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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자의 하나님 [눅 20: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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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의 하나님 <눅20:27-38>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산자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산자만이 알 수 있고 산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산자들이 있고 죽은 자들이 있습니다. 산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부활이 있다 합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다. 부활이 없다.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말 가운데 서울 갔다 온 사람하고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이 싸우면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식한 사람이 우기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무식한데다가 고집이 쎄고 거기에다가 가난하기까지 하면 당할 사람이 없답니다. 유식하면 이해가 되는데 무식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거기에다가 고집이 없으면 양보라도 할 터인데 고집이 쎄니 절대 양보가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가나하니까 깔본다 생각하니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무섭답니다. 죽은 자들이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무식합니다. 거기에 고집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알려고도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없다 하는 것이지요.

오늘 성경에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파 사람들 몇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합니다. 한집에 일곱 형제가 살았는데  맏형이 장가를 갔으나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대를 있기 위해 형수와 살았는데 그도 죽고 셋째가 또 형수와 살았는데 그도 죽고 이렇게 일곱이 모두 형수와 살았는데 그러면 부활할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이겠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참으로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저들이 부활에 대하여알고자해서 나온 질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편협한 사고방식과 무지에서 나온 질문이지요.

이들이 부활이 없다 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 것 외에 다른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나 사람을 보지 못하였으니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모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귀신과 같은 하나님, 무슨 산신령과 같은 하나님으로 믿지는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나를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하지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나의 왕이여 영원 무궁히 지키시리로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죽은 인간 다시 살리는 것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 하니까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셋째 부활이 없다 하는 자들은 영이 죽은 자들입니다. 육은 육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통합니다. 그래서 예배할 때도 육으로 예배 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 있어야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과 통합니다. 그런데 영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싸인을 주어도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영이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육의 세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식하기에 무식한 질문을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이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마는 천국에서는 장가도 시집도 갈필요가 없다. 결혼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종족보존입니다. 그래서 짝이 있는 것입니다. 종족보존이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꾸 죽으니까? 멸종되지 않으려면 종족을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죽는 일이 없습니다. 종족보존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산 것은 무엇입니까? 대를 이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종족보존이지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대를 이을 필요가 없어요. 영원히 사는데 하나님과 같이 사는데 대를 무엇 때문에 이어 갑니까? 이런 것을 모르니까? 아는 것이 세상적인 것 밖에 모르니까? 천국에서는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산자의 하나님이 십니다. 보세요. 지금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창조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 이전에 있던 것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매 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지요. 매 철마다 하나님이 새롭게 옷을 입히시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 갔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 하나도 이전 것은 없어요.  다 새것입니다. 날마다 새것으로 옷 입히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다시살리실 것을 믿습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도 없는 것입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창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창조가 없다면 하나님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세계는 암흑세계이지요. 부활이 없다 하는 것은 하나님도 죽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어리석은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은 믿으면서 부활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세계가 질서를 가지고 존재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질서를 유지 하시지 않는다면 세상이 난장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별들의 전쟁처럼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소멸되고 말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기에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어김없이 동쪽에서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양의 햇빛을 쏟아 놓습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다 신비하지요. 그 신비한 일속에 부활이 들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가 부활에 참여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활에 참여 하려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관계를 맺는 비결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하신 명령과 규례를 믿고 지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관계가 맺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통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관계로 맺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얻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부활입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받을 만한 것을 받은 것입니까? 받지 못할 것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반응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준 것이 없는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가족들이 모여서 밤을 삶아 가지고 둘러 앉아 먹고 있었습니다. 밤을 까는 속도는 그 집 큰 딸이 제일 잘 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밤을 까가지고 먹는 것이 아니라 옆에다 쌓아 놓는 것입니다. 엄마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것을 밤에 먹으면 살이 찔 터인데, 그러지 않아도 살이 쪄서 요즈음 다이어트 한다는 아이가 밤을 까서 놓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합니다. 옛날에 할머님이 그러셨는데 밤에 밤을 먹으면 밤 살이 오른다 하더라. 너 밤 깐 것 동생들한테 나누어 주렴. 그런데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속이 상했지만 하루 밤 쯤 먹었다고 해서 뚱보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생각하고 포기 했습니다. 저녁집회 강의 시간이 되어서 대문을 나서는데 큰 아이가 쫓아 나왔습니다. 말도 듣지 않는 것이 왜 나오나 했는데 아이 손에 무엇을 들고 나옵니다. 엄마 이것 가지고 가셔요 이게 뭔데, 지금 펴보지 말고 차안에서 펴보세요. 엄마는 예쁜 대바구니를 받아 쥔 채 차안에 타자말자 펴 보았습니다. 대 바구니 안에는 은박지에 잘 포장된 깐 밤과 예쁜 카드가 들어 있었습니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 아까 엄마 드리려고 밤을 열심히 깐 거야, 엄마 말 듣지 않아서 미안한데 난 엄마가 살이 찌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아까 밤을 깐 자리에서 엄마에게 드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엄마는 하나도 잡수시지 않고 동생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을꺼야, 그래서 엄마 혼자 잡수라고 엄마 외출할 때 드리는 거니까?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 나는 엄마가 조금만 더 살이 쪘으면 좋겠어.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그 밤을 먹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의 자그마한 사랑에 모든 것을 다주고 있는 엄마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관계요 믿음의관계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작은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하게 합니다. 그를 신뢰하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 십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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