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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은혜로운가? (히 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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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당신은 은혜로운가?
성경본문 히브리서 4:12-16

설교내용  은혜의 분량은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가 사용하는 용어 중에 제일 많이 쓰는 용어가 세 가지 있는데 믿음, 사랑, 은혜라는 말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성경에도 많이 쓰고 있지만 우리도 일상생활에 많이 표현을 합니다. 성경은 은혜에 대해 고린도전서 2장12절에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령으로 깨닫습니다. 이 땅위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반은혜 안에 살고 있습니다.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만물이 사는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일반은혜에 속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특별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깨달을 때 큰 은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은혜로 주신 것을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아무리 받아도 깨닫지 못하면 못 받은 것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1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야!” 하고 고함을 지르는데 3층에 사는 사람이 ‘지금 무슨 불이 났다는 말이냐’ 하고 안 믿으면 그 사람한테는 불이 안 난 것과 같습니다. 불이야 할 때 불꽃도 안 보이고 연기도 안 보이지만 불이 났는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피신을 하지만 멀쩡한 날에 무슨 불이냐 하고 안 받아들이면 그 사람한테는 불이 안 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셨는데 내가 못 깨닫고 있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안 주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적용하고 살아야 됩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 사람을 두고 가르치는데 한 사람을 보고는 “자네가 길에서 돈지갑을 주웠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물으니까 “저는 지금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집도 가난하고 가족도 병이 들어서 치료도 받아야 되고 돈이 필요하니까 제가 가지겠습니다” 하니까 “그러면 당신은 도둑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보고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야, 임자를 찾아 주어야죠?” 그러니까 랍비가 “너는 바보다”라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을 보고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저는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그런 큰 돈지갑을 주웠을 때 어떻게 할는지 제 자신을 두고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내가 그 돈을 바로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이 탈무드의 이야기가 성경에 은혜에 대한 암시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은혜는 아주 막연한 개념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막연한 개념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무시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의 손길로 다스리고 계시는데도 우리가 그 은혜의 손길을 그만 거부해 버리는 때가 아주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고린도후서 12장9절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맥을 보면 사도 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주석가들이 추측하기로는 사도 바울은 시력이 안 좋았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보고 ‘눈이라도 빼주려고 했다’고 하는 그 구절에 근거해서 바울은 시력이 너무 안 좋았다고 추정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사도 바울은 말을 더듬었다, 말에 능하지 못했다고 추정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몸에 알지 못하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추측을 합니다만 정확한 질병은 모르지만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졌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시가 없어지도록 세 번이나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몸에 있는 가시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특별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그대로가 족하다는 것입니다. 가시를 가지고 있는 그 상태가 내가 베푼 은혜의 상태다, 그것이 족하다는 대답입니다.

  성령으로 깨닫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골로새서 3장1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너희가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런 말씀과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그 정도의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원이 이루어지고 일이 잘 되고 결과가 좋으면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런 정도의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그 정도의 이해라면 하나님의 은혜야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면 바울은 뭐가 잘 풀려가고 일이 잘 되고 앞길이 열리고 있는 이런 상황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옥에 있는데 무슨 은혜입니까? 아니, 몸에 가시가 있는데, 결정적으로 몸에 질병이 있는 이 바울이 그 고통을 제거해 보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대로가 족하다고 하니까 도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은 성령으로라야 깨달아집니다. 일이 잘될 때 은혜다 하는 이것은 성령을 안 받아도 느끼는 은혜입니다. 결과가 좋아서 은혜다 라고 하는 이것은 성령의 도움을 안 받고도 깨달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깊은 은혜는, 참으로 여호와의 뜻을 이루는 은혜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우리가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못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거저 이성적으로 깨달은 것, 환경적으로 깨달은 것, 현상적으로 깨달은 것, 결과론적으로 깨달은 것은 은혜 세계의 일부분일 뿐 하나님 은혜의 오묘한 세계는 성령으로라야 깨닫게 됩니다.

  다윗이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시편 73편 17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갈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악인들이 잘 되고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는가? 그것을 몰라 괴로웠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미끄러질 뻔했다,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내가 자꾸 실족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때에야 내가 깨달았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은 신약적인 말로 말하면 은혜받고 나니 내가 깨달아졌다 라는 말입니다.

  은혜받고 나면 교회가 사랑스럽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은혜받고 나면 교회가 무엇을 하든지 좋아 보이고 아멘입니다. 그러나 은혜 밖에서 노는 사람들은 교회가 하는 일마다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후에 깨달았다, 은혜받고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은혜는 성령으로 깨달았다는 것인데 이것이 서로 연관을 가집니다. 깨달음도 엉뚱한 깨달음이 많습니다.

  만득이가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유람선이 있습니다. 그 유람선을 타고 갈릴리 횡단을 하는데 요금을 내라고 합니다. 배 삯이 20불입니다. 공짜로 타는 줄 알았는데 배 삯을 20불이나 내라 하니까 이 만득이가 갈릴리 호수를 쳐다보고 있다가 손뼉을 탁 치면서 “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만순이가 옆에 있다가 “뭘 깨달았는데?”하고 물으니까 “배 삯이 비싸니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갔구나!”
  우리가 예수믿고 은혜를 깨달았다고 하는데도 엉뚱하게 깨달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기분에 맞게 깨달았습니다. 성령의 뜻에 맞게 깨닫지 않고 자기 기분에 맞게 깨달은 것입니다.

  은혜의 출처

  오늘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알려면 은혜의 출처를 알아야 됩니다. 누가 은혜를 주시는가?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는데 그는 죄가 없으신 분이고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다, 그 큰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 성경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의 근원이고 그로부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서신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이야기할 때 꼭 붙어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구원에 관한 역사,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적인 은혜의 역사를 설명할 때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임할 길이 없습니다. 통로가 없습니다. 은혜의 출처도 그리스도요 은혜의 통로도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으면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대제사장은 성경에 강조어법을 섰는데 큰 대제사장의 ‘대’자만 해도 큰데 큰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대제사장들이 계셨습니다. 이 사람은 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입니다. 큰 대제사장이라는 말은 이 역사 속에 있었던 대제사장들과 비교가 안 되는 오직 유일하신 대제사장 예수라는 말입니다. 메시야라는 말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의 피를 들고 들어가 바를 때 어디까지나 그들은 제사를 수종드는 자였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바쳐서 자기 백성의 죄를 속죄한 대제사장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큰 대제사장입니다. 그로부터 임하는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집회를 갔는데 첫 시간에 장로님께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기도를 할 때 이런 표현을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받은 갑절의 영감을 주의 사자에게 칠 배나 부어 주셔서 이번에 이 집회를 은혜롭게 인도하게 하옵소서.” 아주 듣기 좋았습니다.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까 이게 엄청난 은혜입니다. 엘리사가 받은 갑절의 은혜는 엘리야 능력의 갑절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갑절의 은혜를 칠 배나, 즉 엘리야의 열 네배입니다. 엘리야의 능력을 열 네배나 주의 사자에게 부어 주셔서 집회를 은혜롭게 인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영적인 절박감을 늘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제가 열차여행을 할 때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녹음기입니다. 강의테잎을 부산에 편도로 갈 때는 네 개, 왕복을 하면 한 여덟 개 정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는데 그 녹음기의 밧데리가 다 되어 가면 이게 느릿느릿해집니다. 그래서 항상 예비 밧데리를 가지고 다닙니다.

  성도들도 은혜의 밧데리가 다 되어 가면 깨달아야 됩니다. 밧데리를 갈아 끼워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데 지금 약이 풀려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분의 신앙인격 속에 은혜의 방전상태가 일어나는데도 자신은 지금 은혜상태에 있는 줄로 압니다. 은혜에 방전이 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밧데리가 방전되면 테잎을 넣어보면 압니다. 은혜가 방전된 성도는 하나님 앞에 일을 맡겨보면 압니다. 일을 맡겨보면 은혜가 방전된 사람은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은혜의 상태에 우리가 늘 머물러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면 은혜인줄 알고 감당하고, 감당하고 나서도 ‘아, 이게 주의 은혜로다’ 하고 감사할 때 우리 믿음은 점점 충만의 자리로 나아갈 줄 믿습니다.

  은혜받은 증인들

  은혜를 설명할 때 사건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 사건 중에 제가 록 펠러라는 이 사람을 늘 봅니다. 다글러스 록펠러는 43살에 재벌총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재벌 2세들이 물려받아서 회장이 되지만 이 다글러스 록펠러는 자기가 일군 기업의 총수를 43살에 된 사람입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53살에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는 것은 하늘이 낸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 록펠러가 아주 기고만장한 고집장이였습니다. 아주 괘퍅하고 인심을 다 잃었습니다. 돈은 억만으로 벌었는데 인품이나 덕망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3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발생을 했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집니다. 피부병이 돋아납니다. 머리가 빠지고 눈썹이 빠집니다. 최고의 의료팀이 아무리 치료를 해도 이것은 병이 호전되지 않고 악화가 됩니다. 그래서 종합진단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록펠러는 1년 이상 더 살지 못한다’ 그 결과를 본인한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일년 이상 살지 못하니까 인생을 정리하라, 이것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록펠러가 병상에서 가만히 자기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돈벌고 성공한다고 뛰어왔는데 돈 벌어놓고 1년밖에 못산다고 하니까 이건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존경하는 스승, 목사님 여러분들을 병상으로 초대해서 조언을 들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결같이 말하기를 “당신이 가진 재물을 베풀고 가라, 가지고 있으면 그것 때문에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올 것이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병상에서 자기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세웠습니다. 병원을 세웠습니다.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많은 일에 그는 과감하게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 점점 건강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98살에 죽었습니다. 1년밖에 못산다는 사람이 거의 배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 이 땅위에 암을 정복하기 위해서 내 일생을 바친다 해서 그는 의료재단에 40억불이라는 돈을 바쳤습니다. 그가 재산을 바쳐 지은 예배당이 미국에 기념비적인 예배당이 두 개가 있는데 뉴욕에 있는 리버사이드체플, 하나는 시카고대학에 있는 체플입니다. 그 예배당은 보통 예배당이 아니고 록펠러의 신앙고백이 묻어있는 예배당입니다.

  그가 이 땅에서 다 생애를 마치고 남긴 유명한 신앙교훈은 너무나 교회중심적인 신앙고백을 남겼습니다. 그 분의 신앙고백은 십일조를 믿음으로 하라, 예배를 드릴 때 앞자리에 앉아서 드리라, 즉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 앞자리에 가서 은혜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자와 가까워질수록 말씀의 역사가 강렬함을 느낀다.” 그는 설교자와 가까워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맡기는 일에 순종해라, 목회자와 협력하며 교회를 섬기라 이 네 가지가 그가 남긴 간증입니다. 그의 삶의 결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는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계산법이나 척도로 임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나고 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이렇게 깨닫는 날이 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있으면서도 그 물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듯이 오늘 우리도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서도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지금 무료로 주시는 줄로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상대하지 않아서 그렇지 인간이 내는 욕심을 하나님이 계산을 해서 상대하려면 하나님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하루아침에 다 빼앗아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돈으로 도무지 계산할 수 없는 그런 값진 것들을 헤아릴 수 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거저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국도 은혜로 우리에게 분양완료 해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땅에서는 아파트 분양하나 받기 위해서 생애를 목을 메고 하지만 하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주님이 하늘나라 가셔서 내가 영원히 살 맨션아파트 분양을 완료해놓고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결국 우리의 고통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의 기쁨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인정 안하면 여러분은 은혜를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도 은혜요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도 은혜요 하늘나라에 승천하신 것도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리적으로 십자가는 말고 부활만 있는 신앙생활, 십자가는 믿음 좋은 김 장로님, 믿음좋은 박 권사님이 다 지고 나는 부활의 언덕에서 부활의 영광만 누리는 그런 자세로 우리가 은혜를 잘못 오해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을 한 평생 한 사람은 아무리 보통사람으로 살아도 그 생애가 온갖 고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신앙인이 똑같은 페이스로 늘 형통하게 예수믿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중간하게 하면 갈등도 없고 고민도 없습니다. 기도할 일도 없습니다. 한 다리는 세상에, 한 다리는 예배당에 걸쳐놓고 신앙생활 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세상방법, 어떤 때는 교회방법을 가지고 교묘하게 다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방법은 안되기 때문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십자가를 져야 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 은혜를 깨달아야 그 은혜의 진미를 알게 되고 그 고난을 극복하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것으로 생각할 때 그 고난은 한없이 무거운 짐이 되고 우리는 그 고난을 이길 길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와 부활이 두 가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한결같이 임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한결같이 믿고 응답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것은 고난의 때나 형통할 때나 언제나 주시는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은혜가 되어야

  은혜는 우리가 받는 은혜가 있고 나만이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즉 교회적으로 받는 은혜가 있고 나만이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을 받아야 됩니다. 교회가 은혜받을 때 나도 함께 은혜받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받을 때 나도 은혜받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 못받는 나만의 은혜를 하나님이 예배해두고 계십니다. 내게만 주시는 나만의 은혜, 이게 우리 각자에게 다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에게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의 본질은 똑같지만 그 은혜를 받는 형태는 다 다릅니다. 그래서 나만의 은혜입니다. 저 사람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지만 저 사람에게 베푸는 은혜의 형식은 나와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사람의 은혜가 되고 나는 나만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의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만이 받은 은혜는 이것은 우리가 함께 받는 은혜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은혜 받는 그 속에 내가 포함되어야만 나만이 받는 은혜가 누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함께 어울려야 나만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 외삼촌이 곡물장사를 하셨습니다. 쌀, 보리, 팥, 콩 이런 것을 소매상을 하셨는데 그 시장에서는 제일 큰 소매상이었습니다. 제가 청소년시절에 그 외삼촌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지냈는데 밤이 되면 내일 아침에 팔 곡물을 준비합니다. 곡물을 그냥 부어 놓는게 아니라 전부 밤에 손질을 합니다. 그런데 외삼촌이 나보고 팥을 다듬으라고 하십니다. 긴 부대에 석 대, 넉 대 정도 넣어서 양쪽을 잡고 흔들면 팥끼리 서로 부딪힙니다. 부어 놓으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먼지가 다 떨어져 나가버리고 그 팥의 검붉은 빛깔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함께 뒹굴어야 됩니다. 함께 모여야 됩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일하고 함께 관심가지고 신앙생활, 예수 잘 믿는 것 하나도 복잡한 법칙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모이고 다니십시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거기서 신앙생활의 비밀은 다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혼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은혜받게 할 길이 없습니다.

  맺는 말

  어떤 분이 “북한은 악질, 남한은 저질”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굉장한 풍자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어떤 면에서는 예수믿는 것도 저질로 믿는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비교가 되는 것은 북한은 3백만명이 굶어죽어 갑니다. 그런데 남한에는 카드빚 때문에 지금 3백만명이 목이 졸려갑니다. 이상한 나라입니다. 당사자만 목졸립니까? 아들 카드빚 때문에 아버지가 어머니가 목졸립니다. 카드를 쓴 지가 우리가 얼마 안되는데도 지금 이 정도인데 앞으로 염려가 됩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 살기를 바랍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만이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이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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