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 시 146:1~10

  • 잡초 잡초
  • 338
  • 0

첨부 1


제목 :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본문 : 시편 146:1~10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의 원리는 함께 도우며 살게 하셨다. 동물을 보라. 수컷과 암컷이 서로의 도움으로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게 되고, 태어난 새끼를 애미가 도우며 살려낸다. 그리고 죽으면 다른 생명체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다. 이것이 서로 연결되는 생명의 고리이다. 이것을 소위 생태계라고 부른다.

인간도 역시 아빠와 엄마의 도움으로 인하여 한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특히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영역이 훨씬 크다. 태어나서 부모가 자식을 잘 돌봐야 살 수 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어 서로 도와가며 살도록 하셨다. 죽을 때에도 내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녀들 혹은 주변의 사람들이 반드시 죽은 시신을 어떻게 해결해 줘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이같이 가정은 서로 돕기 위하여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어떤 사람이 숲속을 걷다가 여우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여우는 다리 한 쪽이 없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체 저런 여우는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숨어서 살펴보게 되었다. 때마침 커다란 호랑이가 사냥한 먹이를 물고 와서는 자기가 먼저 먹고 여우의 몫을 남겨 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다음날에도 또 일어났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은 깨달았다. '여우가 바로 저런 방식으로 신의 은총을 받고 있구나!' 매우 사소한 곳에까지 미치는 신의 권능에 새삼 탄사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맞아, 나도 신을 믿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신께서 저렇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실 거야." 그는 그날부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죽치고 앉아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했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날며칠 계속해서 굶주린 사내가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무렵, 문득 신의 소리가 들려왔다. "거짓의 미로에서 헤매는 자여, 눈을 뜨고 참을 보라!" "누구십니까?" "이놈아, 병신 여우 흉낼랑 당장 때려치우고 호랑이를 본받으란 말이다."

모든 자연의 질서는 서로 도우며 살도록 만드셨다. 이렇게 도움을 서로 주고 받으며 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풍성하지 않아도 깨끗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마음 속에 진심으로 서로 돕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같이 우리 인생 자체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가정에서 서로 돕고, 이웃에서 서로 돕고, 교회에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데 도움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아보면 그 도움의 근본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도우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능하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중요한 문서를 만들었다. 그림도 집어 넣고, 표도 만들고, 글씨체도 멋지게 만들었다. 이것을 다 만들어서 프린트를 시키려고 하니 프린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컴퓨터 회사에 전화해서 기술지원을 받는다. 이렇게 해 보라. 저렇게 해 보라. 한참 해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되지 않아서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면서 컴퓨터와 프린터가 연결된 선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플러그가 완전하게 꽂혀있지 않았다. 약간 느슨하게 되어 연결이 끊어진 것이었다. 이 사람도 도와주고, 컴퓨터 회사에서도 도와줬는데 잘 되지 않는다. 연결이 끊어지니 아무리 도와줘도 그것이 되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나를 도와주려고해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그 도와주는 것이 곧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데 근본적인 도움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기자는 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는가? 특히 야곱의 생애를 보라.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았다.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는 소동이 벌어지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간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다가 해는 저서 외로운 밤을 지나게 된다.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한적한 곳에서 잠이 든다. 정말로 비참한 신세이다. 도망자의 신세이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우시겠다는 확실한 음성을 듣는다. 야곱이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약해졌을 때에 이미 하나님은 야곱을 돕기 위해서 그곳에 계셨다는 고백이다. 약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 더욱 분명하게 경험한다.

전에 택시 운전하던 한 성도가 있었다. 부인은 집사인데 아무리 전도해도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를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면 교회에 오겠다는 것이다. 택시타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니 교회에 않 나온다. 그런데 어느 날 택시 운전을 하다가 대형사고가 났다. 내장이 파혈되어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심방을 가서 이야기를 하는데 “목사님 하나님을 찾으려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못 만났는데 죽게되어 병원에 오니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시네요. 이렇게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서 감사해요.” 며칠 후에 그 성도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다.

내가 건강하여 마음데로 돌아다닐 때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다가 병원에 와보니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살면서 고통을 당할 때가 있다. 바로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불가능합니다" 라고 하면 "모든것이 가능하다(눅18:27)"라고 하시고, "내가 너무 지쳤어요"라고하면 "내가 너를 쉬게하리라(마11:28~30)"라고 하시고, "아무도 나를 진정 사랑하지 않아요"라고하면 "내가 너를 사랑한다(요13:34)"라고 하신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요"라고하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12:9 시91:15)"라고 하신다. "앞이 캄캄해요"라고하면 "내가 네발을 인도하리라(잠3:5~6)"라고 하신다. "그것은 가치가 없어요"라고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가치가있다(롬8:28)"라고 하신다. "저는 제 자신을 용서 못해요"라고하면 "내가 너를 용서하리라(요일1:9 롬8:11)"라고 하신다. "어떻게 해 나갈수 없어요"라고하면 "내 모든 것을 채우마 (빌4:19)라고 하신다. "저는 항상 걱정이 많고 좌절해요"라고하면 "너의 염려를 네게 맡기라(벨전5:7)"라고 하시고, "너무 외로워요" 라고하면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리라(히13:5)"라고 하신다. 내가 약하여 넘어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인 줄로 믿는다.

이와 같이 약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 야곱이 큰 부자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녀도 열둘이나 되고, 재산도 많아서 금의환향을 하게 되었는데 야곱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형 에서의 마음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형을 위해서 많은 선물을 준비해서 몇사람이 먼저 형 에서를 만난다. 야곱의 마음은 형에게 이렇게 엄청난 양의 선물을 주면 그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야곱이 말하기를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웬걸. 형 에서는 장정 400명을 데리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라. 형 에서가 동생을 환영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을까? 형 에서는 사냥을 하는 사람이요, 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칼로 무장하고 동생 야곱의 떼를 향하여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에 야곱은 홀로 남아서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끊어졌다. 야곱은 온전하게 걸을 수가 없었다. 다리를 질질끌고 걸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야곱은 깊은 밤에 얍복강 가에서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는 고통의 밤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날이 샌 후에 야곱이 죽을 각오를 하고 형 에서를 만나러 간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형을 만난다. 일곱 번 땅에 굽히며 형 에서에게 간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용서해 준다.

무엇 때문에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받아주었겠는가? 야곱은 선물을 준비해서 그 선물로 형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했다. 그러나 에서가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어라.” 야곱이 준비한 선물 때문에 에서의 마음을 돌이킨 것이 아니라 야곱의 저는 다리를 보고서 형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20년 만에 만난 동생. 떠날 때에는 말없이 정말로 죽이고 싶었지만 세월이 흘러 머리도 허옇게 되고, 얼굴에 주름살도 가득해서 만났는데 저는 다리를 하고서 나타났으니 형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겠는가?

야곱은 선물을 통해서 형과 화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저는 다리를 통해서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여 놓으셨다. 야곱이 당한 고통은 곧 하나님의 도우시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고통도 또한 하나님의 도우시는 방법일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지난다. 어떤 분은 장사가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고, 계획 데로 잘 되어서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는 분도 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 덕택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야곱이 지팡이만 갖고 요단을 건넜지만 돌아올 때에는 두 떼나 이루었다.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어떤 성도는 추수감사주일을 지나면 나에게는 정말로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업도 제대로 되지 않고, 건강도 좋지 않고, 자녀들도 잘 자라지 않는 등 많은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고통을 겪게 하셨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야곱을 도우셨다.
내가 지금 형통한 날이건, 곤고한 날이건.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