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빌 4:8-9)

  • 잡초 잡초
  • 627
  • 0

첨부 1



" 생각하고 행동하라(4) " (빌4:8-9)
소제 :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 하며"

봉독하신 말씀 가운데 8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
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
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오늘은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랑 받게 믿음 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만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
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만하게 믿음 생활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만한가 말입니다.

1.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 하며

사랑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아끼며, 위하여 한없이 베푸는 일이나 마음"이라
고 합니다.

연인이나 자식이나 부모나 하나님이나 사랑할려면

첫째,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서 남편이 아내의 울타리가 되
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남편을 비난한다면 그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아끼지 아니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면 아끼고 귀하게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부모든 자식이든 교회
든 주의 종들이든 상관없이 사랑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색시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 관련된 것은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한없이 베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제한이 없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주고 돈도 주는 것입니다. 사랑
하는 대상에게는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자존심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누구는 머리를 만
지면 그렇게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만지니까, 좋아합니다. 사랑하면 그렇
습니다. 자존심도 다 내버립니다.
학생은 공부해야 되는데, 연애에 눈이 멀면 대학교고 뭐고 없습니다. 아무리 때려도 말
안 듣습니다. 사랑이 원래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자존심도 없고 다 주기 때문입니다. 이
렇듯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랑 해 보셨습니까? 이런 연애 해 보셨습니까? 저도 김영신 씨 꼬실려고
밤 늦은 시간까지 좇아 다녔습니다. 그 사랑 좀 받아 볼까 해서. 그렇게 해서 결혼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그 때만큼 못한 것 같습니다. 참 미안합니다. 연애시절만큼 사랑하고,
저 사람 없으면 내가 못산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사랑하면 결혼이 얼마나 더 행복하겠습
니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지 않습니
까? 진짜 아끼고 모든 자존심을 내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연애해도 사람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아십니까? 심순애가 배반을 하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찾아가서 "순애
야, 네가 김중배의 다이아반지가 그렇게 좋더냐?" 고 묻습니다. 배반하니까 말입니다.
사람은 저부터도 처음 사랑을 이어 가지 못합니다. 그대로 못합니다. 다 시들해 질 수 있
습니다. 더 나아가서 배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사랑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사울을 위해 대신 나가서 골리앗과 싸워 주기도 하
고, 악귀에 들렸을 때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해 주고, 그것이 좋으니까 다윗
을 사위로 삼아서 아버지처럼 섬겼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질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
더니 그 사랑을 다 잊어 버리고 다윗 때문에 못살겠다 해서, 생명 바쳐 다윗을 죽이는
일을 시작합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민12장에 보면 발람 선지자가 나귀를 타고 가다가 나귀를 때리지 않습니까? 자기를 위해
편하게 길 인도 해주는데 왜 때립니까? 자기 말 안 듣는다고 그럽니다.
사실 알고 보니 나귀가 영의 눈이 뜨여져서 주의 사자를 본 것입니다. 물질에 눈이 어둡
고 권력에 눈이 어두운 사람, 명예에 눈이 어두워진 선지자가 자기를 위하는 말을 때립
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식어질 수도 있고 그 사랑은 배반당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사랑 받을 만 하며 하는 것은 `아무개의 사랑 받을 만 하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받을 만 하며`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식어질지언정,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배반할지언정, 하나
님은 나를 배반하시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모른다고 해도 주님은 그를 다시 찾아가셔서 위로해 주시고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십니다.
다윗이 간음죄를 범해서 그를 책망할 지언정 그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위대한 성군이
되도록 끝까지 지켜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식지도 않고 배신하지도 않습니다.
모세가 살인죄를 범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리고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아니하시고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게 하신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얻고 너무나 좋아서 하나님을 13년 동안이나 떠나 있었지만 하나
님은 그를 다시 찾아 오셔서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백세에 자
식을 낳게 하겠다.` 사라가 웃고 아브라함이 웃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탓하지 아니하십니
다. `내가 너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 는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
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기에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책임지시고 은혜 주시
는 하나님인줄 믿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조상들이 걸어왔던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도 아니 하시고 그 사랑 식지도 아니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
나님이기 때문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 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받으라는 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지 세상의 누가 나를 사랑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토록 사랑했으니 이제는 위로 받아야지, 남편이 위로하고 아내가 위로할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식 덕 보겠다구요? 아닙니다. 자식 덕 보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위로라는 말은 함께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누가 나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겠
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그이라 할 지라도, 아무리 내 뱃속으로 나은 자식이라 할지라
도 그가 나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단 한분 하나님만이 나와 함께 하시는 위로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 사랑 받아
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사랑 받을만 합니까? 그렇게 하나님 사랑합니까? 그
렇게 하나님을 아끼고 그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롭고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그이만 생각
하면 기쁘고 좋아야 하는데 외롭습니다. 그러면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만 생각하면 늘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늘 그 생각하면서 밤을 새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요즘엔 핸드폰이 연인끼리 밤에 전화하면 공짜라고 밤을 새워가며 전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정말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기쁨이 있습니까?

요한 웨슬레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목사의 아들입니다. 대학교 때 홀리 클럽을 만들어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빈민구제하고
전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선교사로 파송받았습니다. 이정도
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파선될
것 같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살려달라고 기
도하면서도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내가 요나처럼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닌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회개를 합니다. 그래도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목사인데, 어려서부
터 기도도 열심히 하고, 빈민구제도 많이 했는데 왜 그럽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려운 일 당하면 하나님 앞에 당연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맡깁니
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기쁨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불안합니까? 용기가 생깁니까?
아니면 낙심이 됩니까? 솔직히 한번 말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풍랑 속에서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반가워서 찾아가 보니,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기도보다 찬송을 합니다.
살려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그 얼굴에는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고, 은혜가 넘
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저럴 수가 있을까? 나같이 하나님 믿는 사람인데, 나는 목사인데도
불안한데, 나는 일생동안 주를 믿고 살았어도 불안한데. 저 사람들은 왜 불안하지 않은
것일까?`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은 독일의 경건주의자 모라비안 교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었
습니다. 당신들은 이 풍랑 중에도 무섭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들이 반문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믿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은 로마로 가는 배에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습니다. 배가 파손되어 다 죽게 되
었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을 때에 그는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풍랑 속에서도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웨슬레는 왜? 나는 왜?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작은 일만 생겨도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해 지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요한웨슬레는 스팽겐 베르그 라는 사람을 찾아 가서 자기의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그 때 스팽겐 베르그는 세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① 하나님이 누구냐?
② 예수님이 누구냐?
③ 내가 누구냐?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에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까?
요한웨슬레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스팽겐 베르그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이고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전도, 성경공부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 가운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쫓았는데 내가 왜 지옥에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도무지 너희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
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 가라

나는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믿었고 주를 위해 충성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
까? 사랑한다고 믿습니까?

두 번째 질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라고 했더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고 반문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당신의 구세주이십니까? 무슨 말입니까? 구세주는 죄인의 구세주입니다.
정말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격이 있느냐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구세주이기에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생각하면서 나의 죄된 모습을 알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았으면 주 은혜가 놀랍고 십자가가 아름답고 귀한 것 아닙니까?
세상에 그것 외에 자랑할 것이 더 무엇이 있습니까?
나는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신앙의 고백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죄인되었던 우리를 사랑한 그 십자가를 과연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자랑
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제 주제를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서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올챙이 적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내가 죄인이었던 것, 지옥 가야 할 사람이었음을 생각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잊어 버리고 마치 의인인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남이나 정죄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큰 소리 친다면 과연 예수님의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냐 말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인가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인들이었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죄인입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
겠습니까? 내가 남이 갖지 못한 신앙의 경력이 있습니까? 누구의 은혜입니까? 바로 하나
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난 죄인이었습니다
하는 겸손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세 번째, 당신은 누구냐고 했을 때에 나는 사람입니다.
반문합니다. 당신이 사람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단
순한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있는 거룩한 존재인 것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습
니다. 어떻게 사람인 내가 거룩할 수가 있습니까?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너희 속에 성령이 계신 것을 알 지 못하느냐`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내 능력입니다. 그 분이 나를 깨우치시고 그 분이 나를 인도하시고 그 분이 나
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그리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갖고 오는 것이 아닙니까?

요한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난 후 자기의 신앙을 재정립하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목사로 선교사로 사역하면서도 두렵고
떨렸고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자신,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지,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으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또 하나는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육적인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돈, 권력,
지식이 있어야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돈, 권력, 지식이 있어
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엘리야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능력 갖고 바알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팔
백오십명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이세벨 왕후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그는 도망갑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죽여 달라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어느 순간 자신의 능력과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비교할 때에 실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나타나시고 태풍으로 나타나시다가 거기서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세
미한 음성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칠천명의 사람들을 예비하여
두었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싸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싸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여호수
아 앞에 나타납니다. 여호수아는 그가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어 누구편이냐고 묻습니다.
이 사람이 대답하는 말이 `나는 네 편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군대장관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여리고 성을 돌기 시작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 무너뜨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돌았습니다. 소리질렀습니다. 그것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무너뜨린 것입니다.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면서도 육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경력을 믿지 않습니다. 지식, 직분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이 내
소망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는 사람이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육을 따라가면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을 따라가면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내 힘을 의지하면 패할 수 밖에 없지만 날 대신하시는 만군의 주님이 함께 하실 때에 우
리는 이 세상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어제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를 심방했습니다.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심을 믿어라. 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
중매쟁이한테 이야기하라. 남편한테 이야기 하고 아내한테 하다못해 시댁에, 친정에 이야
기하면 싸움이 날 뿐입니다. 친구에게 이야기해도 소용없습니다.
중매쟁이한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중매쟁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중매하셨으니, 하나님께 책임져 달라고 해야 하는데, 자꾸 사람에게 가서 이야
기하니, 문제는 해결 안되고, 점점 사이만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오, 떨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사십일 금식기도 한 후 제일 먼저 찾아 온 것이 무엇입니까?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가지 시험을 합니다. 그 첫째는 돌을 들어 떡을
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가 그런 능력이 있느냐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도 없이 어찌 구세주가 되겠냐고 능력을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귀가 두 번째 유혹하기를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권력을 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구세주가 되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권력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에 올라가 뛰어 내릴면 하나님의 천군천사가 받쳐줄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적어도 명예도 있어야지, 천군 천사가 받쳐 준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병고치고 나자, 그 소문이 납니다. 예수님은 절대 가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합니
다. 왜 그렇습니까?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끝까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줄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이런 저런 문제를 겪지만, 이런 문제를 겪을 때는 누구 때문이 아니고,
우리를 살게 하시고, 높이시기도 낮추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달
려있음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형 에서가 과거에 자신을 속였다고 군대 사백인을 거느리
고 옵니다. 얼마나 두렵습니까? 자기 재물 바쳐도 안되고, 자기 가족을 내 밀어도 안되니
까,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만나 이야기합니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당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 속에서도
축복받아야 한다고 하며,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 주셔서, 돈으로도 안 되고, 자식으로도 안되었
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요셉이 그리 했습니다. 형들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감옥에 가게 했으
며 하나님 손에 자신의 모든 인생이 달려 있는 줄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
호와에게서로다`
그 하나님 손에 의지해야 합니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나는 물 위를 걷는 남자다.` 주님이 붙잡아 주시
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사는 길도 단 하나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할 만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승리가 있고 인생의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 해도 `내가 너희에게 물을 주랴` 한 그 순간에 그를 버리
셨습니다. 여러분, 내가 한다고 하는 그 순간에 내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
든 것을 하십니다.

제가 우리 교회 홈페이지를 보는 데 어떤 분이 그런 글을 올렸습니다.
소설가 한승원씨가 한 말인데, 그 글을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 놓았습니다.
`나의 희망은 낡아지지 않고 늙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늙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낡아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낡아지는 것은
쓸모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대로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여러분, 우리가 늙어도 낡아지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한 줄로 믿습니
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늘 고백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말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감당해 주십니다." 하며 그렇게 기도하고, 승리하고, 그런 우리 주의 종들
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 나누어 드린 것 가운데, 진돗개 전도법은 기독공보에 소개된 박병선 집사의 이
야기입니다. 교회나온지 1년만에 750명을 전도했답니다. 이분이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도는 제 힘이 아니라 순전히 성령님이 하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매번 새신자를 전도
할 때마다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분입니다. 오늘도 내 힘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기 바
랍니다. 요한웨슬레가 이 경험을 하고 난 후 교회에 와서 `전도 열심히 하자`고 했을 때
에 영국교회가 그를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목사인데도 교회 하나 맡지 못했습니다. 그때
에 요한 웨슬레가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맡은 교구는 한 지역이 아니라 세계
이다` 세계를 향해서 목회하는, 그래서 감리교를 만든 위대한 하나님의 신앙의 일군이 되
었습니다.

우리가 1,500명 새생명 축제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들 가운데 낙심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그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하실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랄 때에 우리의 기도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 하되,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친구와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