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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옥중에서 부르는 감사 /합 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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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부르는 감사

본문: 하박국 3장 17- 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에서 코리텐 붐은 자기와 여동생 베스티가 유대인이 나치로부터 도망하는 것을 도와준 이유로 체포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코리와 베스티는 우선 라벤스브룩에 있는 포로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그들이 수백 명의 죄수를 수용하는 마루침대가 즐비한 막사에 밀어 넣어졌을 때, 그들은 그곳의 불결함과 악취와 비참한 모습으로 인해 치를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위가 상하고 구토증이 나서 더러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그곳에는 벼룩이 우굴거리고 있었습니다. 코리는 울먹이는 소리로 "베스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고 말하며 불평했습니다.
베스티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 하셨잖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성경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복음을 들을 사람이 그곳에 많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베스티는 벼룩에 대해서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코리는 "그건 너무해, 하나님도 내가 벼룩에 대해 감사하게 만드실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베스티는 거듭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라고 하셨어. 즐거운 환경에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야, 벼룩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환경의 일부분이야." 코리는 그때의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침대 옆에 서서 벼룩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베스티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자매는 그들이 다른 죄수들과 기도하고, 상담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감시원이 저지를 받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감시원은 벼룩 때문에 막사 안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이나 코리 텐 붐으로 하여금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며 즐거워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으로부터 좋은 것을 주시리라고 의뢰하면서 감사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감옥과 수도원은 "고립"이란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지 불평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는 차이일 뿐이다. 수감된 죄수가 수도자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감옥은 수도원으로 승화될 것이고, 반면에 수도자가 "불평의 마음"을 가질 떼 수도원은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
고립되었을 때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환경을 의미 있게 가꿀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삶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롬14:8)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
성 크리소스톰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법으로 금한 기독교 복음을 증거한다고 체포당하여 감옥으로 끌려 갔을 때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복음화하라고 이곳에 저를 파송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크리소스톰은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성 크리소스톰에게 교수형이 집행되려고 할 때 갑자기 사형 중지령이 내렸습니다. 그때도 크리소스톰은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남았다는 것입니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것이 성도가 감사해야 할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살아도, 옥에 갇혀도, 죽게 되어도 감사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고생을 했으나 그 감옥이 국무총리의 길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입니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심령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릅시다.(시50:23, 시95:2, 골2:7, 엡5:4)
어느 목사님이 복음을 전해 보기도 전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감옥을 자신의 선교지로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 안에서 가장 흉악한 죄수를 찾아보았습니다.(소련 감옥은 정치, 종교범들을 일반 도둑들인 다수 죄수들과 함께 수용합니다.) 그가 기도하면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살인자였는데 그 사람은 너무나 잔인해서 그 감옥의 간수들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감옥에서는 하루 12시간씩 노동하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데, 그 목사님은 '금식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이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구나' 생각하고, 계속해서 중노동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교도소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쳐서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 그 목사님은 침대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엎드려 그 살인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 번은 밤에 그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의 뒤에 서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가 돌아보자 그 살인자가 그의 얼굴을 주시하며, "당신 뭐하고 있는 거야?"하고 물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이오"라고 그가 대답하자 "무엇을 위해 기도하지?"하면서 그가 퉁명스럽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소"라고 목사님이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곧 그 살인자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변화가 너무나 엄청났기에 그 소문은 교도소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마침내 교도소 소장이 도대체 그 살인자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묻기 위해 그를 불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뿐이고 그를 변화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25-26)
헌트 선교사가 만주에 있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41년 10월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감방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던 중 갑자기 어떤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니 이어서 곡조가 떠올라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만왕의 왕이시니 각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족속들 주를 찬양할지어다 땅을 권세와 의로 다스리시며 파도도 그의 명령에 복종하나니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네 감사하는 일을 기쁨으로 이루라."
그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외투주머니 속에서 중국 동전이 하나 남아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동전을 쥐고 힘껏 눌러 회벽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감방 안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얼마나 잘 써졌는지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쓰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식별하기는 곤란했지만 알아 볼 수는 있었고 곡조도 기억이 났습니다.
잠시 후 간수가 작은 창구를 통하여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벽에 쓴 것이 무엇이냐?" 라고 의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바로 앞에서는 겨우 읽을 수 있었지만 비스듬히 보이는 문에서는 창에 비치는 빛에 반사되어 뚜렷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감사와 기쁨을 간수에게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간수는 새삼스럽게 이상한 듯 감방을 휘둘러보며 "이런 감방 안에서 도대체 누가 감사할 수 있을까?" 라며 그의 동전을 압수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작은 문을 걸어 잠그는 간수의 얼굴은 매우 부드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신앙인은 좋은 일이 있고 범사가 잘 될 때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잘 안되고 힘들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감사하라, 찬양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2)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람은 고독하게 되면 될수록 자기를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린다고 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더 확고하게 해주고 지혜롭게 해주 니다. 역경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은 사람의 인격을 정화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윤리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건강도 중요하고 지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격은 더 중요합니다. 인격이 무엇입니까? 풍부한 인간미, 신의, 온유, 겸손, 정직, 책임감 등입니다. 이와 같은 품성은 순탄한 환경보다는 역경에서 더 연마됩니다. 아브라함의 인격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 가나안까지 힘들고 고생스러운 나그네 생활 속에서 연마됐습니다. 보석도 원석을 갈고 다듬어서 만들고 필요한 가구도 원목을 베어다가 자르고 다듬어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온전한 신앙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서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으며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신앙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대개 악기에 쓰이는 목재는 밖에 버려져서 눈비를 맞고 추위와 더위 속에서 수축작용이 반복되는 가운데 좋은 자재가 됩니다. 사람은 역경에서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장합니다.
역경은 우리의 신앙을 온전하게 합니다. 역경은 사랑의 견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당하는 역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질책으로 알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사랑의 견책으로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평? 불만하고 원망하고 거역하고 찌푸리고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모든 것이 잘 안되고 힘들더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몸으로 감사하고 물질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새로운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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