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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쁘게 받으시는 받으심을 위하여 .... / 욥4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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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기쁘게 받으심을 위하여 ...
  본문 / 욥42:1-10

  학생을 공부 잘하는 것이 소원이고 사업가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은혜 받는 것이고 사랑과 긍휼을 입는 것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쁘게 받아주시기만 한다면 그 보다 더 큰 행복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의 9절 마지막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욥만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를 기쁘게 받아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성경 스바냐 3: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면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보기만 해도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자식이라도 무조건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는 그냥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불 신앙도 무조건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허물이나 잘못은 용서하셔서 받아 주시고 약한 것과 부족한 것이 있으면 치료하고 채워서 받아주시고 불 신앙은 회개시켜 믿음을 주신 다음 받아주십니다.
  즉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 주시는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을 기쁘게 받으신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시는 신앙은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1. 회개하는 신앙을 받아주십니다.

  6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이 무엇을 회개하는 것일까요?
  3절에 보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운 것에 대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은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에 대해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죄가 있어서 그러니 빨리 회개하라고 계속 충고하였지만 그들의 충고가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볼 때에도 하나님께서 동방의 의인이라고 인정하셨을 정도로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깨긋하고 정직하게 살기를 힘썼던 인물입니다. 누가 보던지 그에게는 직접적으로 고난을 당할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죄 없는 자에게 어떻게 이런 고난을 주실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욥에게 사람이 알지 못하는 죄가 있어서 이런 고난이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그에 대하여 계속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욥과 친구들은 고난의 이유에 대하여 계속 토론하고 변론하였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고난 당하여 상처받은 친구에게 위로는 못할망정 상처를 건드리는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욥 자신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시고자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 섭리를 무시하는 교만한 것입니다.
  인간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섭리를 모를 때 인간은 한 없이 교만해 집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있을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듭니다. 이것이 욥에게 있어서 잘못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과 변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40장 2절에 보면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라고 책망하시고 40장 8절에 보면 "네가 스스로 의롭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책망에 더 이상 할말을 읽고 회개하는 것을 봅니다.
  40:4절을 보면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오리까 손으로 내입을 가릴뿐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 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섭리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맙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 앞에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욥은 이것을 회개했습니다. 섭리를 모르고 함부로 말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으로 내 입을 가릴뿐입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진정 회개하는 자에게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려면 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지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 말이 많아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입을 가릴 뿐이라고 한것입니다. 입을 가리고 이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입니다. 선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하신 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단지 감정적으로 자신을 질책하거나 학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질책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하여 믿음과 신뢰를 갖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였던 것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잠잠히 주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인내하며 기다립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기뻐 받아주십니다.


  2. 중보기도 하는 신앙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8절 중반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들에게 "내종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라고 하신 말씀을 봅니다.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친한 친구를 위해 복을 빌기는 쉽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미운 사람을 위해 복을 비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미운감정 다 버리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특별히 중보기도해야 할 대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해야할까요?

  ①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해야합니다.
  출 32:31-32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 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민족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영생을 담보로 하여 중보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② 원수와 핍박자를 위해 중보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원수는 내게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런 자가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왜냐면  마 5:44절에서 예수님이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중보기도가 아닙니다. 핍박자를 미워하는 것은 중보 기도가 아닙니다. 도리어 내게 악한 자들이 잘 되기를 위해 복을 빌어주는 것이 중보 기도입니다.

  ③ 약한 자들과 병자들을 위해 중보기도 해야합니다.
  약 5:14-16절에 보면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④ 교회와 주의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여러분 중에 교회가 싫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목사가 미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목사를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언제나 자기 교회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의 목사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착각이고 사실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세상은 훌륭한 목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와 지도자를 최상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밖에 나가서 우리 아빠가 최고야 하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교회와 지도자를 비난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거룩한 착각을 하는 것이 교회나 자신에게 훨씬 유익합니다.

  교회와 지도자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은 거룩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은 행복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와 지도자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탄의 공격 목표 1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단은 평신도를 공격하기 보다 우선 목사를 공격합니다. 성도들이 목사를 위한 중보기도는 그러한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가 됩니다. 그래서 위대한 목회자 바울도 살전 5:25절에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하였고  빌레몬서 1:22절에서도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알게합니다.
  그리고 히 13:18절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라고 기도를 요청하고있습니다.
 
  미국의 래리 리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별명이 나이론 집사가 있었습니다. 왜 나이론 집사인가하면 그는 밖에서 식사할 때 챙피하여 식사기도를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식기도를 할 때 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챙피하여 망설이다가 생략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느날 이 나이론 집사가 어떤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그 날도 식당에 사람들이 많ㅇ다 식기도를 생략하고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잘 차려입은 신사가 자기 맞은 편에 앉더니 식사가 나오자 너무나도 간절하게 식시기도를 하고있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간절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이 나이론 집사가 물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시는 분입니까? 아까 식기도를 하실 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사는 자신은 교회를 다시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그 식사기도는 누구에게 한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사는 "나는 사단 숭배자입니다. 나는 나의 주인이신 사탄님에게 기도드린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란 그 집사는 "그러면 당신은 식사할 때 마다 사탄에게 기도를 드립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 나는 식사할 때 뿐만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사탄 숭배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슨 기도를 드립니까" 라고 더욱 놀란 나이론 집사가 물었습니다.

  여러분 사탄 숭배자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나의 주인이신 사탄님에게 기도할 때 마다 내가 사는 이도시의 모든 교회가 문을 닫고 교회의 목사들이 실족하여 스캔들이 일어나서 파멸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이말에 그 나이론 집사가 크게 회개하고 더욱 예수 잘 믿고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철저하게 기도하는 일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목숨을 걸고 교회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기도를 많이 해야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기도를 많이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탄이 목회자를 가장 집요하게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한 만큼 그 목사의 전하는 말씀이 그에게 은혜로 와 닿게 되어집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시는 사람은 바로 욥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약한 자와 병든자,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원수와 핍박자들을 위해, 교회와 영적 지도자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심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심을 위하여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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