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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나는 어느 정도 입니까? (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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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어느 정도 입니까?(빌3:1~16) 

오늘은 빌 3:1-16의 말씀으로 "지금 나는 어느 정도 입니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 소망의 교우들과 극동방송을 애청하시는 모든 성도들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좋은 군사라고 하였고 또 운동장에서 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와 같다고 딤후 2:4-5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행 20:24에서 외쳤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온 인생을 예수님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나 죽으나 난 주님의 것이라고 했고 갈 2:20에서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갈 때까지 오로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일편단심의 신앙입니까?
우리 소망의 성도들도 바울과 같은 일편단심의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귀한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까요?
14절을 보십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아멘.
예비 되어 있는 의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을 쓰려면

첫 번째로> 인생의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경주하는 선수에게는 목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주하게 삽니다. 헐떡거리면서 정말 지구를 혼자 움직일 듯이 살아갑니다.
여우가 낮잠을 즐기는데 갑자기 위에서 조그만 것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여우는 깜짝 놀라면서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야! 이거 웬일이야! 이거 하늘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면서 무너지는 하늘을 피해 마구 달리길 시작했습니다.
늑대가 그 모습을 보고 야 너 왜 그러니?
응! 하늘이 무너지는가봐.
호랑이가 왜 그러니?
응! 하늘이 무너진데
코끼리도 같이 뛰면서 야! 왜 그러는데?
응! 나도 몰라 하늘이 무너진데
코끼리가 뛰니까? 하마도 뜁니다.
치타가 이 모습을 보면서 야! 제들 웃기네 야! 이 초원에서 달리기하면 나야 나! 제들 까부는 구먼!
토끼는 야! 조금 늦다가는 깔려 죽겠네 어서 뛰어라 뛰어! 굼벵이는 말합니다. 난! 어떻게? 나는 어떡하라고 지렁이도 깁니다. 땅 속에 있는 개미도 놀랍니다. 그때 기린이 물어 봅니다.
야! 니들 왜 그러니?
그랬더니 몰라 쟤들이 뛰길래 나도 뛰었어
넌? 나도 그래!
넌? 응 코끼리, 호랑이, 늑대, 여우가 그러는데 하늘이 무너진데
여우야! 어디서부터 하늘이 무너지디?
응! 나 저 나무 밑에서 자는데 그냥 뭐가 떨어지잖아!
아니 저 산 저 나무 말이니? 응! 그래
에이! 여우야 조금 전에 내가 저 나무 위에 있는 열매를 따먹다가 그냥 떨어뜨려서 그런건데.
개미가 투덜거립니다.
굼벵이는 야! 이 온몸에 흙투성이 좀 봐!
지렁이는 뭐라 그래도? 이거 껍질 다 벗겨졌네 하마는 이거! 헛수고만 했잖아

요즘 현대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남이 바퀴 달린 신발 신고 다니면 너도 나도 바퀴 달린 신발을 삽니다.
남이 리모델링 한다면 그저 멀쩡한 건물 다- 뜯어내고 돈을 들여가며 개조를 합니다.
저는 그런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남이 한다고 해서 부부를 바꾸면서 살아간다는 스와핑도 하고 사시렵니까?
인생에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
그저 다 최고의 피아니스트 최고의 예술가가 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마 전에 쓰레기 매립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반입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부 아저씨들이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이 2주동안 일을 안 하시니까 며칠만에 전국이 쓰레기 더미로 악취를 풍긴 적도 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간에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온전한 국가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발사가 머리카락을 잘라야지 귀를 자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아파트의 평수를 넓히는 것입니까?
좋은 차를 바꾸고 늘어만 가는 저금통장을 붙들고 키득키득 거리는 겁니까? 돈 벌어서 늘어난 뱃살 속에서 지방을 빼거나 늘어진 피부를 잡아당기면서 소위 명품을 들고 다니는 것이던가요?
조심하세요!
늘어난 얼굴 피부 잘못 잡아당기면 배꼽이 볼까지 올라올 수 있습니다. 명품 좋아하다가 어머니는 망보고 딸은 도둑질하다가 수갑 차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내 인생의 승부수를 걸어야 합니까?

우리의 목표는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상을 위해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도 14절에서 "나의 푯대는 하나님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해 쫓아간다" 하였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상은 누가 받을 수 있을까요?
계 11:18입니다. 들어보세요.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경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 바로 경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경외란 말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의 얼굴을 자주 바라보게 됩니다.

이번 인천중부교회에서 부흥회는 정말 성령 충만한 부흥회였습니다. 말씀드린 데로 국회의원, 변호사, 대학교 이사장, 학장, 교수, 의사. 시의회 부의장, 교육감을 지내신 분 뭐 인천에서는 내노라하는 분들이 참 많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첫날 집회는 참 엄숙하더군요.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후에는 모두 같은 하나의 모습이 되더군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바로 기쁨이 넘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잠 1:29에는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즐거워 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기쁨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어디서 이 기쁨이 옵니까?
어떻게 해야 빼앗을 자 없고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나의 삶 속에서 차고 넘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데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13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이전에 잡았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푯대 삼아 나아간다"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도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가운데 평화로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기쁨을 주노니 빼앗을 자도 없으며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다"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또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을 섬기되 기쁨으로 섬기며 기쁨으로 사명을 수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을 주시며 이 땅에서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이루며 살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우리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푯대로 삼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심경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목표를 정하였으면 그것을 향해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목표를 정한 것만으로는 승리자가 될 순 없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쟁기를 잡는 사람을 보세요?
뒤를 돌아보면 밭과 논을 절대로 올바르게 갈 수 없습니다.
뒤돌아보라는 게 무엇입니까?
과거의 실패 속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실패를 잊지 못하면 언제나 패배의식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잘했던 것. 성공했다는 것도 잊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겸손이 사라지게 되고 나를 썩게 하는 교만이 나를 쓰러뜨리게 됩니다. 또 주변의 웅성거림에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세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죠.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온 성이 떠나갈 정도로 환호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 가시는 길에 깔아 드렸습니다.
아마 먼지 날까봐 그랬겠죠!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까 바로 그 사람들이 이번엔 뭐라고 합니까?
죽여라. 죽여라 십자가에 못박아라. 못박아라. 예수님은 호산나 호산나 소리쳐도 구세주의 길을 가셨고 죽여라 죽여라 해도 구세주로서의 길을 그대로 계속 Keep Going 하셨습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우린 경주장에서 달리는 선수입니다.
너무 관중석에 있는 관중에게 신경 쓰지 마십시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곁눈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우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전진만 하면 됩니다.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포기하시렵니까? 절대로 그럴 순 없습니다.

찬송가 401장도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의 장애를 두려말아라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행해 나가세 천성 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려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미국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앉은 의자를 돌려서 뒤에 걸려 있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만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며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왜냐구요?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과 저주가 아니라 다같이! 평안과 소망이니라 아멘!"
오늘 12절을 보세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이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삶의 자세이며 바로 우리의 삶의 태도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신앙적인 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나, 성령의 은사 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난 높은 경지에 있다. 다 이루었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난 다 이루었어. 정상이야 최고야! 성공이야! 바로 그때부터가 내리막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높은 회장의 자리에서 투신자살도 나왔습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는 절정의 쾌감이 아니라 이루어져 가고 있는 나의 삶의 과정에서 행복과 승리의 기쁨이 넘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임마누엘로 동행하시고 여호와 이레로 축복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그리고 극동방송을 애청하시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은 어느 정도 어느 수준에 와있습니까?
우리 다같이 12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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