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강하고 담대하라 / 수 1:1-9, 행 18:9-11

  • 잡초 잡초
  • 482
  • 0

첨부 1




설교제목  강하고 담대하라 성
성경본문  수 1:1-9, 행 18:9-11

1835에서 1919년까지 살았던 강철 왕 앤드루 카네기는 참으로 여러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카네기는 자기 묘비에 새길 글을 자기가 써놓았는데 그 묘비명은 “여기에 자기 자신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누워있다”입니다. 참으로 뜻 깊은 내용입니다. 이 말은 중요한 몇 가지를 말해주는데 그것은 겸손입니다. 사람들은 카네기를 가리켜서 천재라고도하고 지도자라고도하고 사업가라고도하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높였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자기의 성공은 자기보다 훨씬 우수한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힘을 모아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장점 그 사람들의 우수한점들을 극대화하고 우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우수하게 일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한일이다. 그래서 오늘에 내가 있다라고 하는 고백이 들어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만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또 단점만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루 고루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장점이 어떤 때는 단점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 단점이 오히려 큰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단점을 자기가 알고 거기에 집착하여 단점을 없애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노력하느라 시간 다 보내고 그러는 동안에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큰 장점 큰 은사를 다 잃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장점을 소중히 여기고 장점을 살려나가는 사이에 자기의 단점을 다 극복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에 보면 여호수아가 고민에 싸여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의 뒷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고민은 그런 것이 아니고 지도자로서의 고민입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큰 두려움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일인자였던 모세가 죽고 이인자였던 여호수아가 일인자가 되었습니다. 일인자인 모세만 의지하고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던 여호수아가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을 인도해야 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너무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죽었으니 혼자 이 백성을 인도해야한다는 고독감으로 괴로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는 동안 그 기간을 참지 못해서 산 밑에서 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나안에 갔던 정탐군의 보고를 들으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모세를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피우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못되게 구는지 얼마나 타락하고 얼마나 완악하고 얼마나 목이 곧은 백성인지를 잘 압니다. 40년 동안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그 때문에 모세가 고민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백성을 인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또 하나는 미지의 가나안땅입니다. 잠깐 정탐군으로 가서 본 일은 있지만 7족속이 사는 그 땅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 땅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오합지졸이고 가나안은 나라가 있고 군사가 있고 높은 성이 있습니다. 그 성과 그 나라를 점령해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정탐군들은 보고하기를 그 땅은 아낙 자손들이 사는 곳인데 그 아낙 자손들의 장대한 모습에 비해 우리들은 민수기13장 33절에 보면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메뚜기 같은 우리가 저 어마어마한 가나안 땅을 점령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이 땅을 너에게 주었다 이미 주었으니 가서 차지하라 너를 당할자가 없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그러므로 가라하고 재촉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한 것은 가나안땅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5절에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당할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하셨고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 강에 두었을 때도 함께 하셨고 애굽의 왕궁에서도 함께 하셨고 미디안에 가서 40년 동안 양을 칠 때도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 보낼 때도 함께 하셨고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도 함께 하셨고 홍해를 갈라지게 할 때도 함께 하셨고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였고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어 먹게 한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표였습니다.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해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이깁니다. 당할자가 없습니다.

청년 요셉이 애굽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긴 것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사자가 다니엘을 전혀 해하지 못하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다른 날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속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전혀 이상이 없이 살아 나왔고 소년 다윗이 거장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겼습니다. 우리는 심히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를 당할자가 없습니다.

5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9절 하반절에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6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 하시기를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7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
9절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말을 3번이나 했습니다. 사람은 강한 것 같으나 심히 약한 존재입니다. 마음이 약해 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찬송가 197장 3절에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 주사 굳세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은 용기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독일에서는 “용기를 잃어버리지 말라 용기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놓았습니다. 모든 일에 용기가 필요한 것같이 신앙생활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너무너무 어려움에 처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어느 날 어깨가 축 처지고 힘이 빠진 채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어떤 집 2층에서 한 여자가 루터씨 담대하세요. 용기를 내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루터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리하여 루터는 죽기를 각오하고 담대하게 종교개혁을 추진하여 완성했습니다.
마음에 약한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극히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7절 하반절에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준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너의 생각의 중심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들이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치적으로도 양극단의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대립하고 극단의 세속주의와 신비주의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개인이나 공동체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해방 후에 우리나라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져 날마다 좌익단체들과 우익단체들의 투쟁이 계속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사사건건 대립되어 갈등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가의 어떤 일만 있으면 보혁으로 갈라져 공방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재신임 파병문제 전부가 갈라져있습니다.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져있습니다. 9절 중간에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6절에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자가 아림왕과 함께 한 자 보다 많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돈 받은 정치인들 그리고 돈 받은 공직자들이 두려워서 떨고 있고 정치 후원금을 준 기업인들도 몹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수능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학자들의 연구 발표에 따르면 수능 시험 볼 때 두려워하면 9점 정도가 내려간다고 하니 두려워하면 큰일입니다. 시험 잘 보는 비결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직장인들은 감원 바람에 두려워하고 승진할 직장인은 승진시험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화가 안 되고 전화 벨 소리만 나도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로마 제국에 내려오는 전설에 보면 어떤 사람이 마차를 타고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틴노불을 향해서 가는데 나이 많은 할머니가 좀 태워 달라고 해서 마차 주인이 할머니를 태워가지고 얼마큼 가다가 할머니를 자세히 보았더니 눈과 코의 생김새가 너무 흉하게 생겨서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요? 나는 호열자 귀신입니다. 마차 주인이 깜짝 놀라서 호열자 귀신이 무엇 하러 우리성에 들어갑니까? 사람을 죽이려고 들어가지요 예 그렇소 당장 내리라고 호통을 치자 할머니가 나는 내릴 수 없소 당신이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내가 콘스탄틴노불에 들어가서 다섯 사람 이상은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약속하는 뜻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비수를 드리겠소. 이 비수로 나를 찌르면 나는 금방 죽습니다. 만일 다섯 사람 이상을 죽이면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그리고는 비수를 꺼내서 마차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이에 마차는 성안에 들어왔고 할머니는 내려서 어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부터 이집 저집에서 호열자에 걸렸다는 소문이 들리고 호열자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몇 일후에는 오천명 이상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차 주인은 몹시 화가 나서 비수를 가지고 할머니를 찾아 이집 저집 다니다가 어떤 집에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즉시 죽일려고 했더니 할머니가 왜 나를 죽일려고 합니까? 나는 다섯 사람 밖에 안 죽였습니다. 마차 주인은 무엇이 다섯 사람이라고 오천명이상 죽이고 다섯 명이라고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말하기를 나는 다섯 사람 밖에 안 죽였습니다. 나머지는 두려움 때문에 죽었습니다. 호열자가 유행한다고 하니까 4995명이상이 두려워하다가 죽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병이 들고 두려움 때문에 사업에 실패하고 두려움 때문에 미신과 우상을 섬기고 두려움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여러번 여러번 말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22절 이하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신약의 말씀 사도행전 18장 9절 10절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다가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밤에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말씀 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 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몹시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색깔을 두려워합니다. 검정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빨간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흰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소리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소리만 나면 깜짝 깜짝 놀래는 사람이 있고 우뢰소리를 들으면 몹시 놀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상상적인 두려움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이 들면 어떻게 할까 실직하면 어떻게 할까 사업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할까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할까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심장이 뛰고 숨이 차고 머리가 아파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원인도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 교수에게 상담을 했는데 두려움에서 생긴 병이라고 했습니다. 이 부인은 재혼을 했는데 첫 번 남편이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고 나무칼로 귀를 비어가도 모를 정도로 행복하게 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 재혼을 해서 첫 번 못지않게 행복하게 잘사는데 이 부인의 마음에 한 가지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잘 해주면 잘해 줄수록 이렇게 내게 잘해주는 저 남편이 혹시나 또 죽으면 어떻게 할까 자꾸 그런 생각 때문에 두려워하다가 병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해에 기인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 어떤 사람은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이 뚝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워서 낮에도 밤에도 밖에를 못나가고 방에서만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바다를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니까 제자들이 보고 유령인 줄 알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지금도 오해에 기인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뜻도 없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잠재의식에서 옵니다. 어렸을 때 무엇에 크게 놀랜 사람은 항상 그것만 보면 두려워합니다.

숫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의 호텔에는 13호실이 없고 비행기 좌석도 13호석이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4호실이 없고 병원이나 호텔에 4층이 없고 F자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숫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666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에게 매우 해롭습니다. 심한 두려움은 사람의 신경과 육체를 마비시킵니다. 너무 두려우면 눈을 바로 못 봅니다. 사물이 바로 안보입니다. 사물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고 손도 말을 안 듣고 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뢰할 때 없어집니다. 이사야 12장 2절에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시편 27편 1절에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하나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찬송가 458장 3절에 주의 보좌로 나아 갈 때에 기뻐 찬미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어렵게 되었을 때 배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고 했습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두려움은 성령이 충만할 때 없어집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제자들의 삶을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충만히 받은 다음에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었습니다. 두려움은 사랑할 때 없어집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람이 두려움을 내어쫒나니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에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쫒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쫒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요.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요. 교회를 사랑하시고 형제를 사랑하시고 이웃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십시요. 원수도 하시고 서로 사랑하십시요.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요. 그리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확실히 믿고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