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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 체질을 바꾸면 축복이 옵니다 / 창 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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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창세기 22:11-14
제목:신앙 체질을 바꾸면 축복이 옵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행복이 옵니다. 환경이 달라져야 되는 게 아닙니다. 생각이 건전하면 삶도 건전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남녀 불문하고 모두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가를 알려면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건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아니 합니다. 소위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먼저 기도부터 합니다. 예수께서도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주일이면 어디로 갑니까? 교회 가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부인이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열심히 예배에 참석 하고 새벽기도도 합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풀리지 않습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담임 목사님을 만나 상담하려고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청소하던 관리집사가 “어떻게 교회에 오셨습니까?” 물으니 그분 대답이 “주지 목사님을 만나보려구요” 그러더랍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에 올라왔던 스티븐 코비가 쓴『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좋은 습관』이라는 책에서 좋은 습관에 대하여 몇 가지 이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어떤 습관을 가져야 하는가? 1) 매사에 주도적이 되라는 것입니다. 2)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3) 소중한 것부터 생각하라 4) 상호이익을 추구하라 5)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 다음에 이해 시켜라 6) 시너지를 활용하라 7) 심신을 단련 시켜라입니다. 이런 습관을 가지면 성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체질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때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됩니다. 요즈음 말하는 산성 체질을 알카리성 체질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체질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을 받습니다.

1. 인본주의 신앙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하려고 하면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지에서 한국을 소개하면서 사업거래를 위해 한국인을 대할 때에 지켜야 할 권장사항을 제시하였습니다.

(1) 직함을 알고 직함을 붙여 호칭을 부를 것.
아래서 여자는 사모님 남자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줌마 아저씨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도와주는 여자를 아가씨 혹은 간호원 그러면 주사를 아프게 맞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반드시 간호사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좌우간 여자나 남자 공히 ‘사’자가 들어가야 합니다. 앞에 붙던 끝에다가 사용해 주어야 합니다. 식당에 가서 서빙 하는 여자를 보고 아가씨, 어이 그렇게 부르는 이는 세련되지 못해서 그럽니다.

(2) 접대 받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접해 주어야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친구라도 일을 부탁하면 하는 말이 맨입으로 라는 말을 합니다. 입에 무엇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자기들은 급하게 하는데 거래는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여러 사람의 논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 한국은 남성중심의 사회지만 여성들은 어머니로 혹은 아내로 존경을 받기 때문에 가족의 결정 사항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기에 여자를 먼저 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적 기질을 알아야 성공적인 거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신앙기질이 무엇입니까?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중심입니다. 그리고 개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존중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두렵지 않고 사람은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은 하면서 사람에게 더 잘하려고 합니다. 친절하고 잘 보이고 사람의 칭찬을 좋아합니다.

개인 이기주의입니다. 자기가 좋아야 행동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체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들을 보세요. 교회에 잘나오는 것으로 자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거쳐 중․고등부, 청년회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생활 하였으니 나는 고참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믿음은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믿음이 체질화 된 사람입니다. 믿음의 체질을 가지려고 하면,

1)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이 한 번 두 번 속으면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은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왜 의심하게 됩니까? 너무나 많이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속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할 때 비극입니다. 의심하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행복은 깨집니다. 서로 의심하는 부부가 같이 산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들의 가정은 깨어집니다. 부부는 서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여자들은 육감이 남자보다 분명하고 빠르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3초 정도 느리다고 합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속아도 믿어 준다는 말입니다. 친구간에도 속이는 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믿어주어야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성경을 보면서 의심 많은 사람 그러면 도마가 생각이 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과 이적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심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믿으면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다가 다른 말을 하고 들으려고 합니까? 체질화된 믿음의 사람은 의심할 수밖에 없어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때때로 제자들을 책망하실 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의 소원이 있습니다. 자녀를 갖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자녀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네게 아들을 주겠답니다. 그런데 소식이 없습니다. 자신도 늙어갑니다. 이미 자기 아내는 단산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25년 동안 속았습니다. 그런데 내년에 네 아내가 아이를 낳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을 수 있는 말입니까? 아들을 주시려면 일찍 주시지. 그 말 나는 25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속아왔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성취되지 아니하여도 믿어야 합니다. 즉, 성취된다는 것까지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도 믿어야 하거늘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루어지지 아니한다고 의심하면 믿음과는 상관없는 신앙인이 됩니다. 실제 신앙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입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데 그건 좋은 것입니다. 계속 하다 보면 체질화 되기 때문입니다. 불평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 합니다. 불평하다 보면 불평거리가 생깁니다. 나중에는 불평하지 아니해도 되는 건데 자꾸 불평만 하게 됩니다. 이분은 불평이 체질화 된 사람입니다. 사람이 왜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까? 같은 거라도 좋게 보는 게 아니라 자꾸 나쁜 면만 보면서 생각하고 말하게 되면 부정적인 사람 즉 체질이 되는 것입니다. 의심을 버려야 믿음 체질이 됩니다.

2) 염려는 묶어 놓아야 합니다.

신학자 ‘케이 체프노이드’ 라는 분이 말하길 사람이 불행한 것은 “감옥”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감옥은 심리적인 감옥인데 첫째는 자만심이라는 감옥입니다. 나는 잘났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내가 보아도 예쁘다 라는 생각 소위 말하면 왕자병 공주병입니다. 둘째는 반대로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지. 나는 부족해. 즉 자기를 멸시하는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절망이라는 감옥입니다. 나는 되는 게 없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향수의 감옥이 있습니다. 그때가 좋았어. 그때 그 목사님이 시무할 때 우리 교회는 좋았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분은 향수의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선망의 감옥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하고 한 번 살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질투의 감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못 되는 게 낫지.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무서운 것입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염려와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무기징역이라는 형벌이 있습니다.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2차 대전시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은 35만이었는데 전쟁에 보낸 부모들과 본인들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다가 심장병 등으로 죽은 사람은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자꾸 염려하는데 믿음이 생깁니까? 염려가 무엇입니까? 두려움이 지나친 것입니다. 적당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좋을 수도 있습니다. 경계심을 갖고 대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려는 유익이 없습니다. 염려하는 일을 반복하면 병이 됩니다. 암이라든지 심장병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 고 무려 365번이나 말씀하였습니다. 염려는 사실 불신앙으로 묶는 것입니다. 다 맡기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염려를 주께 맡길 줄 알아야 믿음의 체질이 됩니다.

2. 우리의 체질은 아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제단에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드렸습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충성입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헌신적으로 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얼마나 갈등을 느꼈을까? 하나님께 드리자니 이건 너무 심하다 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안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얼마나 고민하였겠느냐? 누가 말하기를 아내 사라에게 동의를 구하지 아니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해 줄 것 같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고 말 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브라함 부부는 이미 체질이 아멘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갈등도 없고 고민도 없습니다.

의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을 놓고 다시 의논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정된 사항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겠다. 아니 순종하여 왔습니다. 이미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을 때 떠나 왔습니다. 하갈이 낳은 아들도 아브라함이 볼 때에는 아들입니다. 그를 집에서 쫓아내라 아멘 그렇게 했습니다. 이들은 아멘 체질이 되었습니다. 체질을 바꾸어야 행복합니다.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노멘 전문가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말하면 무슨 말이든지 반대하고 나섭니다. 이유를 부칩니다. 그는 불행합니다. 체질 개선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 체질로 바꾸시기를 원하십니까? 아멘의 원리가 있습니다.

1) ‘묻지마’이어야 합니다.

왜 아들을 드리라고 하십니까? 왜 나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물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왜? 라는 물음표가 없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알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를 의무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거나 말할 때에 무어라고 합니까? 그저 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두 사람의 수도사가 올리브나무 묘목을 각각 심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릅니다. 한 수도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 연약한 뿌리가 잘 자라도록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기도하였는데, 즉시 단비가 내렸습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햇빛이 필요합니다. 햇빛을 주옵소서. 그러자 구름이 걷히고 햇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다음에 오 주여 나무가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서리를 내려 주옵소서. 서리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수도사의 방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른 나무는 아주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답니다.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시오니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기도만 하였을 뿐이라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알고 하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주님의 뜻에 맡기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제1차 대전 때에 군대의 대장이 부하들과 함께 적진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적군들이 매설해 놓은 지뢰밭을 가로질러가야 했습니다. 지뢰 제거 전문가가 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대장님 제가 대장님을 건너편에 무사히 가게 할 것인데 한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게 아닙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던지 아무 것도 묻지 마시고 따라만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대장님은 물론 제 목숨도 위험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앞날에 위험한 지뢰밭과 같은 험난한 길입니다.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불리하다고 생각해도 조건 없이 아멘 하는 신앙이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이유가 많고 조건이 많습니까? 그러다 보니 불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순종은 끝까지 해야 합니다.

모세를 보세요. 처음에는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기가 습득한 학문과 무술로 애국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히브리 사람과 시비가 붙은 애굽 사람을 쳐죽였습니다. 의협심과 정의감으로 그리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출 2:11-15) 누가 보아도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합니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미디안 땅으로 갑니다. 도망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남의 양 무리를 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 신을 벗는 것은 전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순종할 때마다 홍해를 건너고 기적과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마르다고 원망을 합니다. 원망 정도가 아닙니다. 다투었다고 했습니다.(민 20:3) 반란을 일으킬 자세를 갖습니다. 우리를 왜 인도했느냐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짐승같이 대우하느냐.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아무리 인내하고 믿음 좋은 사람이라도 주변에서 자꾸 원망하면 피곤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fi 그러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들을 모으고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이건 불순종입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민수기 20:12절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모세 같은 사람도 불순종한 일에 대하여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합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순종이어야 합니다. 순종이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28:~을 잘 아실 것입니다. 28:1-14절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순종은 저주입니다. 요나는 풍랑입니다. 요나 같이 불순종의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 같이 순종 체질의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순종 체질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좋은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순종 체질을 가진 사람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은 순종할 때 나타났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번 기적도 순종할 때였습니다. 엘리사를 통하여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3. 사랑의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 자기에게 해를 입힌 일도 없는데 이유 없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의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8:1-15절을 보면 지나가는 나그네를 잘 대접하였습니다. 달려나갔습니다. 몸을 땅에 굽혔습니다. 사람 대접한다고 거만하면 대접받는 이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2절) 물을 떠다가 발을 씻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였습니다. 요즈음 자녀폭력 때문에 가출하는 자녀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하였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이삭이라고 하십니다.(창 22:2)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체질의 사람이었습니다. 체질을 바꿉시다. 사랑의 체질로 바꾸어지면 그때부터 축복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영적인 체질이 다를 뿐입니다. 체질이 믿음이어야 합니다. 순종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기에 순종하였고 순종할 수 있기에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과 순종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 체질이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뀌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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