 의한 것입니다. 요즘 신앙 생활을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신앙의 필요성을 이런 취미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생존의 수단으로 이 신앙 생활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벌코프는 말하기를 "인간은 치료 불가능한 종교적 존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존재하는 한 종교는 영원히 인류와 더불어 존재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무신론자도 신에 대한 필요성은 마음속에 지을 수 없는 향수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 무신론자 협회의 회장인 메들린 머레 오헤이라(여자)라는 철학자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반크리스찬 운동의 리더인데 그분이 몇 해 전에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면 안 된다라는 취지 하에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금지 운동을 벌리고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법정에서 패소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카고 법정에서 마지막 판결에서 오헤이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무신론자도 사실 자기가 법정에서 패배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겼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에 승리하자 그 사람이 놀래 가지고 뭐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너무 너무 좋아서 법정에서 소리쳐 이렇게 말했습니다. "oh! my God!"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자들에게 화제가 되어서 신문에 대문짝처럼 났습니다. 그 신문에 이렇게 기자들이 썼습니다."승리의 축하를 하나님께 돌렸다!" 여러분 그분이 무엇입니까! 무신론자입니다. 그런데 그 승리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도 신에 대한 향수를 지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공통점은 이 두 집이 나름대로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처음 등록한 후에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신앙의 틀이 잡혀갑니다. 그리고 그 어떤 형식이 내 삶 속에서 적응되고 갖추어 집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내 신앙이 완성된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이 정도 되면 누가 보더라도 자연스러운 그리스도인으로서 내심 안심하고 이젠 마치 다 배운 사람처럼 그 자리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인정을 해 주고 가끔가다가 "믿음이 좋다"는 등 "큰 일군이..!"라는 등 인정을 합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두 사람!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지어 놓은 두개의 집이 외형적으로 볼 때에 똑같은 집으로 보여 졌던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제는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설계도도, 크기도, 모양도, 모든 외형적인 모습이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잘 완성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오늘 본문에 말씀을 왜 하셨습니까! 이렇게 외향적으로 다 완성된 것처럼 보이고 그것으로 만족 해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마7:21절을 볼 때 우리가 충격이 됩니다.
우리가 예배도 잘 드립니다. 십일조도 잘 드립니다. 기도도 잘 합니다. 찬양도 잘합니다. 신앙 고백도 거룩하게 "주여!"하고 합니다. 이런 거룩한 행위들을 자랑스럽게 합니다. 열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불법을 행한 자들아 나를 떠나라 나는 네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실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2. 이 집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이런 외형적인 공통점에 비하여 그 차이점이 사실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시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첫째는 이 집을 짓는 과정에 투자했던 노력의 차이를 강조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모래 위에 지은 집을 생각해 보십시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비교하여 볼 때에 훨씬 쉽게, 빠르게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얼마나 땀을 흘리고 수고를 많이 하였겠습니까! 이미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거의 완성하여 갔을 때에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이제 겨우 기초를 놓았을지 모릅니다. 더 많은 수고!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쉽게 집을 지어 거의 완성되어 가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을 보고 어쩌면 조롱했을지도 모릅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짓느냐!"고 했을 것입니다. "당신들을 재료를 너무나 낭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조롱을 하였을지 모릅니다. 놀림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대충 신앙의 집을 짓는 사람보다 좀 더디지만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끄덕도 없는 그런 신앙의 집을 짓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의도를 보면서 우리의 신앙의 집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땀과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반석 위에 집을 짓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눅6:48절에 보면 같은 본문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냥 "반석 위에 집을 지었다"라고 하지 않고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그 반석 위에 놓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신앙의 집을 짓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깊이 파는 수고와 땀을 통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짓듯이 그런 신앙의 집을 짓고 있습니까!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흔들리고 요동하지 않는 신앙의 집을 짓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수고하고 투자하셨습니까! 과연 내 신앙의 집은 그런 집입니까! 그럭저럭 지은 집입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요점인 것입니다.

둘째 차이점은 시련을 견딜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의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나오는 말씀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라는 말씀입니다. 결국은 두 집의 차이점이 들어 나고 말았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났습니다. 그 무서운 것이 그 집을 강타했습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아니.." 하였습니다. 아직도 견고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였습니다. 여기에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딪히매..."라고 하였는데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역경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해 온 신앙! 내가 배워 온 신앙!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이 얼마나 견고하고 반석 위와 같은 참된 신앙인가 아니면 위선적이고 부실한 것이냐!"는 역경의 때에 들어 나게 되어 있습니다.

2002년도에 자살로 죽은 사람은 모두 8천6백31명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1998년(8천5백69명)보다 늘어났습니다. OECD 회원국 중 2위로 자살률이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김창윤 교수는 "자살률 증가는 최근의 정치. 경제. 사회의 불안과 관련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지금 곳곳에 어려움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청년 실업률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온 민족과 나라가 역경의 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확신하기는 이 역경이 내가 지금 어떤 신앙 위에 서 있는가를 테스트 받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테스트에 어떤 이는 모래 위에 집처럼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한 비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무너지지 아니하여 오히려 이 역경 중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기도 생활하고 전화위복 되게 하실 줄 믿고!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믿고, 모든 염려 근심을 주께 맡기고 신앙 성장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입니까! 경제적인 비바람! 실직의 비바람!  병고의 비바람! 내 마음에 상처를 내는 시험!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그런  사건 앞에서 여러분의 신앙의 지금 어느 쪽입니까! 어떤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이런 비바람 속에 단단하게!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신앙!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찬송과 기도가 가능한 신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니 반드시 하나님께서 행한 데로 갚으시리라 믿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끓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승리의 모습이 가능합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바로 그 질문을 지금 주님이 우리에게, 헌신하는 여러분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경 중에서도 빛날 수 있는 신앙! 아무리 나의 생존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 앞에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신앙! 무서운 시련 속에서도 보석 같이 빛나는 신앙! 여러분이 그런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 이제 결론적으로 기초가 이렇게 중요한데 그 기초는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오늘 본문 24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두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듣고"라는  동사와 "행한다"라는 동사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강조하여 말씀하신 동사는 어느 것이겠습니까! 바로 "행함"이었습니다. 들음이 아닙니다."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입니다. 듣고 행하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들음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잘 듣는 마리아를 얼마나 칭찬을 하셨습니까? 성경은 들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말씀의 들음이 없이 우리의 신앙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음"에서 끝나지 않고 "행함으로 이 본문을 끝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행하는 자는...!" "행하지 않는 자는...!"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무슨 말씀 끝에 하셨는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마다 주옥같다고 말하는 산상 수훈 뒤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소금이라...! 제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있는 줄 알거든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드리라....!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고,...속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고 금식하고  구제하고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놓지 말라! 서로 비판하지 말라!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 좁은 길로 들어가라...!"라고 하는 주옥같은 주님의 교훈입니다.

이 교훈을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이유는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대로 행함이 없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듣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 때문에 고민하며 나의 삶에서 그 말씀을 적용하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주님이 그것을 지금 묻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이 잘 듣고 그대로 살아 행하는 자가 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말씀 듣기를 마리아처럼 하시고 행하며 살기를 마르다처럼 행하심으로 살아있는 믿음으로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어떤 역경과 시련과 시험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반석 같은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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