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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에든지 칭찬받을만 하며 (빌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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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고 행동하라(5) " (빌 4:8-9)
소제 :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봉독하신 말씀 가운데 8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
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
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오늘은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 하며` 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 하며` 라고 하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칭찬하라`
2. `칭찬 받는 일 하라` 또는 `칭찬 받는 사람이 되라`

1. `칭찬하라`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칭찬은 국어사전에 `잘 한다
고 추어 주거나 좋은 점을 기리는 것` 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비난은 잘못을 나무라는 것
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칭찬하라고 했지,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비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칭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비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
니다. 칭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라는 책 속에 소개된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공산당의 지도자가
된 티토의 유고 대통령과 또 로만 캐톨릭 교의 큰 일군이었던 훌턴 쉰 주교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두 소년은 어려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부의 미사
를 돕는 소년이었습니다. 대단히 신앙이 좋고 선택받은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두 소년은 동시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성찬 잔을 깨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훌
턴 쉰 주교를 담당하고 있던 신부님은 이 아이가 성찬 잔을 떨어 뜨릴 때 가슴으로 품어
주면서 "괜찮다. 너는 나중에 훌륭한 신부가 되겠구나."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유고의 티토 대통령은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
던 것은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 신부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으니, 당장 교회에서 떠나라." 잘 못 했을 때에 비난했습니다. 칭찬과 비난이 엄
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못해도 잘한다고 격려하고 좋은 점을 발전시켜 주는 것이 사람을
살리우는 길입니다.

우리 집 아이가 물컵을 깨뜨렸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보통 세가지 유형으로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격려하는 것입니다.
"유리가 깨졌구나. 다치지 않았니? 컵이 깨진 것 때문에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조심해야지" 하고 안아 주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칭찬하는 것입니다.
"잘 됐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 주시려나 보다." 이 말이 더 중요합니다.

제 친구 목사가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간다고 하니 교회가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기쁜 마음으로 보내면서 "목
사님, 가시기 전에 줄 게 있으면 다 주고 가세요." 그러더랍니다. 오래된 살림이라 주고
갈 게 뭐 있겠습니까?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다 주고 가자고 했습니다. 사모님은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사모님이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서 교인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사 가는 집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사 오기 전에 한번 오시지 않겠습니까? 목사님이 나중에 갈 때 되면 간다 했는데, 하
도 오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길래 갔다는 것입니다.
이사가는 분들이 신혼 부부인데, 아이는 좀 어리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새 아파트로 가는
데 새 아파트로 가게 되면, 에어컨도 있고, 장롱도 있고, 가스렌지, 식기세척기가 달려
있으니까, 쓴지 얼마 안 되는 것 가져갈 수 없고 목사님 가정이라고 하니까, 모두 놓고
가겠다며 의향을 묻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말씀 하시기 전에 사모님이 옆에서 쿡 찌르며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다 준
비하셨자나." 했다는 것입니다.
컵이 깨졌다. 손해본다. 너무 단정짓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신
줄 믿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아이들을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제일 좋은 교육의
방법입니다. 부부지간에도 그래야 합니다. 직장생활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성경은 칭찬하라고 했지, 비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믿으니까, 칭찬해야 합니
다. 그 다음 방법은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컵이 깨졌구나" 여기에는 비난도 없
고 격려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일 나쁜 방법은 정죄하는 것입니다. 정죄는 죄가 있다고 단정을 짓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니까, 당연히 벌을 주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너는 항상 그 모양이냐? 이게 얼마짜리 인줄 아냐?"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이 무슨 생각
을 하겠습니까? `그래 나 말썽꾸러기다. 이 집에서 나는 필요 없는 존재다.` 자학하고 가
출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엄마는 나보다 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
나." 이러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혼란하고, 사회가 혼란하고 교회가 혼란한 것 왜 그렇습니까?
칭찬은 없고, 비난과 정죄만 판을 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죄하는 일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 뚱뚱한 사람, 못 생긴 사
람,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가난한게 죄입니까? 못 생긴게 죄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가
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들이 마음에 많이 상처받지 않
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큰 교회 목사님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목에 힘주는
것 같고, 그래도 대접받습니다.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님은 누구도 잘 돌보지 않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이런 신문 기사가 실렸습니다. `교회도 자살을 막을 수 없다.`
요즘 자살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의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교회 와서 자살 할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난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교회도 자살을 못
막는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정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공지상주의` 때문입니다. 남 보다 많이 가져야 되고,
남보다 많이 배워야 되고, 남보다 출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여러분, 무엇 때문에 우리가 남을 정죄할 수 있습
니까? 남을 무시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자살을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서울 한복판에
있던 학교를 다녔습니다마는 우리 반에도 굶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잘 살고 있습니까? 세상이 다 잘 삽니까? 6.25때 우리를 도와 주
었던 나라들이 다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살고 있는데, 요즘 우리의 빈곤감이라고 하는 것은 없어
서 빈곤이기도 하지만, 절대적 빈곤감보다 상대적 빈곤감, 박탈감 때문에 못 살겠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해도 3D업종에는 안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율
법주의가 나쁜 것은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죄인만들기 때문
입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다 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칭찬이 필요하고 격려가
있어야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육학에 보면 `파그밀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파그밀리온은 한 여자를 사랑했던 왕의 이름입니다. 그것은 교육에서 사랑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로젠탈과 제이콥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능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중에서 20%를 뽑아서 `성적 향상이 기대되는 학생`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
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지능검사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20%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8개월 후에 지능 검사를 했습니다. 그 20%의 학생들이 80%의 다른 학생들과 비
교했을 때에 놀랍게도 훨씬 성적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임금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윗을 미워하고 다윗을 죽이려 하고 하나님 앞에 버림 받아 전쟁터
에서 죽습니다. 그 가족이 다 죽습니다.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일군이요, 가문인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쳤을 때에 백성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사울을 비난하고 다윗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위대한 임금을 하나님이 세우신 가문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고 만 것입
니다.

경쟁 사회는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갑니다. 나쁘게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사
는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비난하지 말고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격려와 칭찬은 잃었던 용기를 다시 회복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감을 줍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는 항상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17장9절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사랑이지만, 그것을 자꾸 말하는 것은 친한 벗도 이간시킨다는 것
입니다. 비난해서 안 됩니다. 칭찬해야 합니다. 격려해야 합니다.
"격려하는 사람이 됩시다. 칭찬하는 사람이 됩시다."

어느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가난한 집에 심방을 갔답니다. 그런데, 심방 가면 그 집 사람
을 칭찬해 주어야 겠기에 그 집을 살펴 보다가 식탁보를 보고 "직접 만드신 거예요? 손
재주가 많으시네요. 참 좋습니다." 그리고 심방 잘 마치고 돌아왔는데, 소문이 났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가난한 집의 식탁보가 탐이 나서 그렇게 말하더라. 실화입니다.

칭찬도 잘 못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칭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칭찬 외에는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
리를 대적하리요` (롬8"31)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31)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하시는 것이 진짜 칭찬입니다. 사람의 칭찬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목사도 칭찬에 약합니다. 비난에 약합니다. 설교 못했어도 "은혜받았습니다."하면 일주일
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설교가 뭐야 하는 분은 없지만 별로 반응이 시원찮으면 그것이
몇 년을 갑니다. 그것이 병이 됩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목사의 입장에선 더 그렇습
니다. 신앙이 있어도 주의 종도 그렇습니다.

`칭찬합시다`라는 말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다.
유아세례 받는 부모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고
성령의 은혜로 살아야 할 것을 믿으십니까?` 이 이야기는 이 아이가 죄인입니다라는 것
을 고백하겠느냐 말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고백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
다. 굉장히 강한 것 같아도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흔히 우리는 홍해바다를 건넌 것은 구원의 바다를 건넌 것이고, 요단강을 건넌 것은 축
복의 강을 건너는 것이라고 합니다.
홍해 바다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놓은 다음에 백성들이 건너갔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한 일을 그대로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는 미리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이 요단강물에 닿는 순간 요단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구원은 그냥 주는 것이지만, 축복은 우리 믿음의 행위에 따라 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칭찬받는 사람이 되라!`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칭찬받는 사람이 되라`
칭찬받을 일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왜 칭찬안해주나? 왜 알아주지 않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알아주지 않는다고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 칭찬은 하
나님이 하시는 것이 진짜지, 사람의 칭찬은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이 칭찬해도 하나님이 비난하실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기억하십니까? 자기 재산의 절반을 바쳤는데, 칭찬받을
일 아닙니까? 그런데, 죽습니다. 절반 바치고도 다 바쳤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 거짓말은 절반 바쳤으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는 사람의 교회
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역사로 움직이는 것이 교회요, 성도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대교회 집사 선택의 기준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
곱을 택하라` (행6:3) 고 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 지식이 뛰어난 사람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
람, 하나님이 믿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제사장을 친히
세우셨으나 지금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선택 잘해야 합니다.
외모를 보지 말고 하나님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행동하는 사람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요한 칼빈은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을 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느니라"
주님이 칭찬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
름으로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입니까?

1)믿는 사람
온전히 믿는 사람을 하나님이 칭찬하십니다. 로마의 백부장을 주님이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무슨 믿음입니까? "주님 나더러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겠습니다. 주님이 내 신하가 병들었다고 거기까지 가실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만 하옵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비난받으면서도 그것을 감수하며 주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사무엘하 24장에 보니 다윗이 자기의 나라가
얼마나 부강한가 10개월동안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전쟁에 나갈 사람이 130만이라고 하
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너 130만이 중요하냐? 내가 더
중요하냐?` `나 믿어서 복받았다고 하면서 지금 순간은 내가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냐?`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7만명이 염병으로 죽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
합니다.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못 삽니다.

전쟁이 처음 일어났을 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군대의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칭찬하시고 이런 사람에
게 은혜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믿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초대교회가 칭찬받은 것은 주님을 믿고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기적
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 초대교회처럼 열심히 모이고 힘을 다해 기도하고 성령이 역사하
시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열심히 믿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방주 120년, 여리고 성 주변을 백성들이 1주일 씩 돕니다. 그냥 도는 것이 아닙
니다. 몇 사람만 도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정식의복을 입고 나팔을 불며 돕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웃었겠습니까?
저는 그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바보들의 행진이다. 세상사람들이 얼
마나 비웃었겠습니까? 그러나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에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 했겠습니까?

우리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정말 우리가 바보가 되서
세상적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 믿는 기적을 일으키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4: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5:6)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23:12)

2) 조용히 자기 일에 힘쓰는 사람
작은 능력으로도 자기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빌라델비아 교
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주신 복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큰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하는 사람, 주의 이름을 배
반하지 않는 사람, 믿음 안에 든든히 서가는 사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기둥이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살전 4:11-12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다른 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서도 존경을 받게 되고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작은 능력으로도 충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그 일을 우리가 해
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성실하고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한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칭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서와 야곱을 보십시오. 에서는 사냥군이요 들사람이요 능력이 많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입니다. 장막에 거주하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에서를 미
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명 다하
는 날까지 주를 위해 충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소설가 한승원 씨의 말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의 희망이 있다면 낡아지지 않고 늙어지는 삶이다.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폐품처럼 낡아지는 것은 비참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충성은 죽도록 충성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교회의 성전기둥이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칭찬하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없이 설 수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칭찬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작은 일에도 충
성하고 하나님의 칭찬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승리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66장 보면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1. 어지러운 세상 중에 기쁜 소리 들리네 예수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여 따르라
2. 세상 헛된 부귀영화 모두 내어 버렸네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3.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바쁜 때나 틈 날 때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4. 주여 크신 은혜로서 부름 듣게 하시고 복종하는 맘을 주사 따라 가게 하소서

제가 지난 목요일 경상남도 창녕에 수해복구하러 갔었습니다. 한남2동 주민40명 우리 교
회도 한 8분 정도 같이 갔습니다. 저는 시간이 안되서 가지 못하게 되었었는데, 꼭 가야
될 형편이라 갔습니다. 이 계획을 세운 것은 지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왔는데, 그 날 용산구민회관에서 자원봉사자 대회가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우리 동네 동장님과 같이 앉아 이야기하는데, 우리 동네도 수해지구에 가야 하지 않겠습
니까? 그런데 무슨 돈으로 가겠습니까? 가겠다고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주민자치위원회
로 모입시다. 그런데, 모금을 한들 얼마나 모이겠습니까?
경비를 따지니, 오가는 경비만 해도 몇백만원이 들텐데,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도하면서 "이런 일 통해서 주민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
니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는데, 11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중국 상해에서 오는 길인데, 혹시 교인들하고 수재현장에 갈 사람을 모아서 가지 않겠습니까? 내가 구호물품을 지원해 주겠습니다."

어느 정도 해 줄 수 있냐고 물으니,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얼마쯤 주었을 것 같습니까? 삼천만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가
도 되겠다고 생각했더니, 그 전날 꼭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다녀왔습니다.

그 다음날 모여서 주민 자치위원회를 했습니다. 거기 안 믿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제가 목사 아닙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 구호금품
때문에 이런 이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이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
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입니
까? 이 일을 같이 해 봅시다."
모금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다녀오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칭찬받을 일 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기적을 증거
하고 그리고 작은 일에도 충성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로 승리
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칭찬받고 존귀함 얻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 한주간도 칭찬받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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